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큐테스트 치워버려
사람들은 강아지 아이큐를 궁금해하죠. 보도콜리가 어떻고 푸들이 어떻고 하는 식이에요. 순위를 매기죠. 그런데 이거 웃긴 거예요. 우린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들이 우릴 평가하는 것 중 하나 맞는 게 있어요. 우리가 귀는 훨씬 밝고 후각은 몇 배 예민하다는 거죠. 사실 이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니까 그들이 믿는 것도 타당해요. 인간들은 실험을 좋아하잖아요. 실험에서 나온 것을 믿는 건 그들에겐 또 다른 신앙이죠. 한 마디로 쉬운 거죠. 인간은 직접 보거나 듣지 않는 이상 믿지 않으려 하죠. 똑똑하다는 사람들일수록 더 의심하고 그래요. 그래서 자기들끼리 같은 사실을 두고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죠.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하루라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죠.
우린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서 좋아요. 이를 테면 팬티 한 장 입지도 않고 나갈 수 있다는 것들 말이죠. 그래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괜찮아요. 사는 기간은 인간보다 훨씬 짧고 실제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그들이 느끼는 하루 24시간보다 더 짧으니까요.
우리는 머리로만 살지 않아요. 온몸으로 사는 지수만 따지자면 우리가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나죠. 게다가 발도 더 빠르잖아요. 요즘 사람들은 예전처럼 뛰지도 않죠. 뛰는 건 그저 운동이에요. 게다가 그 똑똑한 머리로 자기들이 죽는다는 건 까마득히 잊고 살죠. 그들이 말하는 아이큐가 우리보다 좋을지 모르지만 망각은 우리보다 심하죠. 어제 곧 죽을 것처럼 슬퍼하다가도 금세 웃는 경우도 자주 봤어요. 아마도 서로 상처 주고받는 일이 많아 도저히 망각을 장착하지 않고는 진화하진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죠. 인간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도 하잖아요. 또 웃긴 게 하나 있는데 장례식장에서 깊게 통곡하다가도 때가 되면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죠. 저희보다 더 배고픔에 약한 게 인간이에요.
말이 조금 돌고 돌았는데 이런 것들 때문에 자기들이 만든 기준인 아이큐로 우릴 평가하는 게 우린 우스워요. 게다가 또 얼마나 아등바등 사는데요. 24시간이 모자라요. 고작 15년 왔다 갔다 사는 정도의 우리보다 시간이 그렇게 많고 오래 사는데 죽을 때면 대다수가 헛살았다고 해요. 그때마저도 살아온 길을 망각하는 거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인간은 한 것보다 하지 못한 것을 떠올리다잖아요.
인간의 망각이란 정말 마법과 같아요. 우린 태어난 그 순간부터 모든 게 생생한데 말이죠. 불필요한 것들 하지 않고 온몸으로 살기 때문일 거예요. 제 발바닥 굳은살과 청각과 후각은 그리 쉽게 망각되지 않는 생생한 삶의 날 것 기록 그 자체죠. 제 발 냄새를 맡으면 제가 다닌 모든 장소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져요.
반면 인간들은 그러면서 온갖 챙김은 또 다해요. 좋다고 난리 난 것으로 만든 우리 간식부터 자기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우리한테 형형색색 옷을 입히는 것들 말이죠. 아까도 말했지만 우린 팬티 한 장 필요 없이 살 수 있어요. 털은 충분해요. 추위와 더위는 알아서 조절해요. 감각은 예민해요. 다른 개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죠. 그들이 말하는 '스웩'이 우린 타고날 때부터 있어요.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동물인 것을 알아요. 동물인 동시에 생명이라는 것도 늘 잊지 않죠.
생명이란 것은 어려운 게 없어요. 책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교과서까지 있을 필요가 없어요. 말 몇 마디면 되죠. 생명은 그 자체로 지구 상 또 다른 생명과 평등하다는 거죠. 더 뛰어나지도 않고 더 못나지도 않았죠. 그냥 '생명' 그 자체로 묶여요. 그 생명 성격대로 살면 돼요. 개라는 그 자체만으로 지구의 다른 생명과 어울리며 사는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하지만 인간들은 그렇지 않죠. 자기들이 늘 지구의 주인인양 착각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인간 사이에서도 또 다른 인간과 높고 낮음을 논하죠. "갑질 갑질" 자꾸 그러는 거 보면 안타까워요. 무척이나 바쁘게 사는 것도 모자라 자기 인생 외에 남 인생도 살펴야 하는 거죠. 딱 보고는 내가 저 사람보다 어떨까 뭐 이런 걸 따지는 거예요. 지구의 최상위 계층이라고 착각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도 아옹다옹하는 거죠.
