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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Apr 16. 2018

어떤 임산부가 만난 천사

  나의 출근길은 버스와 지하철, 도보가 섞인 70분짜리 장거리 여행.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에 서서 삼십여 분을 버티는 것이다. 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안다.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들과 딱 붙어 뜨거운 숨결을 주고받다보면 출근도 하기 전에 퇴근하고 싶어지는 것이 만원 지하철 출근이다.

  사정이 이러니 아기가 생겼을 때 남편은 나의 출근길을 몹시 걱정했다. 배가 많이 부르기 전까지는 자리 양보받기도 힘들텐데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괜찮을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임산부들이 겪는 고초에 대해서는 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내 친구는 임신했을 때 교통약자석에 앉았다가 어떤 할아버지에게 지팡이로 맞았다.

  “어린 것들은 저리 가라!”

  지팡이를 휘두르며 일갈하는 할아버지에게 임산부라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 했다고 했다. 그랬다가 지팡이로 한 대 더 맞을까봐.

  뉴스에서는 더 험악한 이야기도 종종 들렸다. 교통약자석에 앉아있는 임산부에게 임신했는지 확인하자며 옷을 걷어올린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 왜 노인들 자리에 앉았느냐며 배를 때렸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 험한 세상에 아기를 낳아도 될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런 이유로 임산부 배려석이 생긴 모양이지만 출퇴근 시간에 그 자리가 비어있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둥 옆 분홍색 의자에는 임신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날이 훨씬 많다. 어떤 임산부들은 그들에게 양보해줄 것을 부탁하기도 하는 것 같던데  나는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배려해줄 것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하면 더 상처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벌한 대중교통 출퇴근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임산부 먼저’라고 쓰여진 작은 배지를 가방에 달고 다니는 것뿐이었다. 그 배지를 보고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해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다만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임산부라는 걸 알아보고 한 명이라도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임신 7-8주쯤이었나. 입덧 때문에 손잡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서 있는데 누군가 내 가방을 톡톡 쳤다.

  “여기 앉아요.”

  교통약자석에 앉아계시던 아빠뻘의 아저씨였다. 임산부라는 이유로 자리를 양보받은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기에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후,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칠 때마다 아저씨는 내게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대부분 같은 시간대, 같은 칸에서 전철을 타기에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날 때도 있었는데 아저씨는 그 때마다 망설임 없이 자리를 내주셨다. 나와 남편은 그 분을 ‘천사 아저씨’라고 불렀다.

  천사 아저씨에게 자리를 양보받은 게 대여섯 번 됐을 즈음이었다. 매번 감사합니다, 하며 홀랑 자리를 넘겨받는 게 죄송해서 “이렇게 늘 자리를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더니 아저씨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애기 가진 사람은 넘어지면 안 돼요. 앞으로도 지하철 타면 내 앞으로 와요.”

  

  가끔은 자리를 빼앗는 게 죄송해서 약간 멀리 떨어져 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저씨가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저기! 이리 와서 앉아요.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에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 며칠 전, 작은 종이가방에 귤 한 봉지, 음료와 간식 등을 담아 아저씨께 건넸다. 안 받겠다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억지로 가방을 쥐어드렸다.

  “그냥 귤 한 봉지에요. 저희 아기가 드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인 셈 치고 받아주세요.”

  “어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길 미끄러운데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다녀요.”     


  아저씨를 만나지 못 한 날이면 끝까지 서서 가야 하는 날도 많았다. 하루는 교통약자석에 앉은 젊은 남자가 임산부 배지를 보더니 얼굴 한번, 배 한번 쓱 훑어본 후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 게임에 열중했다. 배가 안 나왔으니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티나지 않는 임산부들이 더 힘들 수도 있는데. 입덧 때문에, 어지럼증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다가 쓰러지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했다. 나는 임신 초기 울렁거림 때문에, 중기로 넘어와서는 골반통 때문에 서 있는 게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임신 전까지는 같은 여자인 나도 이런 고통을 몰랐다. 그러니 임신 해보지도 않은 젊은 남자가 그런 사정을 알아주길 바라는 건 무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겪어봐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천사 아저씨의 배려가 더 귀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는 임신의 고통을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매일 양보를 해주셨을까. 어쩌면 아저씨에게는 나처럼 아기를 가진 딸이나 며느리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아기를 키우나 걱정하던 예비 엄마는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의 배려 덕분에 아직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래도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그러니 너도 좋은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고 언젠가 아기에게 말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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