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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Oct 11. 2024

그 시절 인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볕더위가 며칠간의 장대비로 사라졌다.

화창한 파란 하늘을 보니 성큼 다가온 가을이 느껴졌다.

비 갠 하늘에 청량감을 주는 바람이 찾아올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같은 계절과 날씨에 우리는 공원 산책을 종종 다니곤 했다. 친정 근처의 공원에 갈 때면 그 시절 그녀가 문득 떠올랐다.     


학교 친구인 그녀는 그림을 참 잘 그렸다. 가끔 우수에 젖은 외로움의 눈빛이 있었지만 그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과 재능을 가졌다. 졸업 후 집이 가까웠던 우리는 공원 벤치에서 자주 만났다. 캔맥주 하나씩을 들고 ‘우리의 20대 청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짝이는 재능이 빛났던 그녀의 그림은 나에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우리는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조금씩 멀어졌다. 각자 사는 곳도 달라지고 그녀가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면서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고, 어느 순간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동안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의 연락처를 보았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 멀어졌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떤 행동이 불편했던 걸까.’

‘무심코 던진 말에 실망했던 걸까.’     


더이상 전화를 받지 않는 그녀가 의아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정작 상대에게 나는 어떤 말 못 할 불편함을 줬을지도 모른다.      


이 더위가 영원히 함께할 것 같아도 계절이 지나면 땀 흘린 기억이 흐릿해지듯,

오늘처럼 화창한 날씨도 한순간에 스쳐 가는 너와 나의 시절 인연을 닮았다.     


이렇게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우리의 추억이 깃든 공원 벤치에서 맥주캔 하나씩을 들고 막연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왁자지껄 나누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녀의 전화번호에 오랜 시간 내 시선이 머물렀다.    


‘작가의 꿈을 펼치고 싶었던 그 계절 우리의 시간을 기억해.

 힘든 일은 좀 나아졌기를.

 언제나 너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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