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민 비타민에 내 마음은 한 뼘 더 자라고
다음날, 삼청동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던 우리는 안국역에서 만났다. 그는 오늘 정장이 아닌 옷차림으로 날 만나러 와 줬다. 네이비색 피케셔츠와 같은 색의 캡모자, 그리고 그레이 계열의 트레이닝 바지. 어제의 모습 보다 다소 앳되어 보이는 얼굴.
“삼청동 걸어도 괜찮아?”
“응. 무리하지 않으면 괜찮아. ”
그와 연인이 되었지만 우리 사이엔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누나라고 불렀고, 나는 그의 앞에서 어른인 척했으며 그와 나는 나란히 걸었다. 다만 그와 나의 간격은 어느새 좁아져, 우리는 스치는 어깨의 떨림을 느끼며 걸었다.
“더운데 커피 마실까? “
그와 나는 삼청동에 있던 네스카페에 들어섰다. 다소 늦은 시각, 매장 안은 생각보다 한산하고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 줄 정도로 시원했다.
“누나. 이거.”
그는 시원한 커피가 나오자 불쑥 가방에서 어설픈 솜씨로 포장한듯한 정체불명의 물건을 건넸다.
“이게 뭐야?”
“누나가 낮에 피곤하다고 하길래 비타민 선물해 주려고. 포장도 내가 직접 한 거야.”
그는 자신이 포장했다고 이야기하며 민망한 듯 바라보고 있던 내 눈을 피해 버렸다.
이건 반칙이다. 이렇게 나오면 나는 이 연애에 빠져 버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애정을 받아 본 기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이전 연애에서도 이런 순간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순간이 더 특별했다. 그저 지나가듯 나눴던 대화였는데, 잊지 않아 주었다니 고마웠다. 고마움과 동시에 이 마음을 받아도 되는 걸까, 순간 망설여졌다.
“고마워. 매일 챙겨 먹고 더 건강해질게.”
머릿속의 고민은 들키지 않은 채, 나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이번엔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고마운 사람, 이 사람이라면 앞으로 분명 사랑에 빠지리라 생각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