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도 배팅 연습장은 한가했다. 주인아저씨는 또 졸고 있었다. 저럴 거면 집에 가서 자지 왜 여기서 꾸벅이는지 송 대리는 오늘도 궁금했다. 기계는 500원만 넣으면 알아서 돌아갔다. 속구가 펑펑 타석으로 날아왔다. 동전 교환기도 멀쩡했다. 아저씨가 하는 일이라곤 조는 거 외엔 없었다.
송 대리는 타석에 들어섰다. 배트를 허공에 두어 번 휘둘러 몸을 풀었다. 500원을 넣고 한 차례 심호흡도 했다. 날아올 공을 전부 치는 게 오늘의 목표였다.
첫 공은 최 부장의 얼굴이었다. 'P대학 출신은 저렇다니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인간이었다. 송 대리가 내민 보고서를 검토할 때면 꼭 끝에 중얼거리듯 최 부장은 그 말을 지껄였다. 들리는지 알면서도 지껄였고 안 들리면 안 된다는 톤으로 구시렁거리었다.
송 대리의 대리 진급도 최 부장이 인사 평가에서 최저점을 줬는데 겨우겨우 된 거라고 동료들 사이에선 뒷말이 많았다. 초구는 송 대리가 휘두른 배트에 '깡' 소리를 내며 튀긴 뒤 그물망에 꽂혔다가 툭 떨어졌다. 최 부장이 '악'소리를 내는 것 같아 송 대리는 기뻤다.
두 번째 공은 김분싸의 얼굴이었다. 송 대리랑 몇몇 친구가 하도 잘난 척을 해서 그렇게 부르는 친구였다.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다는 '갑분싸'에 성을 붙여 만든 별명이었다.
명문 중고등학교를 거쳐 명문대 엘리트 코스를 척척 밟은 녀석은 꼭 술자리에서 옆 사람을 갈고리로 긁는 잘난 척으로 분위기를 망쳤다. 그러니까 연애를 못하지? 그래서 연봉은 오르겠어? 그래서 얻는 게 뭔데? 아직도 그러고 사냐? 따위의 말을 김분싸는 쨉을 날리듯 툭툭 던졌다.
그런 쨉 뒤에 나오는 자기 자랑이 시나리오처럼 뻔한 원투 펀치였다. 펀치는 매번 똑같아서 이제는 무뎠고 무게감도 없었으며 '근데 넌 기어코 왜 우리랑 노냐?' 따위의 반격이 샘솟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송 대리와 친구들이 김분싸를 만나는 건 계산 때문이었다. 대충 쨉 좀 맞아주고 원투 펀치에 휘청여주면 김분싸는 술값을 자기가 계산했다. 술값을 계산하는 동안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떠드는 마지막 카운터 펀치가 꼭 날아왔지만 지출 절약을 생각하면 여럿이 나눠서 맞아줄 만했다. 김분싸의 얼굴은 호쾌하게 배트에 얻어터진 뒤 그물에 맞고 데굴데굴 흘러내렸다.
세 번째 공은 아버지였다. 송 대리 기억 속 아버지는 무능력자였다. 해가 떨어지면 술에 취했고 해가 뜨면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쩌다 아버지가 검은 봉지에 참치캔과 소주를 들고 달랑달랑 집에 오는 모습이 그렇게도 싫었다.
그런 날은 온종일 거실 티브이가 뉴스 채널에 고정됐다. 아버지는 마감 뉴스 앵커 멘트를 들으면서 빨갱이 새끼들이 나라를 흔든다는 둥 그 시대 그 소리를 주절거리다가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평소 송 대리가 먹고 싶었던 참치캔은 아버지만 그렇게 맛도 모르면서 먹는 아까운 안주로 전락했다.
아버지는 어느 날 밖에서 객사했다. 평소 말 한마디 해보지 못했던 송 대리는 '다 큰 자식의 아버지와 화해' 따위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장례를 치렀다. 송 대리 이름을 '대리'로 지은 것도 아버지였다. 자기처럼 살지 말고 회사 들어가서 평범하게 살라고 붙여준 이름이라고 자라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그 덕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친구들한테 놀림받았다. '땅' 공이 맞는 순간 송 대리는 제발 저 공이 멀리멀리 날아가서 그물에 맞아도 이쪽으로 떨어지지 말라고 생각했다.
