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때리는 쉰내가 계속됐다. 발아래 선로는 덜컹댔다. 영역 표시하는 강아지 뒷다리와 같았다. 의자 맨 끝자리 뒤통수 부근은 반들반들했다. 사람이 가장 많이 앉고 내려 제일 지저분하다는 그 자리였다.
거기서 아저씨는 꾸벅꾸벅 졸았다. 아저씨 목은 아래로 꺾인 채로 좌우 반동 운동을 했다. 저녁 10시의 지하철 풍경은 어제나 그제나 비슷했다. 다른 점은 안에 있는 사람과 그들이 들이키고 마시며 입안 음식물 찌꺼기가 뒤엉킨 악취뿐이었다. 온 동네에 고기 먹은 걸 자랑하는 냄새도 당연히 빠질 수 없었다.
나는 현금으로 받은 과외비 봉투를 말아서 주머니에 넣은 채 손까지 찔러 넣어 꼭 쥐었다. 이 봉투 속 돈의 아득함을 떠올렸다. 이마저도 없어 기약 없던 날들과 이마저 얻어 앞으로 기약할 수 있는 날들 사이에서 생각은 총총히 오갔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진 햄버거 체인점에서 일했다. 패티를 나르고 튀김 기름을 교체하고 주문을 받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햄버거를 먹었다. 쌀농사를 꺼린다던 농부 얘기가 실린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오후부터 저녁까진 대리운전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가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술을 마셨다. 누가 저따위 맥주를 마실까 싶었던 새 맥주 TV 광고가 기억났다. 대리운전기사의 성지로 불리는 합정동에서 마지막 콜을 받고 평일 하루를 마무리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오후부터 저녁까지 과외를 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막 앞둔 중학생 대상 일대일 과외였다. 내가 그나마도 독특한 아랍어를 전공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제2 외국어로 아랍어를 선택할 학생 대상이었다. 아랍어에 조금만 시간 투자해도 전국 단위 성적이 확 잘 나온다는 열혈 학부모의 판단 결과였다.
그 학부모의 사고 과정과 예상에 나는 관심이 없었다. 과외비 봉투를 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들 학부모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 돈이 내겐 소중했다. 적어도 햄버거나 맥주 따위는 걱정 없이 사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경계선에서 늘 가뿐한 착륙을 안겨줬다.
“이봐 총각.”
“네?”
“보자기 좀 잠깐만 들어줘. 영 힘에 부치네.”
“이쪽에 받쳐서 세워드릴게요.”
햄버거와 맥주를 생각하는 데 백발의 쪽 머리를 한 할머니가 와서 말을 걸었다. 요즘 같은 때에 흔치 않은 풍경이었지만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어르신들은 부지불식간에 이처럼 말을 걸곤 했다. 거기에 말리면 나는 이어폰을 빼고 덜컹대는 선로 박자에 맞춰서 “예” “그렇죠” 따위를 대꾸하곤 했다. 이 삭막하고 똑같은 매일의 지하철에서 인간의 온도를 지키는 마지막 행위라는 생각쯤으로 그랬다. 역시나 몇 번의 “예” “그럼요”를 거쳐 “그렇죠”도 나왔는데 할머니가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했다.
“뿅 하는 기분이 뭔지 알아?”
뿅이 뭔가. 뿅망치 할 때 그 뿅인가. 어르신이 혹시 뽕을 잘못 말한 건가? 뽕은 요즘 아주 핫한데 설마 그 뽕? 난 법을 어겨 잡혀 가고 싶진 않은데?
“뾰로롱 뿅 하는 기분 말이야. 뿅 하는 기분을 좀 알면 살맛 날 텐데. 총각 아직 몰라?”
뿅이었다. 뿅뿅뿅 머리를 때리는 그 뿅이었는데 할머니가 어째서 이런 말을 내게 하는가.
“내가 뿅 하는 기분 알려줄게. 정말 좋아 총각. 근데 아무한테도 그 기분을 말하면 안 돼. 말하면 총각 붙들려가. 순사한테 붙들려가는 게 아니라 저 멀리 붙들려 가.”
순사리는 말을 하는 걸 보니 평범한 할머니는 분명했다. 어린 시절 우리 할머니도 경찰을 그렇게 불렀다. 그 시대엔 그게 당연했다.
그나저나 ‘예’ ‘그렇죠’ ‘그럼요’ 같은 말만 하다가 여기서 무슨 대꾸를 해야 할까? 저 멀리 뒤통수를 꾸벅이던 아저씨가 흘끗흘끗 쳐다보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이상한 대화에 더는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정답은 이미 있었다. 의미 없는 대화를 하는 사이 할머니의 보자기는 벽에 기대 세워둔 터였다. 이미 덜컹대는 선로를 몇 차례 버틴 후였으니 지하철에서 사람 사는 온도쯤은 적당히 지키기도 한 뒤였다.
“네. 궁금해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붙들려 가지 않게 조심해.”