그러면서 또 만물의 영장이래요. 자기들만 생각할 수 있는 존재래요. 이거 다 헛소리예요. 지구 상 생명 중 자신만의 영역에서 사고하지 않는 종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 않고는 종족 번성이라는 각 생명의 활동이 설명이 안 되죠. 오로지 인간만이 누굴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것에 민감해 자신들 사이의 이런 무속 신앙을 퍼뜨려요. 달리 보면 더 생각하지 않는 동물처럼 살고 있는 거죠. 욕망에 끌려가고 욕구에 지배당하며 그와 동시에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 인생과 눈치를 살피죠.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가기도 바쁜데 참 할 일이 많은 거예요.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하자면 아이큐 테스트 같은 거 인간의 기준인 거죠. 우린 그런 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응해요. 기분 좋으면 좀 호응해주고 아니면 마는 식이죠. 우린 아이큐가 높든 나쁘든 어차피 개로 태어나 개의 삶에 충만하다가 떠날 운명이란 걸 알기 때문이에요. 인간만 그렇지 않죠. '진보'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하늘을 날고 빨리 달려요.
그래서 그들의 24시간이 여유 있어졌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죠. 두 발로 날기는커녕 점점 더 걷고 뛰는 것도 힘들어 헉헉 거리면서 온갖 곳을 자신의 뜻으로 돌아다니거나 남의 뜻으로 가야 해서 더 힘겨워졌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고 자기들이 그러면서도 근육을 더 쓰지 않으려는 태도는 안쓰럽기 짝이 없어요. 우리는 그저 그들에게 귀여운 표정 몇 번 짓고 애교 몇 번 부리면서 그들의 보호 속에 더 편안하게 살죠.
물론 전 세계 개들 중 이렇게 '반려견'이라는 단어 아래 풍족하게 사는 부류가 몇 퍼센트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요. 슬프지만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주치는 길거리 개를 업신여기거나 하진 않아요. 이것이 인간과 가장 다른 모습이죠. 현실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자신의 충족을 찾는 것이 저희가 맨몸으로 사는 자부심이자 이유예요. 두 발로 뛸 수 있고 달릴 수 있는 거리를 움직이며 주어진 자유 안에서 그것을 누리는 거죠. 우리가 찾는 삶의 공식과 행복은 복잡하지 않아요.
지쳐 쓰러져 자는 주인을 보며 동정심을 느끼고 최대한 말썽을 부려주지 않는 것이면 삶에서 더 이행해야 할 의무도 없죠. 하늘을 나는 새를 부러워할 이유도 없고 저 멀리 세렝게티 초원을 재빠르게 달리는 치타를 닮고 싶어 무언가를 개발해야 할 이유도 없어요.
말이 나왔으니 보태는데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것처럼 보여요. 가끔 산책 가다 만나는 잡초나 개미 같은 생명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래요. 그들도 저마다의 언어로 본래 생김에 맞게 소통하며 살 뿐 또 다른 종이나 생명이 가진 능력을 갖고 싶어 하지 않죠. 끝까지 만족을 모르며 부러워하다가 끝내 가진 것들을 망각한 채 묻히는 삶이 지금까지 제가 본 인간의 모습이에요.
주인에게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네요. 어쩌면 그들은 내가 말을 해도 그저 밖에서 들리는 비행기 소리처럼 흘려듣기만 할 뿐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랬다면 애초 아이큐테스트 따위를 개발해서 시시닥거리느니 그 시간에 저희 몸짓을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카밍 시그널' 같은 걸 공부했겠죠. 애초 자기들 행동과 메시지가 중요하지 다른 생명의 본질과 밑바닥을 보려는 태도가 결여되었어요. 하긴 그러니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가 떠받들리죠.
기대도 걱정도 하지 않기로 한 유일한 생명이 제겐 인간이에요. 우린 영원히 소통할 수 없어요. 설사 우리 몸짓이 아닌 말까지도 그들이 알아듣는 날이 온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 얘길 이해하려 하지 않을 거예요. 우린 그들이 내심 속으로 자신보다 낮은 위치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인간보다도 우릴 얕잡아 볼 테니까 말이죠. 그들이 말하는 진실이란 늘 그래 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