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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Aug 09. 2024

사려 깊은 너와의 이별

10살인 둘째 딸아이는 코로나 이후에 급격히 살이 쪘다.      


‘나를 닮아서 조금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라니.’     


안 닮았으면 하는 부분은 꼭 닮아있다.

일을 한다는 핑계로 과자나 음료수 등을 가리지 않았더니 아이의 체중은 평균 이상이 돼버렸다. 조급한 마음에 성장발달 검사를 부랴부랴 예약했다.


10살 생일 전에 처방을 받으면 보험처리가 되는 까닭에 아이의 주변 친구들은 병원순례 중이었다.     

정신을 놓은 탓에 가려고 했던 병원은 올해 접수 마감이 끝나서 옆 동네로 향했다.

최대한 빠른 일자로 예약을 했고 검사 전에 의사 선생님의 진료실로 향했다.     


“살이 많이 쪘네요! 성조숙증 검사는 해야 하지만 그전에 살을 좀 빼죠. 달콤한 간식 주지 마세요. 과자, 음료수 금지! 고기도 지방 없는 것으로요. 3킬로 감량 우선해 봅시다!”     


예상은 했었는데 선생님의 단호한 목소리를 들으니 느슨했던 마음이 번쩍 뜨인다.     


‘아 맞아. 둘째는 진작에 살을 뺐어야 했는데 이것저것 너무 먹였구나.’     


로켓배송으로 과자와 음료를 상자째 주문했던 무수한 지난밤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 잘됐어. 이참에 우리 탄수화물과 밀가루 줄여보자.”     


아이도 나도 살이 찌니 자꾸만 펑퍼짐한 티셔츠에 고무줄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의 패션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고무줄 바지에 입문했을 때부터였다.

서른이 되었을 때 친구가 고무줄이 들어간 밴딩 바지를 입은 걸 보고 “이런 게 있어?” 신기해하며 호기심에 구매한 게 지금의 살찐 몸매에 큰 몫을 했다.     

지퍼가 있는 청바지와 몸에 붙는 블라우스 등을 서서히 안 입게 됐고, 그렇게 점점 크고 편한 옷으로 바꿔 입게 됐다.     


마법의 고무줄 바지를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살찌는 걸 막을 수 있었을까?    

 

늘어난 뱃살을 한결같이 편안하게 감싸주며, 과식하고 자책하는 마음의 여지를 주지 않는 

사려 깊은 고무줄 바지야말로 배려의 아이콘 아닌가!     


그 따사로운 마음씨와 바꾼 건 퉁퉁해진 몸매였어.   

10살밖에 안 되는 둘째 딸아이는 벌써 따스한 고무줄 바지의 매력에 빠졌다.     


“그런데…. 이건 뭔가 잘못됐어! 벌써 고무줄 바지에 매력에 빠지면 곤란한데!”     


아이의 체중감량을 위해 과자, 젤리, 음료수 등 그동안 맘껏 먹었던 간식을 모두 끊었다.

고구마와 감자 등을 찌고, 오이 당근 등을 식탁 위 간식으로 조금만 올려놓았다.     


“우리 잘해보자. 이번 한 주 동안 네가 건강한 식단 약속을 잘 지키면 엄마가 주말에는 이쁜 원피스랑 옷을 한 벌씩 사줄 거야! 어때?”     


먹성이 좋은 둘째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좋아요. 한번 해 볼게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첫날은 좀 힘들었지만, 천천히 적응해 가는 듯했고, 자기 전에는 윗몸일으키기 50회를 하면서 뱃살감량을 노렸다.     

일주일 동안 생각보다 수월하게 다이어트 간식을 지켜낸 아이가 기특했다.    

 

주말 저녁, 설거지하는 내게 살며시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엄마. 편한 옷 말고 이쁜 원피스 나도 입고 싶어요. 언제 주문해요?”     


사려 깊은 고무줄 바지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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