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는 막을 수 있지만 더위는 막을 것이 아니었다. 막을수록 줄줄 새는 땀을 위해선 모두가 열고 또 열어야 했다. 준서는 그래서 여름을 좋아했다.
옷차림이 가벼울수록 사람들의 심리도 같이 열린다고 준서는 주장했다. 그것은 준서가 노리는 지점이기도 했다. 그때 자신의 돈벌이는 행위를 넘어 예술이 되었다. 준서의 지론이었다.
“그러니까 무조건 시장 조사를 하라고 시장 조사를. 그게 시작이자 반이라니까. 무조건 절반 이상으로 이자를 낮춰.”
준서는 6개월 전 받은 조수에게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수도권 구도심에 흉물스러운 빈집이 나부끼는 곳이 준서와 조수의 거점이었다. 준서는 회사의 지원으로 이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거처라고 해봐야 컨테이너 박스를 제멋대로 세워 대강 먹고 자고 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준서는 온종일 조수와 전단 광고를 돌리고 명함을 뿌리고 전화를 받았다.
‘신용불량자도 가능한 10% 확정 금리 대출. 금리를 낮출 수도 없지만 올릴 수도 없습니다. 전화하는 순간 쏴 드려요.’
준서는 고민 끝에 전단 문구를 이렇게 고쳤다. 이는 준서가 강조한 ‘시장 조사’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일대에 흩뿌려진 광고와 비교해 이자율을 절반으로 낮추고도 그것을 확정인 것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준서는 이것을 예술을 위한 첫 번째 혁신으로 조수에게 일장 연설했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세였다. 고작 서른 살의 준서가 단언하기에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잘 굴러갔으니 자신만만하기엔 충분했다.
어쨌든 결론은 사기였다. 준서가 간절한 이들에게 빌려준 이자는 온갖 이유로 치솟았다. 빌려줄 때의 행동은 어느새 사라져 그 이상을 뜯어내는 악덕 업자로 준서는 군림했다. 심지어 자신의 손에 불순물이 묻을 이유도 없었다. 준서처럼 돈을 빌려주는 업자를 회사에선 ‘재무팀’이라고 했다.
반대로 돈 못 갚는 사람을 찾아가 고금리까지 더해진 금액을 뜯어내는 건 ‘영업팀’에서 했다. 흔히 생각하기엔 빌려주는 것이 영업일 터인데 오히려 받는 쪽이 준서네 회사에선 영업이었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은 사회에 익히 알려진 상식 그대로다. 재무팀에겐 가시 감춘 생선처럼 잘 발라진 살코기가 첫 번째였지만 영업팀에겐 누군가 발라먹은 뒤 앙상하게 남은 가시가 궁지에 몰린 이들을 찌르는 도구였다.
“시발. 더럽게 간보네. 뭘 여기까지 돈 꾸러 오는 것들이 금리를 비교한대. 나 참 놀고들 있다 진짜.”
조수가 끓인 라면을 한술 뜨면서 준서가 말했다. 통화를 마친 휴대폰은 대강 소파에 던져둔 뒤였다. 준서가 바라보는 먼 창문엔 큰 소나무가 우거져 벌레들이 이글거렸다. 조수는 키득거렸다.
“너 이 일 한지 얼마나 됐지?”
“이제 2년 정도 됐는데요.”
“너 2년이나 됐는데 회사에서 내 밑에 조수로 보낸 거야?”
“아마 이번 턴까지 돌리고 저도 지방으로 발령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서는 조수와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시시껄렁한 말들을 하면서 라면을 후후 불었다. 조수는 마치 회사 임원을 대하는 것처럼 준서에게 깍듯했다. 준서의 허세는 그 기반 위에서 더욱 통통 튀었다.
휴대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준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돈 좀 빌리려고 하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나온 남자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는 일반적인 태도가 없었다. 코너에 밀려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도 의심이 담긴 목소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반말이라니. 준서 입장에선 헛웃음이 났다. 짐작컨대 수화기 속 남자는 40대 중반쯤이었다.
“고객님. 어렵게 고민하신 끝에 저희한테 전화 주셨을 텐데 잘하셨습니다. 네. 얼마가 필요하신 가요.”
“5천이면 되고. 10퍼센트 확정 금리? 알았으니까. 여기로 입금해. 문자 넣는다.”
상대 남자는 고압적인 자세 그 자체였다. 게다가 아무것도 듣지 않고 그냥 일단 계좌로 입금하라는 태도와 거기에 반대로 역행하는 당당함이 준서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시군요. 고객님 근데 저희가 계약서를 좀 쓰셔야 할 것 같은데.”
준서는 끝을 흐리는 반말 투로 나름의 체면을 챙겼다.
