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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Feb 22. 2018

김보름 사태를 오독하는 말들에 대하여

다른 의견 가질 권리를 존중한다. 그렇다면 어떤 의견에 대한 반대 의견도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김보름 사태를 옹호해 논란이 되는 주장을 접하고 쓴다.


김보름이 비판받는 이유는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주자가 통과해야 '팀 기록'이 인정되는 경기였다. 거기서 뒤떨어진 같은 팀 주자를 놓고 달리면 그게 최선을 다한 걸까.


잊지 말자. 개인 경기가 아닌 팀 경기였다. 연습도 아니고 올림픽 경기였다. 팀원을 저 뒤에 두고 달린 건 최선을 다한 게 아니라 규정을 무시한 채 하고 싶은 대로 한 거다. 앞서가기 위해 열심히 달렸을 수는 있으나 그게 최선은 아니었다.


최선이란 말을 곱씹어보자. 최선은 정당한 룰 안에서의 방식 문제다. 최선이란 말 그대로 가장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설령 김보름이 혼자 달려 그날 세계 신기록으로 들어왔더라도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나? 그건 해당 경기 룰 안에서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기에 ‘열심히’라고 할 순 있지만 ‘최선’이라곤 할 수 없다.


조금 다른 예로 덧붙이자면 사회에서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나는 열심히 살았다”라고 하는 거다. 굳이 비유하자면 국정농단의 여러 부정 세력들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주말도 없이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룰을 어긴 과정에서 낙제점이다. 그들 말대로 열심히 부를 축적하는 데 혈안이 됐을지언정 시작점과 정당성에서 틀렸기에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다. 최선이란 말 안에는 '악'을 배제한 최소한의 '선'이 들어있다.


돌아보자. 경기 후 김보름은 인터뷰에서 저 뒤에 처진 동료를 비웃었다. 다수 여론이 비판하는 지점은 여기다. 다른 거 끄집어내서 호도하지 말자. 오로지 이것만 보자. 여기엔 노선영의 개인 스토리와 김보름의 개인 스토리가 녹아들 필요와 이유가 없다.


도대체 여기서 왜 노선영이 어떤 선수이고 김보름이 어떤 선수인지가 중요한가. 그걸 모르면 비판조차 할 수 없는 사안인가. 반대로 그걸 알아야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이번 사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여론은 지금 안 보이는 것을 추론해서 비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명백히 펼쳐진 장면을 두고 비판하고 있다.


일부에선 청와대 국민청원 두고도 말이 많은데 그 제도는 글이 올라온 이후 또 다른 절차에 따라 추후 검토 여부를 확정받는다. 다시 쓰지만 잊지 말자. 이렇게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표출됐던 시대는 이전에 없었다. 대다수가 세상을 향해 정당하게 목소리 낼 수 있는 시대를 원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왜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경기를 펼쳤을까. 이건 결과가 아닌 과정의 문제다. 누군가는 뒤에서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자중하라고 한다. 더 신중하게 지켜보자는 얘기다. 충분히 동의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번지수가 다르다. 지금 여론은 본 것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을 추론하면서 음모론을 제기해 비판하는 게 아니다. 충분히 눈앞에서 벌어진 장면을 놓고 분노하고 있는 거다.


특정인들이 여론을 이끈다는 신념을 가지고 내지르는 말들도 우악스럽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다수의 여론은 언제나 집단 광기인가? 한 사람을 향한 집단의 비판은 매번 마녀사냥인가? 여론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다수 여론에 강하게 반대하려면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최소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하려면 예스라고 하는 이들보다 근거가 더 풍성하고 많아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그저 튀는 말을 해서 나는 너네와 다르다고 하려는 수준 낮은 엘리트주의와 요즘 말로 ‘힙’하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


운동만 해온 어린 선수라서 세상을 모르니 그만 좀 하라는 것 또한 나약한 주장이다. 그건 관용이나 포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김보름이 논란의 인터뷰 직후 일사천리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닫은 약삭빠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도 누군가 시킨 것일 수 있다고 사실 비판 앞에서 음모론으로 대응할 것인가? 유치한 주장에 유치하게 대응하자면 26살이 결코 어린 나이도 아니다.


묘하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떠오른다. 그들 역시 그가 나이 많은 어른이며 아버지 어머니를 잃은 상황에서 국민만 보고 살다가 최순실 같은 사람과 엮여 당했다고 말한다. 운동만 해서 세상을 몰라 물의를 일으켰단 근거 또한 대통령 딸로서 국민만 봐서 세상을 몰라 최순실한테 당했다는 말과 겹친다.


잘못을 포용하고 껴안는 게 성숙한 사회라며 김보름에 대한 비판을 멈추라는 제안 역시 당장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정도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정당한 대가를 치른 뒤에 포용해도 늦지 않다. 옹호론 펼치는 이들 말마따나 대가를 치르고 더 좋은 한 개인으로 거듭나기에도 충분히 어린 나이의 선수 아닌가.


빙상연맹이 부패한 것도 알고 운동하는 기계만 양성하는 국가 시스템 문제가 있는 것도 충분히 안다. 당연히 이를 바꿔야 하는 의무가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적법 절차를 어기고 스포츠의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누군가를 상처 주는 것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그 안에 있는 모두가 김보름처럼 하진 않기 때문이다. 시스템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쉽지만 개인 문제를 시스템 문제로 환원하는 것 역시 쉽다.


거듭 반복하지만 관용과 포용은 그다음이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선수와 단체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할 사안이다. 끼워 맞추고 오독해서 선수는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국민들 가르치려 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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