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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06. 2019

냉장고를 치우며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한 주를 보내고 푹 잤다. 잠이 부족해 솟구치는 짜증을 조절하지 못한 평일 뒤 주말 아침이었다. 거의 10시간을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가 절로 깨어났다. 오랜만에 정신으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몸을 먼저 일으키고 정신을 바로잡았다. 억지로 일어나는 것과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이렇게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부산 떨며 치약을 짤 필요도 없었다. 느긋하게 양치 따위는 뒤로 밀어뒀다. 저 멀리 지저귀는 새소리도 귓가에 또렷이 들렸다. 그랬다. 나는 새소리가 나는 이 흔치 않은 동네가 좋아 정착한 사람이었다. 맑은 정신에 눈이 청명해졌으므로 같이 자는 반려견의 풍부한 표정도 제대로 읽혔다.


그렇게 적어도 냉장고를 열기까진 모든 게 완벽했다.


생수를 들이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연 순간 산통이 깨졌다. 가득 찼다는 표현을 뛰어넘어 터질 듯이 팽배한 모습이 평일 짜증을 연상케 했다. 주황빛 냉장고 불빛 아래 온갖 박스와 그릇이 뒤엉켜 팽팽했다. 이럴 땐 머리가 맑고 눈이 명징한 게 오히려 독이 됐다. 매일 바쁘게 산다고 들여다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도 생생히 부산스럽게 다가왔다. 매일 저녁 먹을 게 없어 밖에서 사 먹는 게 일상이었는데 도대체 이 냉장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부여잡고 끌어안은 상태였다. 여기 있는 이 것들은 음식인가? 음식물 쓰레기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에서 시작한 삶의 저 밑바닥 오물들인가. 그렇게 냉장고 치우기가 시작됐다.


꺼내고 꺼내도 온갖 얽히고설킨 것들이 소시지처럼 엮여 나왔다. 뚜껑을 연 순간 너무나 시큼해 이쑤시개로 코를 찌르는 것 같은 김치 통은 시작이었다. 썩어 문드러졌다는 비유 외에는 달리 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몇몇 반찬 통 안에선 푸르기보다는 검거나 잿빛에 가까운 곰팡이들이 생명을 싹 틔웠다. 가만히 반찬 통을 들어 올려 투명한 밑바닥에서 곰팡이를 쳐다봤다. 마치 눈송이를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이질적인 세포의 향연이 드러났다. 이 반찬 통을 여는 순간 어릴 적 친구가 돌멩이를 안에 넣어 만든 눈덩이를 내 이마에 던진 것처럼 때처럼 온갖 날 선 냄새들이 코를 때릴 것 같았다. 겁이 났다. 방법은 통째 그대로 버리는 것뿐이었다.


두 조각 겨우 먹고 처박아둔 케이크는 우람한 상자 채로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과대포장 케이크 박스는 우리 집에서 제일 큰 김치 통 만했다. 이것 역시 방법은?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대로 버리는 것뿐이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선택지는 오히려 줄었다. 그냥 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복구라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다.


2019년 4월 냉장고에서 2017년 2월 유효기간의 굴 소스가 나올 확률은 얼마일까? 그것도 심지어 포장지를 고스란히 휘감고 나올 확률은 어떻게 될까? 당시 판매된 국내 전체 굴 소스 중 5프로? 15프로? 아니면 상식적으로 1프로 미만? 어쨌든 이것 역시 그대로 버려야 하는 확률은 100프로로 수렴했다. 그밖에 먹다 남아서 나중에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기로 했던 쌀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색으로 변질돼 굳은 상태였다. 탄수화물을 그득히 머금은 쌀밥 역시 100% 확률에 따라 고스란히 버려졌다. 반쯤 마시고 둔 술병의 술들은 내 위가 아닌 내 집 변기로 흘렸다.


도저히 수중에 있는 '처리 시설'로는 정리가 안 됐다. 중간에 근처 마트로 달려갔다. 가서 종량제 쓰레기봉투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사는데 2만 원 가까이 지출했다. 정리 후 냉장고를 보니 역시 밖에서 사 먹을 수밖에 없는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출한 모습으로 냉장고 안이 재탄생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며 그나마도 계란 풀어 넣는 법도 얼마 전에 배운 사람의 냉장고 모습은 이것이지.


과대 포장된 케이크 박스 자리는 그간 넣을 공간이 없어 현관 구석에 있던 생수로 채웠다. 반찬 통들이 아니라 곰팡이 통으로 가득 찼던 칸은 어제 시킨 낱개들이 작은 주스 병들이 차지했다. 그뿐이었다. 이게 현실적인 내 집 먹거리와 냉장고였다. 누군가 집에 와서 냉장고를 사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쇼핑백 하나를 툴툴 꺼내 안에 내용물을 30초 만에 담은 뒤 "가져가세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치 알파고처럼 기계적으로 냉장고를 치운 뒤 정신을 차렸다. 그랬더니 비로소 생각이란 게 주말 아침 맑은 정신을 따라 물줄기처럼 흘렀다. 그간 얼마나 아무 느낌 없이 냉장고를 봤을까? 아니 보기는 제대로 봤을까? 또 얼마나 쓸데없는 것을 채우기 위해 그렇게 생각 없이 일하는 기계처럼 살았을까? 그리고 그런 것을 채워 곰팡이를 키워낸 다음 버리기 위해 또 2만 원에 가까운 쓰레기봉투들을 지출했을까? 이것은 마치 한 편의 혼자 부르는 노래방 노래 같았다. 또는 혼자 묻고 답하는 일종의 나르시시즘 가득한 환자의 일상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기계처럼 일 한다 → 통장 잔고를 채운다 → 그 통장에 연결된 카드로 음식을 산다 → 냉장고를 채운다 → 곰팡이를 키운다 → 쓰레기봉투를 산다 → 키운 곰팡이를 그곳에 버린다 →곰팡이야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 →  잘 지내니 곰팡이야? 널 키운 건 사실 내 노동이었어로 수렴한 것일까. 간략히 정리하면 이 공식은 돈을 벌어서 돈을 버린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행위인가. 아니지. 아니지. 곰팡이 키워서 관찰이라도 했지. 뭐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겠다고 앉기 직전에 창문으로 내다 놓은 쓰레기봉투들을 바라봤다. 가지런히 아직은 그곳에 놓여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봉투 밖으로 곰팡이가 새어 나오진 않았으니 그 녀석도 여전히 안락하게 있을 것이었다. 마침 재활용 수거하시는 분이 와서 내가 분리해서 내놓은 재활용들은 일부 사라졌다. 곰팡이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자고 일어나면 어딘가로 갈 것이었다. 곰팡이야 무사히 가거라. 그간 추운 냉장고에서 자란다고 고생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미화원 분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이 분들은 내가 무식하게 키운 곰팡이를 치워 안락한 동네를 유지시켜줄 것이다.


얼마 전에 모 정치인이 환경미화원 월급을 가지고 그렇게나 많으냐고 했다. 다시 한번 국민 한 사람으로서 분노가 치민다. 당신들이야 얼마간 파업해도 이 사회가 그럭저럭 굴러가겠지만 환경미화원은 일주일만 파업해도 동네가 지저분해진다. 집집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있어 곰팡이를 키우면 어쩔 것인가. 참 빙빙 돌아왔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다.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장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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