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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Jul 26. 2024

검정옷의 배신


“엄마랑 이모들은 왜 다 검정 옷만 입어요?”

“하얀색 옷을 입은걸 한 번도 못 봤어요.”


낯익은 아이 친구들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모둠으로 모여있는 엄마들의 복장이 한결같은 검정인 것이 궁금해서였다.     


“이만한 옷이 없어. 김칫국물도 안 묻고, 오래 입어도 더러워지는 것도 티 안 나고, 무엇보다 살찐 것도 커버해 주잖아. 일석 몇조냐 하하하.”     


매일 같은 대답이 민망할 때도 있다.

나는 매일 입는 검정티와 바지, 양말 심지어 속옷도 검정이다.

장점이 많은 검정 옷에 대해 이만한 옷이 없다며 연신 칭찬 연설 중이었다.  

   

“그런데 햇빛에는 덥잖아요.”     


아... 하지만 햇빛 따위는 견뎌낼 수 있었다. 검정 옷은 갈수록 토실해지는 올록볼록한 몸매를 감춰주는 영혼의 단짝 같은 존재였다.      

매일 같은 검정 티셔츠를 입어도 질리지 않았다.     


“난 옷 살 때 같은 것을 두 개씩 사. 매일 빨아서 돌려 입거 든.”


“나의 검정 옷은 같은 게 두 개씩이야.”의 속내는 “난 초라하게 검정 티셔츠 한 개만 줄곧 입지 않아. 이래 봬도 매일 다른 검정 옷을 입는 거라고.”인지도 모른다.     


새것을 입어도 티가 안 나는 존재감 없는 검정 옷의 의미를 숨기고 싶은 마음인 걸까?     


주말에 남편 친구들과 삼겹살파티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라 일찍부터 일어나서 화장을 곱게 하고, 어제 잘 말려둔 검정 티셔츠와 바지를 단정히 차려입었다.     


“어 근대…. 제수씨 살쪘는데?”

‘뭐라고?'


 '나의 비밀을 잘 지키라고 검정 옷에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그새 비밀을 발설한 거야?' 

  

화들짝 놀란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올록볼록한 살찐 비밀을 검정 옷으로 감춘 건데, 생각할수록 배신감을 느꼈다. 몰래 먹은 과자를 들킨 것처럼 민망해져서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그렇게 일급비밀을 절대 퍼뜨리지 말라고 연거푸 얘기했건만,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니...진짜 너무하네.’     


배신감에 마음이 차디차게 얼어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검정 옷과 절교하겠다고 다짐했다.     


검정옷을 즐겨 입는 엄마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은 어쩌면 “쪘지?” 일지도 모른다.

나처럼 검정 옷을 교복처럼 즐겨 입는 친구 엄마와 얘기를 나눴다.     


“검정 옷으로 살찐 부분을 감쪽같이 잘 가리고 있었거든. 난 심지어 머리도 검은색이잖아. 우연히 옆집 언니를 봤는데 나한테 다가와서 “쪘지?”하는 거 있지! 너무 화나서 그날 난 단발머리를 올려 묶었잖아. 턱선이 보이니 한결 날씬해 보이더라고.”     

“너 가진 그 검정 핀으로?”     

“응. 검정이지만 큐빅이 박힌 핀이었어. 반짝거리는 큐빅이 얼마나 돋보이던지!”     


존재감 없는 검정이 빛나길 바라는 마음은 ‘내가 입는 검정옷은 매일 달라’라는 의미와 비슷하지 않을까.      


샤워를 마치고 갈아입을 옷을 찾기 위해 옷장 문을 열었다.

옷장을 가득 채운 검정 옷을 하나 꺼내 입으며 뿌연 안개 같은 한숨을 쉬었다.     


“검정 옷 비밀 지켜! 다신 그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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