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는 등굣길에 1학년이 된 이웃 동생을 만났다.
“동생아 너처럼 1학년 때는 천국이야. 한마디로 좋을 때지. 너무 좋은 때니까 지금을 즐겨야 해.”
동생이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래? 언니 2학년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
크게 한숨을 내쉬며 아이가 대답했다.
“2학년은 학원이 시작되는 시기라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거든. 3학년은 말도 못 해. 과목도 많아지고 수업도 늦게 끝나. 지옥 시작이야.”
동생의 눈은 휘둥그레지며 아이 말에 집중했다.
“4학년은?”
“4학년은 본격적으로 지옥에서 벌 받는 느낌이지. 학교에서도 늦게 끝나고 학원은 더 늘어나. 5학년은 숨 막히는 불지옥이야. 학교며 학원이며 숨 쉴 틈이 없으니까!”
초등학교 3학년의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한 일장연설 중이었다.
10살이 되면 학원에 안 다니는 아이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각자 듣는 수업이 있다. 초등학교 때 어떤 학원도 다니지 않았던 나와 비교하면 요즘 아이들은 버거운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이의 좋은 때가 그 어떤 스트레스 없는 상황이라면, 태어나서 편하게만 누워있던 갓난아기 시절일 것이다.
인생의 좋은 때란 언제일까?
어쩌면 ‘좋은 때’라는 것은 그 좋았던 시간이 다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감정 아닐까.
나에게 무조건 헌신했던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야 ‘아 참 좋은 사람이었지. 그만한 사람이 없어’라고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동네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해서 서로 가깝게 지냈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산책하고, 새로운 동네 맛집이 생기면 함께 탐방을 나갔고, 남편과 아이들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루를 보내곤 했다. 햄버거빵 만드는 재료를 직접 사 와서 알뜰하게 요리했다. 아이들을 모두 모아서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서 햄버거파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 친구가 먼 지역으로 이사하게 됐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야 혼자서 덩그러니 창밖을 보면서 '아 그때 참 즐거웠어. 많이 웃었지.'란 생각을 하게 됐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독신의 삶을 자유롭게 즐기는 사람을 볼 때면 “좋을 때야”란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 시절을 보내고 주부의 삶이 되면서 혼자만의 여행은 꿈도 못 꾸게 됐다. 그런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때의 자유는 소중해!’라는 것을 실감했다.
나의 젊은 날에는 ‘좋은 때’의 즐거움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했었는데 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설 자리가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아 자신감이 없어지곤 했다.
그럴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어떤 것도 시도하기 힘들었다.
중년의 마음이 자꾸만 불안해지면, 나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의 조언이 듣고 싶을 때가 있었다.
놀이터에서 나보다 인생을 더 많이 보내신 자주 보는 어르신들에게 아이처럼 물어보곤 했다.
“지금 이대로 오십 살이 되면 얼마나 두려울지 상상이 안 돼요. 지금까지 지내오시면서 후회되는 게 있으세요?”
어르신은 굽은 허리를 펴고 바른 자세로 앉아 웃으며 말했다.
“오십도 너무 젊은데? 연아 엄마 정도라면 난 돌멩이도 씹을 거야. 시간은 강물처럼 빠르게 흘러가는데 어영부영 흘려보낸 게 좀 후회되지. 그땐 그게 최선인 줄 알았거든. 이 나이 되면 정말 외로워져”
그 조언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고 해도, 나에게 닥치는 외로움을 피할 수 있을까.
자신이 직접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한 번뿐인 인생에 이게 좋은 일인지 아쉬운 일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하루 망막함이 수북이 쌓여갈 때 나보다 삶의 연륜이 있는 분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어르신들의 눈에는 나는 아직 젊어서 기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초조함이 덜해졌다.
어쩌면 흔들리는 중년에 불안해지는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지금도 괜찮아”라는 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