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은 다릅니다. 시적 표현보다는 직설적으로 내놓은 표현입니다.”
상훈의 말이 또랑또랑했다. 학교에서 제일 꽉 막혀 ‘꼰대 킹’으로 불리는 국어선생의 해석에 반박했다. 상훈이는 오늘 갑자기 ‘다나까’로 끝나는 말투를 썼다. 국어선생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묘한 감정이 맨 뒷자리 나한테까지 느껴졌다.
“그렇게도 볼 수 있지. 상훈이 너 근데 말투는 왜 그러냐? 면접 보고 왔다고 생색내는 거야?”
국어선생 특유의 흘리는 웃음이 입가 반대쪽으로 밀려갔다. 논박에서 말을 돌리는 것이기도 했다. 가소롭다는 뜻이었다.
“그게 하루만인데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입에 뱄습니다.”
상훈이의 응수도 달변이었다. 얼마 후 졸업하면 볼 일 없는 아저씨에 불과하다는 뜻을 국어선생은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할 길 없었다. 하지만 저 대답에서 교실 안에 나를 포함한 다른 애들은 전부 상훈이의 의도를 알았다.
“허허. 자식 당돌하네. 그래 알아서 하고 좋은 결과 있어라.”
국어선생의 회피와 함께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평소와 달리 적당히 물러서는 국어선생의 회피도 의외였지만 어물쩍 대답하지 않고 비껴갔던 상훈이가 친구들과 있을 때 성격 그대로 대응한 것도 의아했다.
상훈이는 평소 애들 사이에선 화통했지만 늘 선생들 말엔 ‘예스맨’으로 통했다. 절박할 정도로 공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게 어느 정도로 심했냐면 하루는 세계지리 선생이 유라시아는 사실상 대륙이 아니므로 그런 세계관에 사로잡혀 문제를 풀면 안 된다고 농담했다.
하지만 전국 단위 모의고사에서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통할 리가 없었다. 상훈은 세계지리 선생 말대로 유라시아 대륙을 고정관념으로 놓지 않고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 틀리고 말았다.
이건 당시 상훈이의 모의고사 전 과목 오답 네 개 중 하나로 이어졌다. 담임선생은 왜 고작 이런 걸 틀려 등급이 한 단계나 깎였냐고 상훈이를 타박하기도 했다. 그때도 상훈이는 묵묵부답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세계지리 시간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만큼 선생들 말이라면 뭐라도 토를 달지 않고 스펀지처럼 상훈이는 빨아들였다.
궁금증이 폭발한 애들은 쉬는 시간 상훈이 곁으로 몰렸다. 면접 어땠냐. 합격할 것 같니. 너 정말 군대에 그렇게 빨리 가고 싶냐. 국어선생한테 너도 쌓인 건 있구나. 그래서 한 방 먹였지. 이런 질문들이 상훈에게 몰렸다. 나는 교실 뒤에서 상훈이 뒤통수만 보다가 매점으로 내뺐다.
상훈이는 바로 어제 육군사관학교 면접을 보고 왔다. 전교 1등을 고수하는 그가 육사를 간다고 했을 때 모두가 처음엔 물음표를 달았다. 서울 유명 대학교에 갈 것이 당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훈의 가정환경을 아는 몇몇 사이에선 당연했다. 상훈이는 홀아버지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러니 학비 안 들고 사고만 치지 않으면 얼마간의 군 생활까지 가능해 취업 걱정 없는 육사는 상훈에게 최적이었다.
게다가 상훈이는 싸움도 잘했다. 남자 중학교에서 싸움을 잘한다는 건 체력이 좋고 힘이 세다는 것과 같았다. 거기다 깡까지 있다면 완벽한 싸움꾼이었다. 상훈이 그랬다.
상훈이가 지금이야 교실 맨 앞자리에서 우두커니 공부만 했지 과거는 전혀 달랐다. 나는 그걸 알았다. 상훈이와 나는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 그때 상훈이는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뒷골목에서 몰래 술을 마시며 다른 학교 아이들과 패싸움이 붙으면 교실 맨 뒷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언제나 맨 앞에 섰다.
나는 그런 상훈이와 늘 같이 다니며 무서운 것 없는 권력자로 군림했다. 좁디좁은 시골 동네에서 나와 상훈이를 비롯해 우리 중학교를 건드리는 이들은 없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왕국을 만들어 그렇게 천하태평 지냈다.
녀석과 데면데면해진 것은 지금도 그렇게 사는 나와 달리 어느 순간 머리를 삭발하고 공부만 하는 상훈이로 변모했을 때였다.
아마도 고1 여름 방학 때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상훈이는 온종일 문제집을 싸 들고 다니며 무식하게 풀어댔다. 뭘 알고는 푸는 것인지 별 신경도 안 썼는데 그때부터 상훈이는 타고난 체력을 공부로 몰아넣었다.
그랬던 것이 사실은 머리도 제법 있었던지 상훈이는 어느 순간 전교에서 노는 우등생이 됐다. 가는 길이 달라진 나는 그때부터 상훈이와 멀어졌다.
운명의 장난인지 마지막 학창 시절이라는 고3 같은 반이 되어서야 나는 여전히 교실 맨 뒷자리에 있고 상훈은 맨 앞자리에 앉는 학생이 되었다는 걸 몸으로도 체감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며칠 전날 상훈이가 불쑥 교실 맨 뒷자리로 왔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하던 녀석이 나한테 온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문제집 푸는 기계로 상훈이가 변한 뒤 제대로 된 말을 한 게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으로도 기억한다. 그만큼 졸업이 다가와서야 생긴 일이었다. 상훈이와 나의 과거 관계를 아는 친한 몇몇의 우리에게 눈길이 쏠렸다.
