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테두리 속에서 함께였다
그의 입원은 매 년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적을 땐 한 번, 많게는 두 번. 그럴 때마다 나는 여전히 그의 보호자가 되어, 그의 머리를 감겨 주기도 했고 병원 밥이 맛없다는 투정에 반찬을 만들어 가기도 했다.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다 보면 어느 날은 여름, 어느 날은 겨울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3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내 나이 스물여섯 가을. 그동안 그는 편의점, 옷가게, 다시 태권도 사범. 그리고 입원. 반복적인 입원으로 결국 그는 사무직을 선택했다. 그가 9개월 인턴직시기에 나는 다니던 학원 강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잠시 일을 쉬고 있던 나에게 그는 삼십만 원을 주었다.
“별 건 아니고, 너 생활비야. 부족할 거 같아서.”
나는 그의 마음을 거절했지만 그는 내게 내민 삼십만 원이 든 봉투를 계속 내밀었고, 결국 그 돈을 받았다. 내가 그의 보호자가 되어 주었듯이 그가 나의 보호자가 된 느낌이었다.
“오늘 점심은 생선구이 먹자. 내가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먹었는데 맛있어서 너 생각났어.”
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나는 아침이면 마포아트센터에서 미뤄 두었던 수영을 저렴한 가격에 배웠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운행 중인 셔틀버스를 타고 오갔다. 그리고 오후엔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러다 오후 5시쯤이 되면 그가 다니던 기술보증기금 근처 카페에 앉아 그의 퇴근을 기다렸고 퇴근 후에는 함께 저녁을 먹고 컴퓨터 학원에 다녔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그리고 그의 인턴 생활 종료와 함께 그의 나이 스물여섯, 내 나이 스물일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