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망 Aug 02. 2024

자존감 카드


워킹맘인 친구 엄마를 놀이터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테이블에 앉았다.

오늘은 아이 레벨 테스트가 있어서 월차를 낸 친구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이번 달 아이 학원비 내 지갑에서 꺼낸 내 카드로 했잖아! 아 정말 짜증 나! 내 월급은 도우미 이모님 드리면 남는 것도 없다고. 남편의 생활비카드로 결제해야 하는데 이번 달은 또 이렇게 넘어가네.”

“내 돈?”     


전업주부인 엄마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내 카드”라는 말이 낯선데?”

“내 카드라는 말은 굉장히 전문직 여성 같은 느낌이야. 멋있는데?”     

나도 신용카드가 있지만 내가 벌어서 쓰는 카드가 아니라서 온전히 내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었다. 내가 소유하고 있지만 내 것 같지 않은, 우리 모두의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카드는 나만의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친구의 ‘내 카드’라는 말은 나만 소유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특별함으로 느껴졌다.      

많은 탐관오리를 응징할 때     


“암행어사 출두요!”     


라는 군중 속 함성이 생각났다.

친구의 ‘내 카드’의 느낌은 암행어사의 신분을 증명하는 표식으로 말이 다섯 마리 그려진 마패와 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이런 마패처럼 절대 권력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지표가 되는 자존감 카드였다.     


내 것에 대한 소유가 결혼 후 육아를 하면서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나만의 특별함이 없다고 느끼는 지루한 일상이 계속됐다.   


퇴근한 남편이 마트에 다녀온 나를 기다렸다.     


“며칠 전부터 치킨이 너무 먹고 싶더라고. 양념이랑 프라이드랑 먹을까?”

“아니! 등갈비 김치찜을 했는데 무슨 소리야. 치킨이라니! 등갈비 준비한다고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오늘은 안돼. 저녁은 김치찜에 계란말이야.”

“아... 알았어. 그럼 내일은 어때?”

“엄마 치킨 우리도 먹고 싶은데…. 언제 먹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들이 남편을 거들었다.     


“음…. 치킨은 너희 살쪄서 안 돼. 주말에 한번 그것도 점심때 먹자.” 

“........”     


나의 단호한 목소리를 듣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통쾌함을 느꼈다.     


리더십을 겸비한 대기업 회장님의 새로운 안건지시처럼, 전업주부의 권력을 보여줄 수 있는 마패를 가진 것 같아 흐뭇했다.     


이 시대의 절대 권력을 가정에서 보여주고 있다니!      

음식이야말로 나의 자존감 카드임이 분명했다.


                     

이전 06화 검정옷의 배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