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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Mar 05. 2023

사랑의 자물쇠를 건다고 사랑이 영원해질까?

땀이 잔뜩 고인 손을 후후 불어 주었다


그와 시간을 갖기로 한지 일주일이 되어 갔다. 아침마다 모닝콜을 핑계로 울리던 휴대전화는 조용했고, 잠들지 못하던 새벽에 나누던 대화는 사라졌다. 내 삶 속에서 그는 그렇게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연애라고 부를만한 사건들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크게 힘들지 않은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느새, 계절은 가을이 되어 가고 있었다.


- 누나. 집 앞에 와 있어.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연락을 기다렸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를 확인한 건 그가 메시지를 보낸 지 30분이 지난 후였다.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옷을 챙겨 입고 바로 집 문을 나섰다. 이미 간 건 아닐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음이 초조해졌다.


“누나.”


공동현관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있던 그를 마주했다. 오늘은 편안한 차림새인 걸 보니, 일을 하지 않은 걸까 생각했다.


“메시지를 늦게 봤어. 기다리게 해서 미안.”

“아니야. 괜찮아. 내 마음대로 온 건데, 그보다 얘기할 시간 좀 줄래?”

“놀이터로 가자.”

“오늘은 아버지 차 끌고 왔어. 드라이브하면서 얘기 좀 하자.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남산.”


그와 잠시 편의점에 들러, 실론티와 복숭아 아이스티를 산 뒤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처음이었다.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탄 것도, 남자친구와 드라이브를 한 것도.


“누나. 잘 지냈어? 우리 일주일 동안 연락 못했는데, 왜 연락 안 했어?”

“연락은 나만 해야 해? 하고 싶었으면 네가 했으면 됐잖아.”

“누나가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 기다렸어.”

“그럼 오늘은 왜 연락했어?”


연락이 없던 시간들 동안 나는 조금씩 그와의 관계를 체념해 가면서 예민해져 있던 걸까. 날 선 말들이 그에게 향했다. 그는 어떤 표정일까, 운전을 하고 있어서 내 눈에 보이는 건 그의 옆모습이 다였지만 그가 당황했다는 게 느껴졌다.


“누나. 오해가 있던 거 같아서 우선 그것부터 얘기할게. 지난번에 내가 누나한테 외박할 수 있냐고 했던 거, 다른 의도 없었어. 그 주, 주말에 내가 일하는 곳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사람이 필요했어.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한 명씩 사람을 데리고 오기로 했었고, 나는 부탁할 사람이 마땅히 없어서 혹시나 하고 누나한테 물어봤던 거야.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어. 다만 누나가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고 있어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망설이다가 여기까지 온 거 같아. 미안해, 잘못했어.”


그의 말을 들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마음에 나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남산에 도착했다.


“내려서 조금 걸을까?”


아직은 더운 밤의 열기. 하지만 그 열기를 비집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 9월의 밤, 계단을 오르는 도중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누나. 힘들지 않아? 내가 잡아 줄게.”

“나보다 너 다리는 괜찮은 거야?”

“응. 나 많이 괜찮아졌어. 그러니까 잡아도 돼.”


그가 내게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를 오해하는 바람에 그와 시간을 갖자고 말했던 내가 여기서 손을 잡는 건 너무 모순적인 행동이지 않을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 그가 내 손을 잡았다. 그가 잡은 내 손이 긴장감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손을 잡고 남산에 올라, 같은 시선으로 야경을 바라보았다.

“이쁘다. 오길 잘한 거 같아.”


여전히 우린 손을 잡고 있었고, 눈앞에 펼쳐진 반짝이는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자물쇠 거는 곳인가 보다.”

“그게 뭔데?”

“연인들끼리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면서 자물쇠는 걸고 열쇠는 버린대. 자물쇠 영영 못 풀게.”

“우리도 할까?”

“이미 끝났어. 시간이 늦어서 자물쇠 파는 가게 문 닫았어.”

“에이, 아쉽다. 그런데 뭐, 저거 한다고 사랑이 영원한 건 아니니까.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우리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제 앞으로는 서로 오해할 일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풀자고 약속했다. 유치하게도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까지 하고 나자 손에 땀이 흥건하단걸 깨달았다.


“땀난 것 봐.”

“미안. 내가 손에 땀이 많아. 대신 내가 불어 줄게. “


그는 내 손을 가져가 호호 불어 주며 땀을 식혀 주었다. 그의 다정함에 얕게 남아 있던 서운함조차 사라지는 기분, 이제는 내가 용기 낼 차례.


“앞으로 누나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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