네 번째 공은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고국으로 가겠다고 했다. 고국은 베트남이었다. 어머니는 베트남에서 대학 공부까지 마친 '인텔리 여성'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저 부랑자의 아내였다.
송 대리가 첫 월급으로 어머니한테 화장품 선물을 산 날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그만 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도 떠나서 홀가분하고 한국도 넌덜머리가 난다고 어머니는 유독 또박또박 말했다. 송 대리한테는 이제 취직했으니 제 밥벌이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저녁상은 고등어구이였다. 어머니가 특별한 날에만 하는 반찬이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인생을 잘 가시라고 송 대리는 건조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가끔 연락하라며 미리 적어둔 주소와 연락처를 송 대리에게 줬다. 송 대리는 화장품 선물을 건네지 않았다. '캉'하고 날아가는 공이 송 대리는 어머니 얼굴로 보이기도 했고 그 거처가 적힌 종이쪽지로 생각되기도 했다.
송 대리에게 명절은 연휴에 불과했다. 돌아간 아버지는 무남독녀 고아였고 어머니야 베트남에서 그간 못 누린 자유를 만끽할 자유인이었다.
취직과 가정해체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명절마다 송 대리는 PC방에서 밤도 새우고 카페에서 시간도 죽여보고 배팅 연습장에서 스트레스도 풀었다. 손님 하나 없는 이 공간에 울리는 공 때리는 소리가 좋았다. 명절뿐만 아니라 매주 돌아오는 휴일에도 유일한 안식처였다.
갈 때마다 꾸벅꾸벅 조는 사장은 매년 명절에도 악착같이 문을 열어 졸았다. 저 인간에게도 어떠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송 대리는 막연히 추측했다. 그렇지 않고선 전기세도 벌지 못할 이런 가게를 명절에도 열리 만무했다.
놀랍게도 한 무리의 손님이 들어왔다. 이 연습장에서 가끔 토요일 저녁에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어린애들부터 어른까지 왁자지껄 9명이나 됐다. 보아하니 명절이라고 친척들이 모인 가족 무리였다.
그들은 옆 기계에서 떠들고 소리치고 팀을 나누고 헛스윙을 하고 손뼉 치고 난리부르스도 쳤다. 송 대리가 치는 '땅' '땅' 소리가 그들 소란에 묻혔다. 송 대리는 자꾸만 '그날'의 고등어 구이가 생각났다. 최 부장의 구시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김분싸의 원투펀치 같은 듣나 마나 한 찢어지는 소음도 울렸다. 아버지가 하나마나 한 술주정으로 덮어버린 마감 뉴스 앵커 멘트도 스쳤다. 송 대리의 공간은 깨졌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주인아저씨는 여전히 졸고 있었다. 아저씨만 살아남았다.
송 대리는 연습장을 나왔다. 떡집에서 길거리에 내놓은 송편을 샀다. 5개에 2천 원이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분홍색 송편이 2개 들은 것으로 골랐다. 떡집 아주머니는 인절미도 있는데 안에 들어와서 좀 골라보라고 했다. 송 대리는 괜찮다고 하고 송편 값만 치렀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부들부들 떨었다. 최 부장이 '바쁜 일 년의 마무리를 달려가며 가족과 풍성한 한가위를 맞게 됐습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분명 똑같은 걸 여기저기 돌리다가 송 대리한테도 보냈을 게 뻔했다. 아까 친 초구의 '깡' 소리가 그리웠다.
가전제품 매장 대형 티브이 스크린에선 연예인들이 한복을 입고 나와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따위의 인사말을 하는 공익 광고가 나왔다. 이어진 뉴스 속보에선 베트남에 태풍이 몰아쳐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앵커가 전했다. 떡집 아주머니는 갑자기 가게에서 나와 "그거 집에 가서 전자레인지에 1분만 돌려 먹어 총각"이라고 말했다.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뒤늦게 나와서 한다고 송 대리는 생각했다. 보름달은 청명했고 거리는 한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