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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Apr 04. 2023

밤이 되면, 절뚝이며 걸어오던 그의 다리를 보았다

필요했던 돈을 위해 그는 다른 일을 시작했고


그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런 그의 마음에 사랑을 애써 확인하지 않아도 사랑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우리는 평일엔 밤 10시가 다 되어서 만났고, 주말엔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 만났다. 그는 언제나 나를 만나러 올 때면 낡고 너덜너덜한 종이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왜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냐고 묻자, 아끼던 가방을 잃어버린 이후로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대답을 해줬다. 꼬깃하고 너덜너덜한 종이가방을 가방이라고 들고 다니며, 언제나 그날 먹을 도시락을 들고 다니던 그를 보면서 정신이 건강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는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아팠음에도 매일 왕복 4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일을 하러 다녔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다음 주부터 다른 일을 하나 더 시작했어. 아마 평일엔 못 만나거나 아니면 늦게라도 잠깐 만날 수 있도록 해볼게.”

“어떤 일인데?”

“태권도 사범 일이야.”

“태권도 사범? 다리는 어떻게 하고? “

“예전에 일하던 곳이라서 내 사정을 알고 계셔. 힘들지 않게 하면 된다고 하셨어.”


그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가 걱정되었다. 그의 다리가 견뎌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의 의지는 완고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해. 수술한지 아직 일 년도 안 지났어. 큰일나.“


내 말은 현실이 되었다. 그가 사범 일을 시작하고 한 달이 채 안 되던 날, 나와 데이트가 있던 날이면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 오던 그에게 전화가 왔다.


“나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아. 수술했던 부위에 염증이 생겼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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