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졌다. 웅덩이마다 파동이 일었다. 웅덩이들은 빗방울 굵기를 자랑했다. 고인 물은 젖을 원하는 갓난아기처럼 비를 빨아 공간을 채웠다. 분에 넘친 몇몇 웅덩이 빗물은 아스팔트 바닥 균열을 젖줄처럼 따랐다. 저마다 내려진 빗방울 위로 가로등이 번졌다. 인적 없는 거리에서 비들은 장애물 없이 땅에 안착했다.
영수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가정을 수차례 확인하고자 했다. 그것은 고개를 돌리기 전까진 추측이었고 돌아본 후엔 얼마간 확신이었다. 그렇게 추측과 확신 사이에서 영수의 고개 돌리기는 가장 확률 높은 확인으로 작동했다. 영수가 머리 위로 뒤집어쓴 우산은 CCTV를 가리는 데 제격이었다. 어딘가 있을 CCTV를 영수는 우산으로 가렸고 그 위로 빗방울이 튀었다. 빗방울은 우산을 만나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위에서부터 정해진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내렸다. 우산은 비를 가리는 일반적 도구에서 CCTV까지 가리는 특수로 펼쳐졌다.
영수의 목표는 물건을 찾고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영수가 일주일 전 메모를 받았을 때 첫 문장엔 ‘밤 11시 55분에서 12시 사이에 물건을 찾은 뒤 같이 있는 전화기가 12시 2분에 울리면 받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위치는 두 번째 문장에 설명돼 있었다. 반드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라는 지시도 함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맨 마지막 문장이었다. 물건과 함께 입수한 전화기를 그 장소에서 움직이지 말고 받으라는 것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더해지지 않은 명령이었으며 영수는 그것을 따라야 했다.
영수는 메모대로 전봇대 아래 놓인 종량제 쓰레기봉투 더미에 갔다. 그곳에서 10리터짜리 투명한 봉투 사이에 있는 검은색 봉투에 손을 댔다. 영수는 재차 뒤를 돌아봤다. 추측대로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검은색 봉투 묶음에 엄지손가락을 넣어 찢는 거였다. 영수는 왼손으로 우산을 잡은 채 오른손 엄지를 봉투 손잡이 근처에 푹 찔러 넣었다. 손가락은 예상대로 쉽게 빨려 들어갔다. 영수는 양발로 봉투 밑동 양 옆을 고정한 채 엄지 옆에 검지를 넣어 그대로 벌렸다.
들어있어야 할 것은 그대로 들어있었다. 다만 그것이 비누 포장쯤 되어 보이는 작은 종이 상자 안에 있는 게 의아했다. 빗방울은 여기서도 튀어서 종이 상자를 충분히 적시고도 남았다. 종이 상자는 영수 손가락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흐느적대며 형태를 잃어갔다. 영수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순대 살 때 소금 넣어주는 작은 밀봉 팩이나 최소한 딱딱한 쿠킹 포일에 싸여 있어야 했다. 그게 일반적인 형태였다. 영수는 불현듯 어릴 적 입던 낡은 후드티 소매에서 딸려 나오던 실이 생각났다. 잡아당기면 끊어지면서 말끔해져야 할 실밥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나와 후드티 소매 전체를 망친 일이 기억났다.
물건을 확인하려는 찰나 손가락 끝에 걸린 전화기가 진동했다.
“물건 잘 있습니까?”
“아직 열진 않았는데 어쩐 일로 상자에 있어요?”
“상자에 있다고요?”
“이 상황에서 거짓말하겠습니까?”
전화가 끊겼다. 저쪽에서 끊은 듯했다. 영수는 재빨리 다시 통화를 하려 했으나 우선은 물건을 다시 잡았다. 왼쪽 어깨에 우산을 걸친 영수는 목을 그쪽으로 돌려 우산을 고정했다. 영수는 그 자리에서 두 손으로 푹 젖은 작은 상자를 대충 뭉갰다. 물건은 다행히 밀봉 팩에 들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영수가 찾던 것이 아닌 사람 손가락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놀란 영수는 고개를 젖혔고 우산이 땅에 떨어져 영수 머리 위로 빗방울이 강타했다.
영수가 재차 눈을 부릅떴을 때 그것은 분명 사람 손가락이었다. 자기가 방금 봉투에 찔러 넣은 엄지손가락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영수 뒤에선 사이렌이 울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봤을 때 경찰 차는 물 웅덩이에 파열을 가하며 다가왔다. 영수 눈에서 붉고 파란빛들 사이로 빗방울이 번졌다. 젖어서 헝클어진 영수 머리카락을 따라 빗방울이 턱으로 흘렀다. 뒤집힌 우산 속살엔 빗물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