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벗으면서 청년의 꿈은 축소되었다. 다채롭던 세상 구조물은 회색빛으로 물들어갔다. 둥글고 푸르던 청년의 지구는 입체감이 사라졌다. 찌그러지고 끝내는 그저 그런 평면의 현실로 오그라들어 걸을 때마다 주름이 졌다.
그즈음 청년이 읽은 회색 인간 군상을 그린 소설은 눈앞의 실제로 피어올랐다. 청년은 차츰 움츠러들며 시선을 아래로 아래로 깔았다. 학교 다닐 때 못된 형들이 알력으로 꿇리던 “눈 깔아”라는 말이 수동이 아닌 능동으로 개화했다. 선생이 하던 “교복을 벗는 순간 너희 모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이 매일 밤 비수로 꽂혀 귀에서 맴돌았다. 신념으로 머리 중추에 저장한 정의와 공정은 뒤엉키고 헝클어져 점차 주변으로 밀렸다.
청년의 꿈은 시민단체에서 마음껏 목소리를 내며 최소한의 삶을 꾸리는 거였다.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어 합리적인 원칙을 세우는 데 투신하기로 다짐하고 그걸 그렸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환경은 미래만 좇기엔 아득했고 멀면서 험난했다. 중턱에서 헉헉거리며 겨우 오르던 ‘악’ 들어가는 산에 머문 것처럼 청년은 버거움을 온몸으로 매일 체감했다.
‘그게 단체에 이익이 되는가?’
청년이 단체에서 움직일 때마다 내부에선 그러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모두가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말은 분명한 물음으로 존재했다. 그것은 넘을 수도 없으며 최소한 돌아가기라도 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올라온 생각의 길을 가로막는 거센 장애물이자 숨이 찬 자신과 내부에 놓인 최후의 약수터였다. 단체는 시민의 것이 아닌 결국은 자본의 것으로 귀속되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전업 활동가의 궁극적 질문으로 괴롭혔다.
이따금 어디선가 투척된 ‘낙하산’ 인사는 단체 수장인 척 몇 년 몸담다가 어디로 ‘승천’하곤 했다. 평면 바닥에 발붙이고 구르던 청년은 이력도 경력도 현실 감각도 없는 것으로 사회가 규정한 주변부 인간으로 점차 채색됐다.
아직도 그러고 사느냐는 같은 교복 입던 그 시절 친구들의 농담조는 더는 농담이 아니어서 청년의 귀를 후볐다. 형형색색 외투에 말끔한 옷차림의 그들 사이에서 청년은 닳고 닳은 운동화를 신은 거리의 군상으로 홀로 남았다. 갈 길은 멀고 걸어온 길은 가시밭이어서 청년은 종종 급하게 유턴하는 자신의 발걸음을 꿈꾸다가도 뒷모습에 선을 긋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수가 단체에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가 찌푸린 얼굴로 나갔다. 그나마 웃으며 나가는 이들은 모두 낙하산이 그랬든 어딘가 양지바른 곳으로 가는 이들이었다. 그럴수록 청년의 주변 온도는 더욱 차가워지고 청년을 비롯한 구성원의 시선은 아래로 내리깔아졌다.
어디론가 솟아오른 ‘승천용’들은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를 외쳤고 그럴 때마다 청년과 대척점에 있는 이들은 혀를 끌끌 찼다. 그들은 단체와 청년에게 엄혹한 시기를 돌파하는 것은 결코 그러한 방법이 아니라며 이상이 아닌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핏대를 높였다. 그때마다 청년이 느끼기에 그들의 목젖에선 칼칼한 냄새가 났는데 청년은 그 악취에 그만 코를 틀어막으면서도 시선은 더 땅으로 꽂았다.
“저 이제 내려가 살려고요.”
꿈을 꾸던 청년은 그 모든 얽히고설킨 것들에 짓눌려 이렇게 말하곤 낙하했다. 낙하산이 어디선가 청년 옆으로 낙하했던 것과는 반대로 청년은 그들과 달리 마지막 보폭을 평면의 깔개로 디뎠다. 이제 청년에게 남은 건 핏대를 높이던 이들과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중심과 떨어져 주변인으로 웅크린 채 사는가 하는 과제만 남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