할머니는 옅게 웃었다. 그때 막 지하철은 지상을 지나 땅 아래 구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머리가 살짝 무거웠다. 깊은 잠에서 깬 것 같았다. 어쩐 일인지 나는 누워 있었다. 자동차 뒷자리였다. 처음 보이는 건 앞 좌석에서 차를 몰고 있는 아저씨였다. 불현듯 날 붙들고 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하면 붙들려 간다는 할머니 말이 떠올랐다. 이것이 뿅망치로 얻어맞은 뿅 하는 기분인가. 말한 적도 없는데?
앞 좌석 그는 나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모든 일정이 끝났는데 오늘은 집으로 곧장 가실 것이냐고 나를 존대했다. 저번 주처럼 별장에 계실 예정이면 일요일 저녁에 다시 대기하고 있겠다고 했다.
아저씨 생김새는 햄버거 패티를 그렇게 조금씩 날라서 언제 일 끝낼 것이냐고 닦달하던 점장과 비슷했다. 이 아저씨는 자동차를 마구 달려 나를 패티 박스 더미 속에 파묻어 버릴 것만 같았다. 별장은 패티가 가득할 것 같다는 찰나의 감으로 집을 택했다.
“집이요.”
게임에서 져 뿅망치를 맞은 뒤 차분함을 유지해야 다음 판에선 얻어맞지 않고 때릴 수 있다는 억지 침착함처럼 대답했다.
으리으리한 집 앞에 도착했다. 걷기 귀찮을 정도의 정원이 펼쳐졌다. 저 정도면 영문도 모르지만 매일 똑같은 풍경과 조금 다른 악취만 내뿜는 지하철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남는 장사였다. 현관문 앞에 들어서니 나보다 햄버거 패티 박스 곱절은 단번에 옮길 것 같은 덩치 아저씨가 꾸벅 인사했다.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는 듯 마는 듯 나도 인사하고 들어갔다.
“뿅 하는 기분이지 이게. 쉿이야. 말하지 마.”
지하철 할머니가 나를 맞았다. 의아했다. 그렇지만 반가웠다. 할머니는 내 어리둥절한 표정과 몸짓을 보고 더 키득거렸다. 잠깐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넓은 집 거실 한쪽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으라는 신호였다.
“누구나 살다가 보면 뿅 하고 달라지는 때가 와. 거기서 주인공으로 사는 거야. 다들 그래. 그전까진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랍시고 태어나지만 현실은 자꾸만 그게 아닌 것처럼 흘러가지. 이제 됐어. 이제 된 거야. 다 달라진 것이고 받아들여. 받아들이고 뿅 하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천천히 착실하게 사는 거야. 대신 누구한테도 정말 그 누구에게도 뿅을 말하면 안 돼.”
동화 같은 일이 펼쳐졌다. 헨젤과 그레텔은 빵 부스러기라도 뿌려봤다는 데 나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마저도 새들이 집어먹었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엔 새들도 기똥차게 맛있는 것들만 골라 먹어 빵 부스러기 따위는 충분히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곳은 어디인가. 할머니는 혹시 마녀인가. 나는 기어코 뼈다귀를 내미는 잔꾀라도 부려야 하는가.
“앞으론 주인공처럼 살아. 회장님이라잖아. 회장님. 젊은 나이에 회장님인 그런 주인공으로도 살아보는 거야. 쉿이야. 쉿. 다시 말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거야. 말하는 순간 붙들려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뿅망치를 기어코 한 번은 맞게 되는 게임처럼 뿅 소리가 나게 한 대 얻어맞았다고 해. 그래도 햄버거 패티 나르면서 욕먹고 취객 실어 나르다가 양심 속이면서까지 대충 학생들 가르치는 것보단 나을 거야.”
잠깐 마녀로 빙의했던 할머니는 전지전능한 망치를 든 토르처럼 내 일과를 읊었다. 토르의 망치를 맞으면 죽지만 일단 나는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할머니가 토르만큼의 무력은 없는 게 분명했다. 오히려 뿅뿅거리는 뿅망치를 든 철부지 게임광에 가깝게 보였다.
“집 안 금고와 집 밖 은행 예금과 세상 명예마저 충분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느냐만 총각한테 달렸어. 명심해. 지금 순간부턴 그 누구한테도 뿅을 말하면 안 돼. 이제부턴 나한테도 그 얘길 꺼내지 마. 뿅은 이미 시작했고 돌아가는 길은 없어. 빵 부스러기도 뿌리지 못했잖아.”
궁예가 외쳤다는 ‘관심법’이 정말 존재했으며 혹시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예’ ‘그럼요’ ‘당연하죠’ 같은 말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할머니는 내 속내를 술술 읽고 있었다. 마녀인지 토르가 되지 못해 뿅망치나 든 사이비 토르인지 모르겠지만 답은 또 하나였다.
“예 그럼요.”
그것으로 나의 뿅 맞는 기분은 시작되었다. 집은 아득히도 넓었다. 벽에 걸린 수많은 그림이 자아내는 아름다운 풍경과 잘 관리된 실내 공기 질감이 꼭 라일락 꽃내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