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현이는 보름 넘게 같은 편의점에 갔다. 매일 비슷한 늦은 오후에 들러 캔 커피 하나와 삼각 김밥을 샀다. 남들은 그게 퍽 좋은 조합이 아니라고 했다. 삼각 김밥엔 컵라면이나 콜라가 최고라고 했다.
하지만 승현에겐 이유가 있었다. 캔 커피가 담긴 냉장고는 편의점 제일 안쪽이었다. 바코드를 찍는 계산대에서 제일 멀었다. 반대로 삼각 김밥이 놓인 곳은 계산대 바로 옆이었다. 계산대에서 가장 가까웠다.
승현이는 편의점 밖에서 계산대를 들여다본 뒤 곧바로 제일 먼 곳으로 직행해 캔 커피를 잡았다. 그리곤 돌아서서 계산대를 보며 걸어와 삼각 김밥을 잡았다. 그러니까 승현이는 계산대를 확인한 뒤 그를 중심으로 가장 먼 곳에서 반대로 발걸음을 돌려 계산대에서 가장 가까운 쪽을 향했다.
삐빅 거리는 바코드 소리와 함께 점원이 말했다. 이천백 원입니다. 승현이는 삼천 원을 내고 구백 원을 거슬러 받았다. 점원과 살짝 손이 스쳤다. 점원은 이십대로 보이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승현이는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그대로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늘 이런 식이었다. 같은 날의 반복이었다. 캔 커피와 삼각 김밥은 그곳에 있었으므로 구매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승현이는 보름 내내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관찰했다. 적당히 와인 색으로 염색한 긴 생머리와 흰 피부가 돋보였다. 어떻게 말을 걸까 늘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캔 커피와 삼각 김밥의 거리처럼 멀어졌다가 결국은 계산대에 이르듯 한 곳으로 찍혔다. 용기가 없었다. 그저 관찰하는 게 전부였다.
“병신이냐. 그냥 인스타나 뒤져라.”
카톡 단체방에 떠오른 친구 말대로 승현이는 아르바이트생 명찰을 인스타그램에 쳤다. 흔한 이름이어서 수많은 동명이인이 떴다. 한숨만 더해졌다. 단서가 없었다.
“예쁘긴 예쁘네. 몸매 보니 작살나겠다.”
작살나겠다는 친구의 표현에는 많은 것이 함축됐다. 음담패설을 자주 하는 친구의 ‘작살’은 마치 물고기를 찔러 잡는 진짜 ‘작살’과 같았다. 승현이는 배시시 웃었다. 편의점 밖에서 몰래 찍은 아르바이트생 사진을 승현이 단체 카톡방에 올리자 ‘작살’ ‘쩔어’ ‘맛’ ‘내가 먼저’ 등등 온갖 그럴싸하지만 이중 의미가 폭력적으로 담긴 단어들로 뒤덮였다. 그럴수록 승현이는 으쓱해졌다. 어떻게 하면 그놈의 작살을 진짜 잡을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보름을 넘어 한 달째가 거의 다 되어가던 날이었다. 승현이 밖에서 보니 아르바이트생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개의치 않고 승현은 들어가 똑같이 캔 커피와 삼각 김밥을 들었다. 통화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는데 “오빠”가 언급되고 “저녁 메뉴” 같은 단어가 늘어졌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평소 같으면 아르바이트생이 전화를 끊었을 텐데 통화는 승현이 계산대 앞에 섰을 때도 계속됐다. “잠깐만”이라고 아르바이트생이 말하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바코드를 쥐었다. 그 순간 ‘정준영’이라는 이름과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화면에 떴다. 승현은 재빨리 그것들을 외웠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전화번호 뒷자리가 낯익었다. 승현은 캔 커피와 삼각 김밥을 들고 나와 그 번호를 자기 휴대폰에 찍었다. 저장을 하고 카카오톡 프로필을 봤다. 준영은 승현이 떠올린 그 고등학교 동창이 맞았다. 전화번호 뒷자리는 준영의 생일이었다. 스마트폰이 아직 없어 피처폰을 쓰던 고등학교 시절 몇몇 번호를 외운 것이 저 구석에 있다가 떠오른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준영은 한순간 사라진 아이였다. 그때 친구들 사이에선 준영이 입대를 앞두고 술집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 구속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승현은 반갑기도 하면서 하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통화하는 녀석이 준영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소름이 끼치거나 긴장하면 갑갑한 왼쪽 발목이 가려운 게 승현의 버릇이었다. 승현은 골목 구석으로 가서 왼쪽 바지 밑단을 살짝 걷어 올렸다. 그리곤 손을 넣어 벅벅 왼쪽 발목 주변을 긁었다. 승현이는 왼쪽 발목 전자발찌 근처가 오늘따라 유난히 간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