“시발. 불법인데 뭔 계약서? 너네 다 통화 녹음도 되고 하잖아. 계좌추적도 나중에 불법으로 할 거 아냐? 그냥 보내. 바빠 죽겠는데 뭔 말이 많아. 시발 같잖네.”
준서는 당황을 넘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일로 잔뼈가 굵을 대로 굵었는데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조수한테 계좌번호를 건네 뒤 곧바로 돈을 입금하라고 시켰다. 전화를 끊은 뒤엔 당장 다음 달부터 가져다 댈 수 있는 온갖 핑계를 가져다가 이자율부터 올리겠다고 괜히 조수한테 큰소리쳤다. 조수 앞에 선 준서의 허세이자 자존심이었고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분노이기도 했다.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준서는 결국 전화기 속 남자를 찾아갔다. 영업팀에 신원 조회를 부탁해서 위치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가끔은 돈을 입금한 뒤 고객을 찾아가 안심시키는 척 대화를 하면서 이 작자가 어느 정도까지 이율을 올리면 갚을 수 있나 염탐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준서는 그 차원을 넘어서 ‘이런 개 같은 새끼가 다 있나. 죽으려고 발버둥 치네’라는 심정으로 찾아갔다.
“아주 개새끼네. 조지자.”
영업팀이 일러둔 주소로 조수와 가니 허름한 판자 집이 하나 나왔다. 도저히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곳이었다. 다 쓰러져가는 곳에선 악취마저 났다. 그래도 준서는 걸려왔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기하게도 안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너냐. 안 그래도 올 줄 알았다.”
판자 집에서 키가 족히 190cm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걸어 나왔다. 덩치는 어찌나 큰지 시골 어른들이 ‘소도 때려잡을 놈’이라고 부르는 게 딱 이런 사람이구나 싶었다. 게다가 이 남자 뒤로 비슷한 덩치 세 명이 뒤따라 나왔다.
“아놔. 이 어린놈의 분노 조절장애 새끼들이 진짜. 넌 오늘 뒤질 줄 알아. 겁대가리 없이 당장 찾아와? 와서 어쩌려고? 너 까짓것들이 어쩌려고? 엄한 분노를 하네?”
이미 준서와 조수가 남자와 덩치들에게 포위된 뒤였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는 한쪽 눈이 없었다. 애꾸였다. 그런데 안대조차 하지 않아 준서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끔찍한 광경 앞에서 준서는 당황했지만 조수가 옆에 있어 쪼그라들지 않은 척했다.
“이따위 일 하는데 겁 대가리가 없으면 명이 줄어. 왜 인마. 5천만 원 좀 보내달라고 반말한 게 거슬렸냐? 너 같은 놈한테 돈 빌리는데 태도가 어이없었지? 주면 되잖아. 이 새끼야.”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서와 조수를 포위한 세 명의 덩치 중 한 명이 지폐 뭉치를 던졌다.
“고객님 그게 아니고요. 자금은 잘 받으셨는지. 그리고 향후 상환은 어떻게 하는 게 유리하신지 그런 것들 좀 말씀드리려고.”
“닥쳐 새끼야. 그럴 거였으면 전화를 하고 왔어야지. 그냥 왔잖아. 넌 화가 났던 거고 그 이유는 내가 너한테까지 돈 빌리는 머저리인데 재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거야. 내 말이 틀렸냐? 그 따위 분노랑 허세는 부릴 때 부려야지.”
준서는 반박할 수 없었다. 조수한테 빨리 영업팀에 전화하라고 눈치를 줬지만 덩치들이 준서와 조수의 휴대폰을 뺏었다.
“오천만 원 어떻게 갚냐고? 너네 두 놈들 장기랑 눈알 팔아서 갚는다. 됐지? 겁도 없이 화난다고 막 행동하고 그러지 마. 돈 필요한 사람들 등쳐 먹고사는 거 그거 떳떳한 거 아닌데 센 척하지 말라고. 역겨워 아주. 야 얘네 다 묶어서 저 뒷간으로 데려와.”
남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덩치들이 준서와 조수를 포박했다.
“분노는 그런 곳에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는 분노 조절장애가 아니라 명줄 조절 장애지. 너네 회사 애들 어떻게든 나중에 찾아서 오겠지? 내 눈이 파였을 때 내 눈을 판 것들은 멀쩡 했겠어? 젊은 친구. 이름도 성도 묻지 않을게. 대신 헐렁해진 장기랑 사라진 눈알 한쪽 보면서 한평생 똑바로 살아.”
준서가 기억하는 남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정신 차렸을 때 준서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조수도 사라진 뒤였다. 눈은 시큰거렸고 바닥엔 피가 흥건했다. 준서는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다시 눈을 감았다. 옆에는 남자가 두고 간 것인지 명함 하나가 있었다.
‘고객님 장기를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