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M 09:11
37세 김철우는 오늘도 지옥철을 뚫고 회사에 착지했다. 도착했다는 표현으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침 지하철은 매일 시큼한 냄새로 가득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온갖 사람이 내뿜는 숨 냄새와 땀 냄새가 밀려왔다. 그것을 실내 냉방이 사방팔방 다음 정거장까지 나르는 형태가 반복됐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냄새는 더 코끝을 찔러 정수리까지 타고 올랐다. 김철우는 지하철에서 겨우 땅 위로 올라와 사옥에서 출입증을 찍을 때마다 안도했다. 그때마다 비로소 숨을 겨우 헐떡이는 어떤 먼 생명체에서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생각을 했다. 식인종이 있다면 지하철을 제일 좋아할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구름처럼 밀려와 눈앞에서 뭉개 뭉개 떠다녔다. 김철우가 보기에 지하철에 끼인 사람들은 그 순간만큼은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종류의 숨 쉬는 기계에 불과했다.
잘 나가는 기업 M&A 협상가를 꿈꾸며 김철우는 어제도 겨우 다섯 시간 남짓 잤다. 나머지 한 시간은 지하철에 서서 비몽사몽으로 보충했다. 퇴사 욕구가 꿈틀댈 때마다 김철우는 지하철 속 다른 사람들의 회색 표정을 보며 다들 그렇게 버티며 살고 있으므로 당분간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위로했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 얼굴은 도저히 고개를 젓고 또 저어도 떨쳐지지 않는 그림자였다. 김철우는 인터넷 검색창에 '마카오'와 '나트랑'을 번갈아 검색하며 자신의 여름휴가 풍경을 머릿속에 영사기처럼 돌리고 또 돌렸다. 그가 탄 지하철도 노선을 따라 그렇게 시내를 원처럼 크게 돌았다.
*같은 시각 마카오 AM 08:11
41세 류저우는 막 카지노 밤 근무를 끝내고 퇴근을 위해 환복 했다. 류저우는 십 년째 카지노 딜러로 일하고 있는데 오 년 정도 흐른 뒤부터 중간 관리자 자리로 승진했다. 바카라 테이블에서 벗어나 정해진 위치를 수시로 돌며 한쪽 귀에 꽂은 무선기로 본부와 소통하는 게 류저우의 주 임무가 됐다.
그러다 보니 류저우는 '인종 불문' 표정만 보고도 초조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처음 세 달만 하고 그만두겠다고 했던 카지노 일은 그렇게 강산이 변할 때까지 이어져 류저우를 '얼굴 감별자'로 만들었다. 자식도 가족도 없이 류저우는 버는 족족 다른 카지노에서 탕진하며 살다가 이렇게 정착했다.
현재 류저우가 일하는 카지노에서 근속 연수로 치면 단연 그가 우두머리로 꼽혔다. 젊은 직원 대다수는 전부 잠깐잠깐 일하고선 다양한 핑계를 대며 어디론가 두문불출했다. 류저우가 보기에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카지노에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끝은 대동소이했다. 잠깐 즐기고 몇 번 더 방문하거나 아예 가져온 돈에 저당까지 잡혀 타의로 손발이 묶여버리는 두 분류로 나뉘었다. 저당 잡힌 이들을 카지노에선 '인출기'라고 직원들끼리 은어로 불렀고 그들 대다수는 추후 출입 통제를 당하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 직전 인물로 분류됐다.
류저우는 마지막 무전에서 "육 번 테이블에 한국 말씨 쓰는 사람 블랙리스트 확인"이라고 말했다. 그가 옷을 갈아입고 나설 때 카지노 앞에서 그 '육 번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안 요원에게 어디론가 끌려갔다.
*같은 시각 나트랑 AM 07:11
21세 후인퀑탄은 오늘도 출근 직후 코코넛 커피만 열 세잔을 내리 날랐다. 사람을 구워삶는 나트랑 더위 특성상 오전 5시 30분까지 호텔로 출근해 이 테이블과 저 테이블을 총총거리며 도는 날이 반복됐다. 5시만 되어도 일어나 활동하는 나트랑 사람과 어젯밤에 도착했는데 마치 현지인처럼 벌떡벌떡 일어나는 아시아 관광객은 그녀의 아침잠을 사치로 몰아버렸다. 후인퀑탄의 유니폼 왼쪽 상의에는 늘 그렇듯 '스텔라'라는 영어 명찰이 달랑였다. 후인퀑탄이 처음 이 명찰을 달았을 때 이 또한 '제국주의' 잔재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밀려오는 다음 끼니 걱정에 그것은 곧 희석되었다. 게다가 그렇게 따지면 관광객들이 부르는 일본어 '나트랑'이란 단어를 현대 베트남어인 '냐짱'으로 전부 고쳐야 했다.
그녀는 3년제 컬리지에 다니며 호텔경영을 전공하고 있는데 현장 실습이란 이름으로 6개월째 이 호텔에서 일했다. 1년 정규 실습을 마쳐야 겨우 졸업과 동시에 정직원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당연히 밤마다 영어 과제와 각종 시험에 시달리다가 졸린 눈을 비비고 겨우 출근하기 일쑤였다.
호텔에선 가끔 한국인 관광객이 어설픈 영어로 '베트남 전쟁'을 얘기하기도 하고 중국인 관광객이 이 세상엔 중국어밖엔 없다는 식으로 따발총처럼 불만을 제기할 때도 왕왕 생겼다. 후인퀑탄 입장에선 베트남 전쟁도 오래전 얘기고 따발총 불만도 그저 흘려들으면 넘어갈 것이므로 그런 것들은 아무런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현재와 아무 관련 없는 것들이었으며 매일 입에 풀칠하듯 사는 일상 속에선 늦잠보다 더한 생각거리 사치였다.
후인퀑탄의 소원은 그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정든 실습장에 정식으로 취업해 베트남 전역이라도 배낭여행을 해보는 것이었다. 이따금 친해진 손님이 어디를 여행해봤느냐고 물어올 때마다 후인퀑탄은 착실한 '스텔라' 입장에서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 댈러스와 필리핀 마닐라를 가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 꼭 한국 사람은 '서울'을 얘기했고 중국 사람은 '베이징'이나 '마카오'를 되물었다.
물론 후인퀑탄의 이 답변은 전부 인터넷 정보로 긁어모아 내놓는 거짓말이었으며 그는 기껏 해야 호찌민 정도를 가봤을 뿐이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월급 받은 날 저녁 나트랑 시내에서 유명한 '콩 카페'에 들러 관광객처럼 앉아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