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시가 바_CIGAR BAR

by 반동희

“이 실장 여기 세이프인가?”

앞에 앉은 사내가 말했다.


“완료입니다.”

문 열어줬던 남자가 답했다.


사내는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반면 문을 열어준 남자는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하지만 말투와 차지한 공간에서 위계질서는 누가 봐도 캐주얼 남자가 위였다. 캐주얼 남은 큰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문 열어준 남자는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번거로우셨을 겁니다. 그래도 안전합니다. 요즘 하도 시끄러워야죠. 조금 번거로우셨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캐주얼 남은 준비된 말처럼 완벽하면서도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여기 몰카니 도청이니 그런 것들 방금 다 없는 것으로 확인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캐주얼 남이 정장 남에게 물은 ‘세이프’는 그런 장치의 유무를 뜻했다. ‘완료’는 정장 남이 사생활 침해나 기록 장치가 없다는 것을 검토했고 그것이 지금 막 끝났다는 걸 의미했다.


캐주얼 남은 한 손으로 양주병을 들어 앞에 있는 잔에 따랐다. 그러면서 손목에 있는 시계를 봤다. 술잔 옆엔 시가가 한 개비 있었다.


“말씀부터 나누고 노시죠. 털어내야 편하지 않겠습니까. 부탁 좀 하나 드리려고 모셨습니다. 저희가 하는 개발 사업 하나 있지 않습니까. 그것 좀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 그런 것 좀 쭉쭉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위엔 어느 정도 말씀 드려 놨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표면적으론 부탁이었다. 그러나 그건 일종의 피할 수 없는 지시였다. 이미 너의 윗사람들과 얘기가 끝났으니 적당한 사실관계들을 엮어 보도물 하나 만들어 내라는 거였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이었다. K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가볍게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서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방송 일을 하다 보니 ‘형님 동생’ 하던 사이로 발전한 사회 동료였다. 그의 결정에 따라 주로 ‘갑’ 위치에 있는 내가 형님이었고 스스로를 ‘을’이라고 하는 그가 동생이었다. 진탕 취한 어느 날 우리가 동갑인 걸 알았고 그 자리에서 내가 그냥 편하게 친구로 지내자고 해서 수년 간 이어온 관계였다.


그 K기업 친구가 평소처럼 둘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불렀던 것이다. 자주 가는 종로의 한 술집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이 친구가 급하게 집에 일이 생겨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와이프가 임신 중인 걸 익히 아는 나는 그러자고 했다. 친구는 미안하다면서 대신 얼마 전에 찾은 괜찮은 ‘시가 바’이 있으니 잠깐 거기서 시가 한 개비만 찾아가자고 했다. 급하게 가야 하는 사람이 시가 바를 들르자고 하는 것도 웃겼지만 일단은 따랐다. 이 친구는 요즘 시가만 한 고급 취미가 없다며 내게 한창 그것을 설파하던 중이었다.


유유히 같은 택시를 탔는데 내린 곳은 한남동 어디쯤이었다. 친구가 괜찮은 시가 바라는 그곳은 입구가 매우 작았다. 친구가 어디로 전화를 하니 문이 열렸다. 들어가니 습도 조절기가 돌아가고 있는 공간에 시가가 가득했고 진열장엔 위스키가 즐비했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널찍한 공간 한쪽에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그렇게 지하로 걸음을 옮기니 ‘정장 남자’가 계단 끝에서 나와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는 이 분이 좋은 시가를 알려줄 것이니 이참에 입문하고 가라고 했다. 입만 열면 퇴근 후 시가 바 가는 게 낙이라는 친구의 말을 듣던 터라 나도 마침 궁금함이 샘솟았다. 친구는 손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이 자리가 만들어졌다.


캐주얼 남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K기업이 추진하는 개발 사업을 얘기하는 걸 봐선 그쪽 사람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저한테 다큐에서 개발 사업 당위성을 집중해 달라는 거죠? 준비 중인 건 또 어떻게 아셨는지 조금 신기합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그에게 물었다. 준비하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이 알 수도 없는 남자에게 흘러들어 간 것이 의아해 급소를 다짜고짜 찔렀다. 그에 앞서 K기업 친구 역시 그것을 알고 여기까지 나를 데려온 것이 괴상했다.


