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우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그냥 축구선수가 아닌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다. 어린 눈으로도 TV에 나오는 국가대표 축구선수는 화려했다. 인생 한방을 의미했다.
뛰어난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한 사람도 단박에 될 것이었다. 빚을 잔뜩 진 가정이 풍비박산 나던 날도 떠올랐다.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엄마에게 존재감을 뽐낼 기회이기도 했다.
재우는 먼 훗날 유명 선수가 된 자신을 그렸다. 상상 속에서 재우는 방송 인터뷰를 하며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자기는 괜찮으니 연락해 달라고 말했다.
“휴대폰으로 결제할게.”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카드 결제 앱을 켠 뒤 재우에게 건넸다. 재우는 수입 캔맥주 4개를 바코드에 찍은 뒤 만원을 결제했다.
남자는 캔 맥주를 들고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았다. 재우는 남자를 뒤따라 나갔다. 이곳은 인근 주민 민원이 들어와 밤 10시부터 음주를 할 수 없다고 재우는 남자에게 말했다. 얼굴이 취기로 벌건 남자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거 참 그럼 치우던가. 재수 없게.”
남자는 재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여자를 흘끔거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편의점 계산대로 들어왔다. 창밖에 남자를 슬쩍슬쩍 훔쳐봤다. 다행히 남자는 꽁초를 바닥에 튕기고는 제 갈 길을 갔다. 맥주 봉지가 남자 손에서 출렁거렸다.
“튀랑 알아? 이번에 프랑스 월드컵 4강에서 골 넣은 튀랑 있잖아. 이야. 오버래핑 엄청 나대. 튀랑이 2골을 몰아쳐서 프랑스가 0대 1에서 2대 1로 이겼잖아. 크로아티아 깜짝 놀랐지 뭐. 근데 튀랑 걔가 그렇게 어렵게 컸대. 근데 지금 봐. 엄청나지? 재우도 그렇게 할 수 있어?”
재우가 고등학교에서도 축구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재우 아빠가 한 말이었다. 16살 중학교 졸업 직전의 일이었다. 재우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재우는 중학교에서도 줄곧 처진 공격수로 뛰었다. 중거리 슛 한방 덕분이었다. 재우는 동료 최전방 공격수와 상대 최종 수비수가 혼선을 빚는 그 틈을 쭉쭉 뻗는 볼 줄기로 단번에 정리하곤 했다.
중학교 코치는 재우에게 패스 위주의 플레이보다는 기회만 보면 무조건 슛을 때리라고 지시했다. 코치는 재우에게 패스는 동료가 바뀌면 맞출 수 있지만 슛은 개인 능력이므로 계속 연마하면 프로까지 문제가 없다고 했다. 팀이 얻는 프리킥과 코너킥은 재우가 도맡아 찼다.
재우는 튀랑이 골망을 흔들 때 쭉 뻗어나간 슈팅을 생각했다. 경기가 끝난 뒤 땀 흘리며 인터뷰하는 자기 모습이 재차 겹쳤다.
“튀랑?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지.”
4년 뒤면 재우는 20살이 될 거였다. 한국 축구의 미래라는 언론의 호평 속에 국가대표 한 자리를 꿰찬 모습을 재우는 상상했다. 튀랑은 오른쪽 수비수였지만 재우는 시원시원하게 골망을 흔드는 처진 공격수가 목표였다. 안정환보다 얼굴은 못 생겼지만 같은 자리에서 꼭 뛰어넘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레종 요고 두 갑이랑요. 히츠 퍼플도 하나 주세요.”
앳되 보이는 여자 손님이 들어와 재우 등 뒤에 담배 진열대를 눈으로 가리켰다. 재우는 신분증을 요구했다. 점주가 며칠 전 위장 손님이 옆 블록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 그 집이 영업정지를 먹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한 터였다.
“아씨, 짜증 나게. 오전에도 그냥 샀단 말이에요. 신분증 없어요.”
눈가 화장이 번진 어린 여자는 술에 취했는지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재우는 그냥 담배를 내줬다. 바코트 찍는 소리만 삑삑 정막을 깼다. ‘요고든 조고든 피우다 걸리든 뒈지든 알아서 해라.’ 재우는 뒷덜미에 뜨거운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재우는 고등학교 1학년 첫 대회에서 크게 다쳤다.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완전 파열됐다고 의사는 말했다. 재우가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중거리 슛을 쏘는 찰나에 상대 학교 3학년이 디딤발인 왼쪽 종아리를 축구화로 찍었다. 축구인들끼리 속된 말로 ‘담갔다’고 하는 비신사적인 행위였다.
재우는 순간 자기가 운동장에 숨어있던 나뭇가지를 밟은 줄 착각했다. ‘뚝’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그리곤 곧장 악 소리도 낼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덮쳤다.
의사는 수술부터 재활까지 꼬박 1년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주전 경쟁이나 프로구단 관계자 눈도장을 찍기 위한 대쪽 같은 시기에 1년이었다. 이건 운동장 밖에서 경계인으로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1년이란 시간은 지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축구부 애들이 모인 집단에서 완벽한 퇴보일 게 뻔했다. 1년을 뛰지도 못하면서 다달이 내야 하는 축구부 회비는 차라리 도박 밑천에 가까웠다. 콩나물 자라듯 쑥쑥 크는 동료와 전국에 깔린 다른 경쟁자들 사이에서 재우는 음지에서 침전하는 자신이 떠올랐다.
