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5미터 정도 떨어진 입구에서 그가 걸어올 때부터 진땀이 났다. 애써 괜찮다고 매일 같이 속으로 외쳤지만 그때뿐이었다. 몸은 이미 반응했다. 심호흡을 하고 사람이 아닌 기계가 되어 매뉴얼대로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아가씨. 내가 진짜 아무리 생각해 봤는데 자꾸 이럴 거야? 진짜 이렇게 번거롭게 할 거냐고?"
똑같은 대사로 시작됐다. 토씨는 가끔 바뀌었지만 맨날 자기가 생각해 봤다는 것과 이렇게 번거롭게 할 것이냐는 의문은 그대로였다. '아가씨'에서 '거냐고?'까지 우상향 하는 목소리 볼륨도 반복됐다.
"말씀드렸듯이 그쪽 호텔에서 증빙 서류를 주셔야 해요."
영혼 없는 말로 적힌 대사를 읊듯 똑같이 대했다.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걸 수차례 반복하고 나서 깨달은 결과였다. 어르고 달래는 것은 사치였다. 공무원이 영혼 없다는 욕지거리 비슷한 그 말은 사실은 이럴 때 자조 섞인 풍자로 공무원 자신들이 퍼트린 말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 전입 신고 하나 하겠다는 데 뭐라고? 그게 도대체 뭔데? 뭘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하는 건데. 내가 그 호텔 주인이라니까? 여기 중구청장 나오라고 해."
어릴 때 듣던 동요에선 산할아버지 구름 모자 벗겼을 때 "이놈아" 하고 불호령이 내렸다고 했던가. 나는 오늘도 산할아버지 구름 모자는 구경도 못했는데 범인이 된 것처럼 살금살금 대답해야 했다. 롯데 호텔이 어째서 할아버지 것이냐고 되받고 싶었지만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호텔에 가셔서 전입 신고하려고 하니까 서류를 달라고 하세요. 그렇게 말씀하시고 절차를 밟아야..."
나머지는 말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중구청장'을 고래고래 외쳤기 때문이다. 하도 들어서 이제는 나도 내 먼 상사인 중구청장이 보고 싶었다. 아마 우리 아버지뻘은 되지 않았을까.
나는 영혼 없이 눈을 떠 모니터를 응시했고 으레 그렇듯 이 광경을 처음 보는 시민들은 냉담한 시선을 할아버지에게 쏘아붙이거나 외면했다. 당연히 중구청장이 이곳까지 올 리는 만무했다. 그 이유가 호텔 전입 신고를 원하는 할아버지의 민원처리일 리는 존재하지 않는 함수와 같았다.
누가 봐도 할아버지의 행색은 노숙자였다. 큰 캐리어와 그 손잡이 근처에 걸쳐둔 라면 박스가 그의 거처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신기하게도 저 라면 박스는 캐리어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마치 접착제로 붙여둔 것처럼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중구청장을 보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변치 않는 일방통행 사랑처럼 단단했다.
또 하나 변치 않는 풍경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마트폰 시대에 아무도 쓰지 않는 공용 컴퓨터에서 '자살 예방 사이트'나 정체불명의 소설 사이트를 보는 노숙자였다. 그는 매일 점심시간 이후 나타나 그곳에 죽치고 앉아 우리와 함께 퇴근했다. 어디서 점심을 때우고 돌아오는지 도통 말이라곤 하지를 않아서 알 수가 없었다. 남자 직원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붙여도 그 노숙자는 열심히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혼자 이따금 중얼거릴 뿐 대답이 없었다. 이 '컴퓨터 중독 노숙자'는 불호령 할아버지와 함께 6개월째 우리 동사무소 군식구처럼 같은 공간에서 호흡했다.
서울시 내에서도 온갖 사람들이 찾는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라는 곳이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정부는 1955년부터 쓰던 '동사무소'란 명칭을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전환하기 위해 2007년 9월 '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 소공동만은 '동사무소'란 표현이 더 어울렸다. 전국 2000개 이상 기관 명칭을 바꾸는 데에 100억 원 정도 자금이 들어갔다고 하던데 산할아버지 앞에선 그런 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저 옛날 '동해'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처음 불호령 할아버지를 접했을 때 나는 겨우 버티어내고선 밖으로 나가 울었다. 이러려고 공무원 준비를 악착 같이 해서 합격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 자리 외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다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까지 뒤엉켜 화장실 바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공무원은 영혼 없는 존재이자 세금으로 월급만 따박따박 받아가는 '월급 루팡'이라는 표현까지 심심찮게 들으며 자존감도 많이 낮아진 터였다. 그 와중에 도저히 내 신분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저러한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내 온몸을 태우는 것 같았다. 이따금 주위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일하다가 스트레스로 그만두는 사람이 있다는 신화 같은 소릴 이해하게 됐다. 그것은 엄청난 확률을 뚫고 합격한 이가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의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캐리어에 붙여서 생산되는 것 같은 흔들리지 않는 라면 박스와 함께 돌아갔다. 퇴근 시간인 6시가 되자 '컴퓨터 노숙자'도 칼 같이 퇴근했다. 그에겐 야근이란 없었다. 나는 나머지 서류를 정리하고 20분 정도 늦게 퇴근할 참이었다.
'오늘은 진짜 롯데 호텔 근처로 돌아서 가 볼까? 할아버지 그 근처 어디서 자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내일은 점심 일찍 먹고 들어와서 컴퓨터 노숙인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도 좀 봐볼까?'
퇴근 도장을 찍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물 콧물 쥐어짜며 울었던 6개월 전과 비교해 내성과 여유가 생겼단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났다.
또 군식구들과의 하루가 갔다. 저녁은 유독 추웠다. 군식구들은 어디선가 추위를 버틸 것이었다. 군식구들의 동사무소는 세상과의 유일한 끈일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