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예나의 공부

by 반동희

예나는 오른발에 힘을 줬다. 액셀을 더 밟았다. 차창 밖으로 가로등이 쓰러졌다. 속도계는 200을 막 넘어섰다.

담배를 깊게 빨았다. 전방에 과속 카메라가 있다는 내비게이션은 울림은 무시했다. 창문을 내리고 꽁초를 버렸다. 바람 소리가 우우거렸지만 스포츠카 엔진 소리로 덮어버렸다.


“언니, 그 인간들 아직도야?”


예나는 걸려온 전화를 받자마자 신경질적으로 퍼부었다.


“무조건 오늘까지라고 해. 1분도 더 없어. 그런 인간들 언니도 알잖아. 1분이 뭐야 10년을 더 줘봐야 달라지는 거 없다니까? 알았어. 내일 출국이라 전화 못 받을 수도 있어. 일단 언니 몫 계좌로 넣었으니까 그 인간들 나가면 문자나 하나 줘.”


예나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예나는 며칠 전 경매에서 빌라 한 세대를 샀다. 입지나 연식을 봤을 때 크게 저렴한 가격도 아니었다. 그래도 압도적인 낙찰가로 손에 넣었다. 마음 같아선 한 동 전체를 사고 싶었지만 ‘언니’가 말렸다. 그 돈으로 더 좋은 곳에 투자하라는 만류였다. 푼돈이었지만 ‘언니’는 예나가 그 빌라 한 세대를 사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니’는 예나가 수고비로 절반을 떼어주겠다는 제안에 말리는 걸 멈췄다. 예나는 경매 후 돈이 없다는 핑계로 입주자가 버틸 게 뻔하다며 그들을 내보내 달라고 했다. 자기는 그런 구질구질한 사람들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성한 씨 댁이죠? 경매로 넘어간 것 아시죠? 시간 별로 없습니다. 길게 못 드려요.”


15년 전 웬 사내 둘이 들이닥쳤다. 중학교에 다니던 예나는 막 7교시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터였다. 낯선 사내들을 현관 구멍으로 빼꼼히 봤다. 무서웠다.

막노동꾼 아빠의 퇴근은 아직이었다. 여기저기 파출부로 일당 버는 엄마의 귀가도 아직이었다. 외동딸 예나는 집에 없는 척했다. 인기척이 없자 사내들이 발로 문을 찼다. 그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예나 이름까지 부르면서 집에 있는 것 아니까 부모님께 똑똑히 전하라고 했다.


지독한 가난의 종착지였다. 며칠 뒤 집을 비웠다. 아빠는 말없이 집을 나갔다. 엄마는 예나에게 1년만 막내 이모집에 가서 지내라고 했다. 예나는 그러지 않았다. ‘거주지’만 이모네 집으로 행했을 뿐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학교도 친구도 시시했다. 계절마다 학년마다 물려받은 교복 생활도 지겨웠다.


“예나야, 처음만 그렇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적당히 분위기 맞춰주고 지내다 보면 용돈도 생기고 그래. 이쪽 길 바싹 해서 돈 벌면 스무 살만 갓 넘어도 집 사고 차 사고. 어때?”


‘언니’와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벼룩시장에서 뒤진 가족 같은 분위기에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접한 뒤였다. ‘언니’는 열다섯 살의 예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언니’는 예나를 늘 연예인 지망생이라고 손님들에게 소개했다.


욕망의 덫은 점점 예나를 다른 세계로 밀고 갔다. 못 먹던 술도 마시기 시작하고 점점 세상이 잘라놓은 어둠의 시간에 익숙해졌다. 돈이 조금 모이면 여기저기 외모를 가꾸고 그 발랄함으로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래도 억척이 같던 ‘언니’를 따라 목돈은 조금씩 쌓여갔다.


“예나 네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 곧 지금의 너야.”


‘언니’는 입버릇처럼 예나한테 말했다. 정·재계 관계자들이 모이는 자리일수록 더욱 예나를 끼고 참석했다. 그들의 얘기는 한치도 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누가 연봉을 얼마에 계약했다더라, 누가 이번에 어디 주식을 샀다더라, 누가 이번에 개발 지역을 미리 알아서 당길 수 있는 돈을 몽땅 당겨 털어 넣었다더라 등등이었다.