“재우야, 잘 지내니? 많이 컸겠구나. 엄마는 다른 좋은 분과 새 인생을 시작하기로 했어.”
수술을 끝내고 며칠 뒤였다. 하필이었다. 몇 년 만에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우는 답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튀랑을 검색했다. 애석하게도 튀랑은 크게 다친 적이 없는 거로 나왔다.
“투 플러스 원이잖아요. 근데 두 개밖에 없잖아요. 하나는 다른 거로 챙겨 가면 안 돼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 셋이 와서 우유 두 개를 계산대에 올렸다. 밤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재우는 무표정으로 “안 돼” 두 글자만 말했다.
학생들은 그럼 투 플러스 원 종이를 찢던가라며 저들끼리 뒤돌아서서 나가는 길에 떠들었다. 우유는 그대로 계산대에 둔 채였다. 재우는 우유를 집어 제자리에 진열했다. 물건 들어오려면 아직 3시간이나 남았는데 다 먹어치워 버릴까 하는 짜증도 치밀어 올랐다.
재우가 막 재활을 끝냈을 무렵 아빠는 실직했다. 회사 노조 활동 주동자로 찍혀 사실상 정리해고 수순을 교과서처럼 밟았다. 퇴직금으로 차린 치킨집은 대한민국 대다수의 치킨집이 그렇듯 365일 일하고 1095 끼니 겨우 풀칠하는 수준으로 연명했다. 재우 아빠가 실직할 때 재우는 축구부를 나와 가게에서 배달 일을 도왔다.
그날부터 아빠는 단 한 번도 튀랑 얘기를 하지 않았다. 튀랑이 AC 파르마를 거쳐 ‘빅클럽’ 유벤투스로 이적했다는 뉴스를 TV로 같이 봤지만 정적만 흘렀다. 2002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 대표팀이 한국에 왔을 때도 튀랑이 왔는지 안 왔는지 재우는 아빠와 말하지 않았다. 튀랑은 그저 튀랑이었고 재우는 그저 치킨집 배달원이었다.
그래도 재우는 튀랑 소식을 간간이 검색했다. 튀랑은 재우와 아버지가 말한 그 역사적인 골 외에는 득점과 인연이 없었다. 중앙 수비수를 오가는 플레이 스타일도 한몫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 142경기를 뛰는 동안 그때 그 프랑스 월드컵에서 넣은 크로아티아전 2골이 튀랑의 득점 기록 전부였다. 재우와 아빠는 튀랑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보고 그를 논하다가 멈춘 것이었다. 튀랑은 재우가 꿈 꾼 한 방을 해냈다.
재우는 튀랑이 멈춘 자리에서 자신도 멈췄다고 푸념했다. 그래도 튀랑은 튀랑이었고 재우는 축구부 담장 너머로 밀려난 배달원이었다.
재우는 중거리 슛을 찰 때의 그 감각을 떠올렸다. 왼발을 공 왼쪽 정중앙에 수평으로 놓고 오른발 발등으로 중심부를 강타하던 그 접촉면의 0.1초 짜릿함이 생생했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당겨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오른발 발등은 공 한가운데를 강타한 뒤 쭉 뻗어졌다.
공이 날아가는 그 시간만큼은 운동장 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쭉 뻗어나가는 공은 재우의 강력한 분신이자 희망이었다. 훗날의 튀랑이었고 태극마크였으며 엄마와 재회였다. 골문이 출렁일 때 다시 들리는 팀 동료들과 학부모들의 환호성은 아드레날린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저기요. 결제 안 해주세요?”
30대로 보이는 재우 또래의 여자 2명이 껌을 씹으며 말했다. 콘돔 1세트와 숙취 해소 음료였다. 재우는 바코드를 찍은 뒤 뒤돌아서서 나가는 여자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때 마침 새벽 물건을 나르는 트럭이 편의점 앞에 섰다. 재우는 걸어 나갔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당겼다. 프리킥을 찰 때 습관적으로 길게 내뱉었던 호흡을 오랜만에 했다. 편의점 밖에서 ‘후’하고 숨을 내뱉자 입김이 번졌다. 중학교 마지막 대회 결승에서 극적인 프리킥 동점골을 터뜨렸던 상쾌함이 온몸을 감쌌다. 공을 때린 뒤 시원했던 발등의 상쾌함도 오랜만에 꿈틀댔다.
“주문 표랑 물건 수량 잘 대조해 보시고요. 점장님이 커피우유 수량 더 넣으라고 해서 넣었으니 특별히 확인해 보세요.”
물건 가져온 아저씨가 짐칸에 박스 더미를 정리하며 말했다. 재우는 커피우유 수량부터 확인했다. 투 플러스 원인데 왜 플러스 원이 없냐고 투덜대고 나간 고등학생 무리가 떠올랐다.
재우는 허벅지 근육이 팽팽히 긴장하다가 쭉 날아가는 공과 함께 이완되는 그날의 느낌을 떠올렸다.
커피우유 수량은 주문표와 정확히 일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