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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Aug 23. 2024

어쩌면 바람 같은 인연

얼마 전 핸드폰이 생긴 둘째 아이는 카톡을 보내거나 통화하고 싶어 했다. 수시로 나에게 영상통화를 하고 좋아하는 그림 사진 등을 모아서 보내곤 했다.

아이의 핸드폰 통화기록을 보는데 답변 없는 친구에게 그림 사진을 30장이 넘게 보냈다.  

   

“너는 왜 아무 답도 없는데 사진을 계속 보내니?”

“아…. 엄마, 너무 보내고 싶어서 그냥 보냈는데요?”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해맑은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누군가 너에게  네가 가진 그림 사진 이쁜데 나도 갖고 싶어 라는말을 들을 때 보내주면 되는 거야.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 계속해서 혼자 떠드는 건 무례하게 느낄 수 있거든.

네 마음이 순수해도 남들은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이는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들은 여럿 있지만, 아직 단짝 친구가 없다.   

  

“엄마, 앞자리 친구랑 놀고 싶었는데, 쉬는 시간 보니까 자리에 없더라고요. 속상해.”

“그래서 뭐 했는데?”

이번 주에 전학 가는 친구랑 보드게임하고 놀았어요.”

“친구랑 놀고 싶으면 좀 빨리 움직여서 얘기하고 놀지 그랬어. 그리고 그 친구는 전학 간다며? 반에서 계속 볼 수 있는 친구랑 놀아도 되잖아. 그러면서 뭐가 또 속상하다고 그러니?”     


“속상해”란 말에 발끈한 나의 목소리에 눈물이 터진 아이는 훌쩍이며 수영강습을 받으러 갔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 괜스레 아이를 울린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부터 우린 영원한 친구야.”라고 해서 정말 영원한 관계일 수 있을까?     

“오늘 꼭 너의 단짝과 재밌게 놀아야지.”란 말보다 “오늘은 네가 즐거운 친구와 놀아.

그게 전학 가는 친구건 누구 건 상관없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헛똑똑이 어른인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이 마음이 가는 대로 이런 친구도 만나보고, 저런 친구도 만나봐야 하는 건데 내 기준으로 아이를 만드는 것 같았다.     

내일 전학 가는 친구와 놀면 뭐가 어때서?

오늘 친구와 함께해서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잘 보냈으면 됐지. 지금 네가 즐거우면 된 거야.

친구 관계가 늘 영원하다고 생각하지만 1년이 갈지, 5년이 갈지는 모르는 거야.

    

어쩌면 인연이란 것은 바람 같은 거다.

있다가도 없어지고, 잔잔한 가운데 한순간에 다가오는 바람에게 ‘영원히 내 옆에 있으렴’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봐줘야겠다.

그러니 지금 친구가 많은 이를 부러워할 필요도, 외톨이인 친구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거다.     

무엇보다, 친구에게서 받는 따뜻한 우정의 감정을 느끼기 전에 부모에게 받은 기본적인 신뢰와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 없이 어른이 되다면 크고 작은 신경질환과 결핍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부모에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 오늘 네가 즐거웠으면 그것으로 충분해”    

 

라는 속 깊은 응원이 아이에게는 필요했다.     


친구라는 게 “영원하자!”라고 외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라는 걸..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것을 잊고 있었다.


시절 인연으로 끝난 무수한 인연이 떠올랐다.    

 

깊어진 밤 아이 옆에 슬며시 누웠다.     


“아까 엄마가 얘기한 거 속상했지? 엄마가 네 마음을 이해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전학 가는 친구얘기도 어른답지 못한 말이었어. 너한테 말하고 나서 생각할수록 부끄럽더라고.”      


미안하다는 말에 아이는 속상한 감정이 떠올라 주룩주룩 눈물을 훔쳤다.

흐느껴 우는 아이를 달랬다.     


“너의 존재만으로 엄마는 정말 고맙고 소중해.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그게 뭐든지”      


아이의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도란도란 얘기하며 잠이 들었다.      


인연을 맺은 관계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나도 모르는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관계를 “너는 이렇게 해야지!”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게 있을까?     


오늘은 흘러간 인연생각에 울적해진 나의 마음을 다독이며 잠이 들었다.     


‘어른의 삶은 얼룩덜룩해. 기분을 잘 다스리면서 오늘 내가 만나는 인연과 주어진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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