전부 먹고사는 것을 가장한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의 언어였다. 그런 말들이 밤의 세계를 휘감았고 예나는 그 한가운데서 귀를 쫑긋했다.


“잘 들어 예나야. 세상엔 법칙이란 게 있어. 그 법칙을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고. 돈이 나쁘다고? 그건 못 가져서 맨날 당하고 사니까 억울한 것들이나 하는 얘기야. 돈이 어디서 어떻게 구르는지 아니? 봐봐. 여기 우리가 굴리잖아. 그 구르는 걸 어떻게 내 주머니에 넣는지 공부도 안 하는 것들이 푸념이나 늘어놓는 거라니까? 자본주의가 왜 나빠? 자본주의는 나쁜 게 아니야. 나쁜 거면 벌써 망했게? 기회를 주는 거라고. 기회를 쳐다도 안 보는 것들이 맨날 땅만 보고 사니까 땅에서 기는 거 아니야. 공부들을 안 해. 공부들을.”


예나가 열아홉이 되었을 때 손님한테서 들은 얘기였다. 조언이랍시고 비틀거리며 어불성설 하던 중년의 남자는 자기를 투자자문사라고 소개했다.


예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돈이 없어 가정이 파탄 났으며 돈이 없어 앞으로도 돈이 없을 것인데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밤에는 돈을 벌고 낮에는 밤에 귀동냥한 것들을 토대로 그들이 떠들었던 곳에 돈을 넣기 시작했다.


“연성 씨, 우리가 두 달 뒤부터 작전을 할 거야. 한 삼 주 정도 바싹 주가 조인 다음에 저가에 대량 매수하는 거지. 그리고 일주일 정도 텀을 둬. 여기저기서 어쩌고 저쩌고 떠들기 시작할 거야. 그때 정보를 뿌리는 거지. 그다음 뭐다? 뻥뻥 터뜨리는 거야. 차익 챙기고 설거지 전문가한테 맡기고. 폭탄 돌리고 한 육 개월 사라지자고. 판 다 깔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 밤이었다. 자주 놀러 오던 손님들 중 하나가 예나가 탄 양맥을 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예나 너도 맘 있으면 술 따르다가 나가서 좀 사고. 대신 어디 얘기하면 아주 이 가게 폭발하는 거야.”


백발이 성성한 한 중년의 남자는 혀가 꼬부라져 떠들었다. 그는 땀이 흥건한 손으로 예나의 손을 잡으며 끈적하게 웃었다.


예나는 다음날 바로 그 ‘작전’이라는 곳의 주식을 샀다. 아무것도 몰랐다. 어차피 있어도 살았고 맨날 없었던 돈이니 털어보자는 결심이었다. 결과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언니’도 따라 샀다. 둘은 돈이 돈을 번다는 걸 귀동냥으로만 듣다가 실제로 처음 경험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세상의 법칙’을 이해하는 사람이란 자신감을 키웠다. 투자 금액과 수익 금액은 정비례로 올랐고 15년 만에 예나는 십억 대 자산가가 됐다.


‘그 인간들 우리 형들 불러서 내쫓았어. 근데 너 정말 왜 그렇게 그 빌라에 목을 매? 절반 줬으니까 하긴 했는데 나라면 정말 안 산다. 그 퀴퀴한 빌라.’


‘언니’한테 문자가 왔다. 호텔 침대에서 막 잠을 깬 예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담배랑 라이터부터 찾았다. 그 빌라는 15년 전 예나네 가족이 내쫓긴 그 집이었다.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진짜 세상 웃기지 않아? 왜들 그렇게 공부를 안 해서 힘들게 살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난 경매가 제일 짜릿해. 주식이고 갭 투자고 다 필요 없고 경매만 할 거야. 인간들이 우중충하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직도 노력 안 하는 인간들이 많잖아. 공부들을 안 해. 나라도 알려줘야지 내가. 알아먹을진 모르겠지만.”


예나는 웃으면서 쉬지 않고 떠들었다. 수화기에서도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예나는 호텔 로비에 전화해 차를 대기시켜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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