“이거 가져가라.”
상훈이가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우리가 함께 과거 우정 반지라며 맞췄던 알 굵은 싸구려 은색 반지였다.
“버리든 알아서 해. 새끼 갑자기 뭘. 육사 잘 가고.”
상훈이 내 눈을 쳐다보며 침묵했다. 나도 특별히 눈을 피하진 않았다. 아주 잠깐 정적이 흘렀다.
“싫으면 마라. 그리고 못 들었냐? 육사 떨어졌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육사가 상훈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서였다. 하지만 태연한 척했다. 나는 교실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상훈은 그때까지도 멍하니 내 앞에 서 있었다.
졸업식 날 상훈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소문에선 상훈이가 육사 면접에서 떨어진 게 그의 아버지가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사실인지 여부부터 설령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육사에서 떨어지는 이유가 되는지도 몰랐다. 이후에도 합당한 것이거나 일리 있는 말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미 내게 상훈은 아등바등 달렸던 길에서 탈선한 고장 난 기차로 치부됐다.
그렇게 잊고 지냈던 상훈이 궁금해진 건 내가 겨우 재수해서 상경해 들어간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고교 동창 정욱이가 뜬금없이 상훈이 소식을 알려줬다. 정욱이 말로는 상훈이가 자기네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정욱은 이런 똥통 학교에 상훈이가 입학한 게 의아하다며 아마도 장학금을 받는 식으로 오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하지만 상훈이가 어쩌다가 캠퍼스에 한쪽에서 지나가는 것만 봤을 뿐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둘이 눈을 마주친 적도 있었는데 상훈이가 먼저 눈을 피해 구태여 아는 척을 하지도 않았다고 정욱이는 말했다.
“배신자 새끼 결국은 안 풀린 거지 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실제로 재수 기간까지 2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상훈이란 타고난 싸움꾼에 우등생까지 꿰차 보고 육사까지 가려했던 엘리트를 잊고 살았다.
그로부터 15년 여가 흘러 이제 나도 막 30대 중반을 넘어섰을 때 어느 날 문득 상훈이란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이따금 소식이나 전하고 사는 동창들에게 상훈이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알음알음 캐물어 얻은 소식으로는 상훈이가 다시 싸움꾼 세계로 돌아가 조폭이 됐다는 얘기부터 그래도 정욱이가 말한 그 똥통 학교에서 장학금 차곡차곡 받아 외국 유학 후 교수가 됐다는 얘기까지 다양했다.
상훈이가 끝내 출세하겠다는 뜻을 버리지 않고 장학금 받아 대학 졸업 후 사법고시에 응해 검사가 됐다고 말하는 애도 있었다. 어떤 애는 상훈이가 대학교에 가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비록 육사는 되지 못했지만 훌훌 털고 학사 장교 시험을 쳐서 입대했다는 말도 했다.
분명한 건 어느 소문 하나 증거는 없었고 세상에 상훈이란 이름은 지천으로 깔렸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공통점은 장학금을 얼마를 받았던 그 돈으로 대학교는 마쳤다는 것이었다.
확인불가 소문은 내 궁금증을 증폭했다. 어떤 면에선 고만고만한 회사 월급쟁이이자 사회 부속품으로 사는 나보다 상훈이가 달리 사고 있길 바라는 대리만족 심리도 깔렸다.
나는 그때부터 온갖 인터넷 탐색으로 상훈이를 찾았지만 뭐 하나 건지진 못했다. 그 성격에 상훈이의 흔적이 SNS 등에 나올 리 없었고 세상에 상훈이란 이름은 너무도 흔했다.
급기야 나는 불법 흥신소에 상훈이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시간이 흘러 결과가 나왔다. 내가 아는 상훈이는 이미 2년여 전에 세상을 떠났다. 3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상훈이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다가 죽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사유는 교통사고 즉사였다. 당시 운전은 다른 사람이 했고 상훈이는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상훈이는 군인이 아니었고 검사도 아니었으며 교수도 아니었다. 그런 신분이었으면 흥신소가 확보한 서류에서 드러날 게 뻔했다. 흥신소 사람은 상훈이의 생전 직업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서류상 ‘무직’으로 기록돼 있으며 가족도 없다고 했다.
다만 상훈이 갖고 있던 재산은 꽤 많았는데 전부 국고 환수됐다고 말했다. 나머지 금융 계좌 거래내역 등은 이미 시간이 지난 것도 지난 것이며 개인적이어서 확인 불가라고 했다.
사망 당시 상훈이가 중고등학교를 다닌 시골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당 넓은 별장을 짓고 살았던 것이 확인됐다. 또 다른 주소지로는 서울 육사 근처 어느 빌딩 제일 꼭대기 층이었는데 그 빌딩 전체가 상훈이 소유였다.
“분명히 이거 크게 한판 벌였을 거야. 싸움 잘하지 공부해서 머리 좋지. 분명히 크게 뭘 했을 거라고.”
뒤늦게 찾은 상훈이 뿌려졌다는 그 넓은 별장 앞에서 정욱이 구시렁거렸다.
“어찌 됐든 지처럼은 살았나 보네.”
나는 대강 퉁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