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취존 불패

by 반동희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가르쳐 줄게. 그전에 질문 하나. 뭐가 떠올라? 정의? 아냐. 그거 아니잖아. 너도 말하면서 꺼림칙하지? 정의가 뭔지부터 정의해봐. 자본주의 시대라고. 네가 생각하는 그 구시대적인 것 버려.


자본주의가 막 태동하거나 자리잡지 못했을 때 책에서 지껄이던 것들과 비교하지 마. 마르크스도 이 자리에 없잖아. 그자들과 시대가 엄연히 달라. 돈으로 안 되는 게 있어? 앞으로 더할 텐데? 정의가 뭔지부터 제대로 정의하고 나면 이건 논쟁의 여지가 생겨. 그럼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아예 진실을 찾지 못할 수도 있는 거지.


다시 생각해봐. 정의 빼고. 내가 말해줄게. 나머진 네가 나중에 생각해봐. 일단 두 개가 있어. 하나는 시간이고 하나는 취향이야. 가진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시간은 공평해. 하루 24시간 날아가잖아. 그만큼 죽어가는 거라고. 오해하지 말고 들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거야. 당장 피부만 해도 스물세 살인가? 그렇게 넘어가면 재생능력이 확 떨어진다며. 재생능력은 얼어 죽을. 뭘 재생해. 그냥 그만큼 피부가 빨리 죽고 잘 회복하지 못한다는 거야.


신체능력이야 말해 뭐해? 너 차두리 알지? 차두리가 왜 은퇴했어? 한 경기는 예전처럼 죽을 듯이 뛸 수 있는데 나이 먹으면서 회복이 느려졌다고 하잖아. 그런 로봇 같은 사람도 결국 시간 앞에 떠났어. 축구 선수로서 죽은 거라고. 여전히 슈팅 빵빵 잘 차고 오십 미터 달리기나 순발력은 어마어마하겠지만 그 축구선수로서의 그 삶. 그걸 못 이겨내겠단 거잖아. 인간 로봇이 그렇게 말하는데 뭐해. 다 가졌던 진시황도 결국 불로초를 찾지 못하고 죽었지. 다 죽어. 하루하루 성장하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죽는 거라고.


잊지 마. 인간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오늘 더 이만큼씩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야. 네가 돈을 버는 시간만큼 죽는 거고 네가 밥을 먹거나 똥을 싸는 시간만큼 죽는 거지. 운동? 운동하는 시간만큼도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 살아보겠다고 무언가를 하는 것부터가 죽어가는 거야.


관점을 바꾸라고. 시간을 샀다는 부자는 아직도 들어보지 못했어. 또 모르지. 과학이 이걸 어떻게 풀지는. 여하튼 지금까진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는 거야. 서울역 거지한테 이름 사서 대포 통장이나 대포 폰은 가질 수 있지. 그래도 그 거지가 온종일 아무렇게나 쓰는 그 시간 여유는 가져와서 내 생명의 연장으로 전환할 수 없어.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지 않아. 인간이 평등한 게 아니라 인간이 가진 목숨 하나와 그에 빌붙어 딸랑이는 시간이 평등한 거지. 그렇지만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저마다 명줄이 달라서 절대적 평등이라고 볼 수는 없어.


그리고 또 하나 말했던 것. 취향. 취향은 돈으로 못 가져가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과 심지어 얼어 죽겠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것. 요즘은 ‘얼죽아’라고 하더라.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꽁꽁 언 손에 잡는 것. 취향은 그런 거야.


편의점 가서 아르바이트생 외모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뒤를 한 번 봐봐. 진열대에 가득한 그 담배를 보라고. 그까짓 담배 불붙여서 타버리고 그나마 평등한 시간마저 배로 더 죽여버리는 그 담배도 휘황찬란해. 이건 멘솔이고 저건 니코틴이 얼마고 어떤 건 입으로 캡슐을 살짝 깨버리면 맛이 확 변하기도 하더라. 그런 거야. 삼각 김밥마저 어마 무시한 종류가 나오잖아. 그런 취향.


사전에 보면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라고 해놨어. 길지? 뭐 없어. 그냥 마음 가는 대로라고 하면 돼. 이렇게 내 멋대로 슬쩍 간략히 해버리는 것도 취향이지. 탕수육을 ‘부먹’할 것인지 ‘찍먹’할 것인지 그것도 맨날 싸우고 답 없는데 결국은 취향 문제라고.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할지 후라이드에 올인할지 이것도 싸우는 취향이잖아. 요플레 뚜껑을 핥을지 숟가락으로 뜰지도 취향이고.


이 취향만큼은 가진 자도 못 가진 자를 어찌하지 못해. 돈으로 못 산다니까. 그건 그냥 몸에 배어버린 거고 그게 왜 배었는지는 알 수 없어. 그러니까 온갖 연구 끝에 복도식 구조의 아파트가 나왔다가도 요즘 다시 되돌아가는 추세라잖아. 포장마차 같은 시시껄렁해 보이는 술집들 다 망할 것 같다가도 막상 요즘은 또 그런 곳 찾는 사람 많아.


예전에 영화 패션왕 봤어? 거기 나오잖아. 명품으로 도배한 패셔니스타를 이길 수 있는 구제 패셔니스타의 또 다른 멋은 ‘간지’에서 나온다고. 그 간지를 뭘로 만들겠어? 취향이야.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그러더라. 고급스러운 취향은 부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만들어지는 거라 졸부 같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다고. 개뿔. 반만 맞아. 부자의 취향을 거지가 똑같이 할 수 없지. 근데 이건 계속 말했지만 돈 이전에 그냥 취향이라고. 원래 자기 마음이 그렇게 가는 것. 그리고 우선 고급스러운 취향이라는 그것부터가 어불성설이야. 그런 대사 쓴 작가는 엎드려뻗쳐해야 해. 취향 자체가 마음이 가는 곳으로 길이 나는 건데 고급이고 아니고 가 어딨어?


아까 편의점 담배 얘기를 해서 거기에 또 말하는데 시가 피우면 고급스러운 취향이고 똥디스 피우면 저급스러운 취향이야? 아니지. 궐련형 담배가 처음 나왔을 땐 오히려 시가보다 이게 고급스러운 거였어. 그걸 누가 정해? 어불성설이야. 흔들릴 게 없다고. 서장훈 알지? 예전에 농구선수였다가 지금은 예능 공룡 된 사람. 온갖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도 그 사람은 계속 폴더폰 썼어. 곧 나온다는 폴더블폰 아니고 폴더폰 썼다고. 지상렬도 요즘 그런다더라.


아무튼 이것도 취향이야. 근데 서장훈이 돈이 없어? 착한 건물주라고 하던데 어쨌든 건물주잖아. 취향이라고. 남이 좋다는 거 전부 따라 하려 하지 마. 너의 마음이 가는 대로 남한테 피해 안 주면서 하면 돼. 그게 바로 너고 돈으로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너의 취향이야.


명심해. 고민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간다. 시간이 간다는 건 아까 말했지만 죽어간다는 거고. 취향과 시간 사이에서 늘 흔들리지 마. 그럼 안녕. 함께 의미 있게 죽으러 가자. 내일도 취향 속에 죽고 모레도 취향 속에 죽는 거야.


취존 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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