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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Mar 13. 2023

그의 아픈 다리 보다 중요했던 것

얄팍한 자존심에 용서도 미워도 못하고


울면서 건물을 빠져나간 내 뒤로 그가 쫓아왔다. 많은 인파를 뚫고 한적한 동네 골목길에 들어서기까지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 걸까. 그가 다른 여자와 이야기해서? 아니면 나 혼자 에스컬레이터에 올랐기 때문에? 나조차도 납득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얘기 좀 해.”


그가 뒤에서 내 팔을 잡았고, 나는 그를 뒤에 두고 멈춰 섰다. 그와 내 사이에는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다. 별 거 아닌 상황이었다. 그는 그냥 지인을 만난 것뿐이고, 순간 나 혼자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것뿐이다. 하지만 그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도, 내가 먼저 입을 열고 싶지도 않았다. 얄팍한 자존심에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다리가 저릿해질 정도로 꽤 오랜 시간 서 있던 나는, 문득 한 자리에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더 아프다는 그의 말이 생각났다. 아차 싶었지만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리가 아픈지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나름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다시 터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입 속에 맴돌던 수많은 언어들은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았다.


“왜 울어. 네가 울면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제발 울지 마.”

“너 미워. 아니, 그 여자가 더 미워.”

“내가 어떻게 할까? 무릎이라도 꿇을까?”


그는 나를 돌려 세운 다음, 무릎을 살짝 굽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무릎을 꿇어서 네가 울지만 않는다면 무릎이라도 꿇을게. 내가 다 잘못했어. “


그의 잘못이 아닌 걸 안다. 그렇지만 원치 않았던 상황과 들켜 버린 내 질투심이 부끄러워서 망설이고 있었다. 앞선 내 이기적인 감정이 배려하지 못한 그의 다리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는지 길 한편에 주저앉았다.


“미안. 다리가 너무 아파서 더는 못 서 있겠어.”


못된 년. 스스로 나를 욕하면서 그의 옆에 같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냥 내 눈물 닦아 줘. 그리고 앞으론 나부터 생각한다고 말해 줘.”

“그럴게.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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