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멈춰있던 시간과 다시 시작한 일

by 코모레비요이



4개월을 떠돌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2020년 초였다. 거리는 평소처럼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 얼굴은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낯선 바이러스 이야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때는 그 바이러스가 그렇게 오래 모두의 일상을 멈출 줄 몰랐다.


나는 대학교 외국어 학부에서 조교로 일을 시작했다. 학교는 급하게 비대면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대부분 메일로 안내문을 정리하고 번역했다. 가끔은 전화를 받아 사용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얼굴 대신 화면을 사이에 둔 채 목소리만 오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메일함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답장이 쌓였다. 짧은 문장과 함께 덧붙여진 작은 이모티콘이 마음에 남았다. 직접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작은 표시만으로 하루가 조금 밝아졌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접촉은 조심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럴수록 태국에서의 시간이 더 자주 떠올랐다. 옷 위로 전해지던 체온과 천천히 이어지던 호흡. 몸과 몸이 가까워질 때 생기던 조용한 안정감. 모든 게 다 그리웠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에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연습을 하기도 했다. 요가매트를 깔고 그 위에 담요를 여러 겹 쌓아 작은 자리를 만들었다. 태국에서 받았던 교재를 펼쳐 두고 동작을 하나씩 다시 따라 했다. 친구의 팔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늘이며 숨을 맞추었다. 방 안이 고요해지면 나도 함께 숨을 고르게 되었다.


그때는 아직 서로의 거리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던 시기였다. 상황이 심각해진 뒤로는 사람을 집으로 부를 수 없었다. 대신 혼자서 동작을 복기했다. 바닥에 대고 손을 움직이며 순서를 다시 짚었다. 그렇게라도 감각을 잊지 않으려 했다.





평일에는 조교로 일하고, 주말에는 피부 미용 국가자격증 학원에 다녔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실기 시험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일정이 잡혔다가도 다시 취소되기를 반복했다. 준비는 계속했지만 시작은 자꾸 뒤로 밀렸다.


그러다 어느 날, 실기 시험이 다시 열린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준비물을 하나씩 챙겼다. 산더미처럼 느껴지던 도구들을 빠짐없이 가방에 넣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그 무렵 러쉬 스파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지원 자격에 피부미용 국가 자격증이 적혀 있었다. 시험 결과가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원서를 보냈다. 며칠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하필이면 면접 날 아침이 자격증 합격 발표 날이어서 더욱 긴장됐다.


면접 당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합격이었다. 그동안 시험 일정이 미뤄질 때마다 괜히 혼자 속을 끓이던 시간이 떠올랐다. 덕분에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긴장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면접 보는 내내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크라비에서 만난 귀여운 고양이. 내가 한참을 귀여워하니 주인분이 웃으며 고양이를 들어 보여주셨다.


면접 결과는 합격이었다. 기쁘다는 마음과 함께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따라왔다. 그래도 내가 원하던 트리트먼트를 하는 곳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마음이 조금 들뜨면서도 조용해져서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코로나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서로를 조심하고 있었다. 모두가 서로 멀어지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기던 시기에 나는 몸을 다루는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가까워지는 방식을 익히는 일이 시대의 방향과는 조금 어긋나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 이 시리즈에 함께 올리는 사진들은 모두 여행하면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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