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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Aug 30. 2024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너에게

 “선배, 오늘 종각에서 보기로 한 날이지. 어디서 볼까?”

“아…. 어쩌지 내가 오늘 급하게 볼일이 생겼어.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

“준비 다 하고 나 나갈 참이었는데?”

“아…. 다행이다. 너 출발하기 전이라서. 요즘 너무 정신이 없네.”

“.......”     


자신의 입장만 토로하는 그에게 질려서 입을 다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우리는 만났다.

열흘 전에 잡았던 약속인데,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라 잔뜩 멋을 내고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잦은 야근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는 일상을 함께 하며 가까이 지냈지만, 퇴사한 후부터는 매일 안부를 전하던 친분은 점차 뜸해졌다.     


입사 당시 난 어리숙했다. 사람들 관계에서 거절도 어려웠고, 선배들과의 불편한 일이 있어도 넘어가는 일이 잦았다.

그때의 어리고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타인에게 받은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을 미숙하게 넘겼다.     

나에게 불편함을 주는 타인의 말을 무심하게 넘겼다면, 다음번에도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가 쉽다.

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김 빠진 사이다 같은 상대를 더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을 돌보고 타인에게서 불편한 면을 인식하면서부터는 나를 위하는 행동을 조금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나를 귀하게 여기고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주는 일이 먼저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나의 이불을 깨끗이 하거나 정갈하게 요리하면서 조금씩 나의 마음을 돌보기 시작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행동은 상대에게 엄청난 불쾌감을 줄 수 있다. 나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걸 그때 이후로 다시 한번 확인한 나는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킨다. 이 일이 있고 난 뒤로는 약속 전날에는 다음날 일정을 한 번 더 확인하며, 만나는 장소도 어디인지 구체적인 곳으로 정한다. 급한 일이 생기면 상황을 알리고 사과를 하며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 지금 한 시간 반 시간 있는데 잠깐 볼래?”

“아니. 난 안 되는데…. 그리고 이런 연락은 나는 좀 불편해.”

“.........”     


너의 짬 시간에 나를 땜빵하듯 불렀다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타인이 대하는 옳지 않은 태도에 더는 둔감하게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약속을 어기거나 불편함을 주는 관계는 금이 가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인연이 다하더라도 나를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상대를 더는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넌 너무 예민할 때가 있더라. 그래도 그런 생각을 했다니 사려 깊은걸.”

“내가 사려 깊은 게 아니라 그러지 않는 네가 무례한 거야.”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너와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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