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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Sep 13. 2024

오늘도 눈치 없는 너에게

 남편의 동창 가족모임에 다녀왔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과 곧 돌이 되는 아기가 있는 친구와 얼마 전 늦깎이 결혼을 한 부부 동반 모임이었다.

최근에 결혼한 친구는 말했다.   

  

“우린 아이 없이 살자고 했는데, 막상 결혼하니 아이가 너무 갖고 싶은 거 있지. 시험관도 도전해 보는데 생각보다 잘 안 돼.”     


실망감이 깃든 이야기에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옆자리에 유모차를 탄 아기를 바라보는 눈빛이 촉촉했다. 갓 돌이 된 아이의 미소가 너무 귀여워서 나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한 살이 되는 아기를 바라보는데 그 미소를 보고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말을 했다.

    

“엄마, 아기가 너무 귀여워요. 나보고 웃나 봐.”

“아니야. 오빠를 보고 좋아서 웃는 거야.”     


아이들도 해맑은 아기의 미소에 빠져들었다.

일찍 결혼해서 아들이 군대에 간 친구는 이 모든 걸 보고 한마디 거들었다.     


“야. 꼬물이 언제 키울래?”     


친구의 그 말에 다들 키득거렸다.     


남편과 나는 결혼을 늦게 해서 30대 중반을 향할 무렵 큰아이가 태어났다.

남편의 주변 지인들은 다들 일찍 결혼해서 자녀들의 나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대다수였고, 그 시기에 우리는 친구들에 비해 결혼과 출산이 많이 늦은 편이었다.

큰아이 돌잔치 때 일찍 결혼한 친구들이 돌잡이 구경을 하기 위해 앞자리에 모였다.   

  

“아기가 너무 귀엽지? 아이고…. 넌 언제 키울래?”     


이미 우리 나이가 많은 것도 알고 있어서 언제 키울래 하는 농담조로 던진 친구의 말에 반감을 갖게 됐다.     


“이 과정을 먼저 겪어본 나의 현명함과 지혜가 너보다 한수 위야”란 속내가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언제 키운다니, 그런 말은 참 무례한 거 아니야. 어차피 늦게 낳은 거 친구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데 눈치 없이 그런 말을 하는 거 싫다.’


불편한 자리에서는 혼잣말이 자꾸만 늘어간다.     

아이를 키우면서  불편함을 주는 말은 많다.     


“아이 키우는 거 얼마나 힘든데 정신적인 소모는 이루 말할 수 없어. 너처럼 무자식 상팔자가 최고인 것 같아.”

“이렇게 누워있는 아기 키울 때가 편해. 더 커봐라. 말도 안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얼마나 말썽인데!”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태도는 상대에게 멋쩍은 민망함과 불쾌함을 주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한 명만 낳을 계획이었다. ‘한 명만 잘 키우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돌이 지났을 때 마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놀이터에 나가면 형제가 있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서로 챙기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혼자서 덩그러니 있는 아이가 외롭게 느껴졌다. 아이가 3살 되던 해에 남편에게 말했다.      


“준이 동생 한 명만 더 낳자. 놀이터 가면 혼자라 짠하더라. 집에 와서도 같이 놀 수 있는 동생 있으면 좋잖아.”      


남편은 처음부터 자녀 두 명을 원했기에 우리의 마음이 같으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생각처럼 임신이 되지 않아서 마음이 초조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데 더 늦어지면 시도하지 못할 것 같아서 결국 병원을 찾았다.

     

“두 분 다 아무 문제는 없는데요. 그냥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원하는 것이 선명해질수록 편안한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

병원에서 임신 가능일을 알려주는 검사도 여러 번 해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다림에 지쳐갔다.     


“내년이 되면 임신 준비는 난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아. 나이도 너무 많잖아. 아무래도 둘째 안 되겠어. 그냥 우리 한 명만 잘 키우자.”     


예상했던 시간이 지나자 무거워진 마음에 남편에게 말했다.

실망한 남편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놀이터에 형제들이 많은 아이를 보면 의기소침해졌고 속상한 마음이 이어졌다.


임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 찬 마음은 다른 전념할 곳이 필요했다.     


“운동하자!”     


집 근처 복싱센터가 있었는데, 아침마다 주부들이 모여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복싱을 하는 곳이었다.

매일  2시간씩 하는 운동 시간이 나의 속상한 마음을 조금씩 위로해 주었고, 운동하고 땀으로 흠뻑 젖은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불었던 15킬로 몸무게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동이 힘들지만 재밌어서 식단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한 달 만에 7킬로 감량!

우와! 나도 해냈다. 성실하게 운동도 매일 열심히 러닝도 한 시간씩 더 하다 보니 살 빠지는 게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일상 속 운동은 늘 웃음을 주었다.     


살 빠지고 열심히 복싱연습을 하는 나를 보며 관장님이 말했다.     


“너무 열심히 잘하고 있어요! 꼬망님 아마추어 복싱대회 어때요? 센터에서 6개월 정도 아마추어 대회에 신입으로 준비해서 나갈래요? 이런 식이라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겠어요!”     

‘와! 아마추어 대회라니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나는데?’     


관장님께 너무 좋다고 연신 대답한 그날 밤 너무 설레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땀복과 전문 글러브를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말이 지나고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았다. 운동을 빠지는 날이 없었는데 몸을 가눌 수 없어서 못 가게 됐다.

잠을 자도 자도 쏟아지고 멍한 기분이 계속돼서 달력을 확인했다. 배가 아프고 통증으로 인한 고통이 계속 돼서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임신이에요. 축하합니다. 5주 됐어요.”

“네?? 정말이요?”     


믿어지지 않았다. 둘째를 간절히 원했던 눈물로 보낸 무수한 날들이 떠올랐다.

내가 원한다고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나에게도 가슴앓이하며 기다렸던 아기라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둘째 임신으로 인해서 7킬로 빠진 살이 20킬로 다시 불었고, 아마추어 대회 도전은 정처 없이 미룬 채 운동센터는 그만두게 됐다.     

그런 과정에서 겪은 맘고생 탓인지,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과 늦게 출산한 사람들에게 나의 말을 아끼게 됐다.

직접 겪어본 일일수록 상대에게 본인 방식의 조언으로 떠드는 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어쩌면 경험의 조언이 아닌, 친구의 상심을 귀담아 들어주는 다정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아기가 너무 귀엽다. 미소가 달콤한 사탕처럼 살살 녹겠는데?”

“아기가 갖고 싶지. 나도 그랬어. 이상하게 임신이 내 맘대로 되진 않더라고. 임신이 안 돼서 속상했을 때, 그 마음을 잊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거든. 그때 선물처럼 둘째가 찾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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