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망설이는 사이 혼자 에스컬레이터 올랐다
남산에 다녀온 이후, 우리는 한층 더 연인이라 부를 수 있는 행동들을 서슴없이 하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밤마다 대화를 나눴고, 손을 잡았고 그는 나에게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나’라는 호칭이 이토록 무거운 단어였던 걸까. 호칭이 바뀐 것뿐인데 우리 사이를 맴돌던 어색한 공기가 걷히고, 우리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한층 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지인 결혼식에 다녀온 내가 그를 만난 건 토요일 오후 5시. 홍대역 근처 yz파크에 있는 롯데시네마에 가서 영화를 보기 위해 우리는 1층 유니클로 매장 앞에서 만났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도 괜찮으면 에스컬레이터로 움직이자. “
“좋아.”
토요일 오후, 홍대는 곳곳마다 사람이 넘쳐났나. 에스컬레이터도 마찬가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몰린 사람들로 인해 길게 줄이 늘어섰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줄에 선 순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고개를 돌린 순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어? 어? 야, 너 여기 웬일이야? “
그도 여기서 그 여자를 만날 거라곤 예상하진 못했었는지, 당황한 얼굴로 허둥지둥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에스컬레이터에 홀로 올라서게 되었고, 그는 그 여자 곁에 서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선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얀색 점퍼에 하얀 얼굴을 하고 있던 여자는 그의 옆에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여자친구야? 내가 여자 소개해준다고 했을 땐 싫다더니.”
그 여자의 목소리가 멀리서도 선명하게 들려왔고, 그는 여전히 그 여자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굳어 있었다. 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2층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와 대화를 끝낸 건지 곧바로 그가 2층으로 올라왔고, 알 수 없는 불쾌한 감정에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질투인 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질러진 감정들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나 영화 못 볼 거 같아. 먼저 갈게.”
그를 뒤로 하고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 순간, 눈물에 눈앞이 뿌옇게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