철저한 보안 속에 준비 중인 다큐멘터리였다. 우리 방송사에서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의 동료가 팀을 이뤄 사내 메신저로만 준비 상황을 공유할 정도로 비밀리에 준비 중이었다. 그것을 우리가 보는 시각과 대척점에 있는 K기업에서 훤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어느 방향으로 완성이 되길 윗선과 교감까지 되었음을 슬쩍 흘리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일선에서 지휘하는 나에게 우회적으로 협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세상 비밀이란 게 참 신기합니다. 무조건 비밀이어야 할 것 같은 건 의외로 쉽게 빗장이 풀리죠. 그런데 또 그렇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손쉽게 비밀이 되곤 합니다. 피디님도 이십 년 넘게 이쪽에 계시면서 저보다야 더 그런 상황들을 자주 목격하거나 경험하시지 않았습니까? H방송사에서 협조 좀 해주십시오. 여러 면에서 섭섭지 않을 겁니다.”


캐주얼 남자가 술잔을 들며 주절거렸다. ‘여러 면에서 섭섭지 않을 것’이란 말이 살만 있는 줄 알고 삼켰던 고등어에서 굵은 가시가 찔러 나왔을 때처럼 목에 턱 걸렸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비밀론’만큼은 나도 일견 동의하는 바여서 쓴웃음이 났다. 그렇더라도 이 공간과 이 상황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거친 말로 대응하는 건 연차 낮은 후배들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에게 이쪽이 하수임을 입증하고 시간만 지나면 오히려 더 쉽게 협상 가능한 재목인 것을 몸으로 설명하는 행위였다. 그놈의 ‘정의’나 ‘직업윤리’라는 건 그렇게 감정으로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책에서 배운 그런 것들은 시험 문제로 마주쳤을 때 고통보다 지킬 때의 수싸움이 훨씬 까마득하고 어려웠다. 특히 ‘윗선’과 이미 교감했다는 말은 싸워야 하는 상대가 이 사람이 아닌 내부와 돈임을 짚은 단어였다.


그는 이런 것들을 이미 내가 알아차릴 걸 파악한 후로 보였다. 다 그렇고 그런 것으로 알고 있으니 적당히 술이나 마시다가 가라는 걸 암시하는 거였다. ‘세이프’로 녹취 위험이 없으니 흠뻑 취하다가 혹시 여자라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분위기 조성해 그것까지 책임져 주겠다는 순차적 언어였다. ‘나와 너’는 오늘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 그 어떤 곳에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걸 합의했다는 묘한 처세술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돌아가면 연락드리죠. 저희 자리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나갈 때 명함이나 연락처 좀 주시죠. 제 연락처야 잘 아실 것 같고요.”


내 대답에 남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일부러 나는 한 시간 여 정도 더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자리를 지켰다. 그때부턴 주제와 전혀 쓸데없는 얘기들로 자리가 채워졌다. 집에 있는 아이들 크는 얘기가 오고 갔다. 방송사도 회사고 피디도 회사원이므로 그런 사회 생활하면서 겪어야 하는 상사 비위 맞추기의 어려움이 주거니 받거니 주변을 돌았다. 국가 경제 기력이 쪼그라들어 청년 일자리가 줄었다는 거시적 세상사가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돼 이 사회 약자를 감쌌고 그 안엔 나도 포함됐다.


그 와중에도 이 말 잔치들이 겉도는 대화란 걸 나와 그 모두 내리 깔고 있었다. 자리가 파할 때 문밖에 있던 정장 남은 내게 자기 명함을 줬다. 명함엔 K사 경영지원실 이성근 실장이라고 적혀있었다. 경영지원실이 그의 진짜 소속일 리는 만무했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방송사로 향했다. 그 길로 집으로 가면 이 모든 시점은 또 다른 알리바이로 채워져 증거가 아닌 정황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몇 차례 같은 유형의 일을 겪으며 습득한 방법이기도 했다.


방송사 출입 카드를 찍어 시간을 남기고 사내 메신저에 접속해 업무의 연장으로 퇴근했다가 다시 들어왔음을 남겼다. 스마트폰 지도 어플로 내 동선과 택시로 이동한 시간을 따져 그와 같은 곳에 있던 공백의 시간을 계산했다. 이 모든 것을 수첩에 적어 스마트폰 사진으로 찍은 뒤 구글 포토로 서버에 기록을 남겼다. 널찍한 방송사 창밖으로 빌딩마다 켜 둔 사무실 불빛들이 오징어 배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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