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일개미

by 반동희

일개미들이 삼삼오오 지렁이를 운반했다. 숨이 끊긴 지렁이는 제 몸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일개미들의 밥이 될 처지였다. 듬성듬성 패인 잔디 위로 질퍽이는 흙들이 멋대로 뒤엉켰다. 뒤엉킨 흙들은 지나가는 발걸음에 이리저리 치여 모습을 달리했다.


그 와중에 한 사내가 바닥을 침대 삼아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닥치는 대로 펼친 돗자리 위에서 사내는 한쪽 팔로 겨우 하늘을 가려 눈을 감은 채였다. 일개미들이 막 지렁이를 개미굴 앞까지 옮겼을 때 사내는 기지개를 켜고 눈을 떠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금이 몇 시지.


중요하지도 않은 말을 사내는 내뱉었다. 실직의 허망함이 깊어질수록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사내는 십 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서 잘린 이후 외판원을 전전했다. 회사 동료와 그 동료의 지인과 거래처 직원과 그 거래처 직원의 지인을 돌려 막는 식으로 사내는 보험을 팔고 정수기를 팔고 건강식품을 팔았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던 월급은 어느 순간 제로가 되었고 남는 건 다른 직업으로의 전직뿐이었다.


사내는 항구에서 트럭 운전사로 대형 화물을 시내로 나르고 버스 회사에 취직해 시외버스를 몰기도 했지만 늘 한 끗 차이의 운이 부족했다.


하필이면 트럭에 실린 화물이 불법 밀수품과 엮였고 시외버스는 세간을 시끄럽게 한 연쇄 추돌사고에 연루됐다. 전부 사내가 의도하지 않고 어찌할 수 없는 사고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불안정한 밥벌이의 밥통을 걷어차이기 좋은 이유였다. 이제 사내가 택할 수 있는 건 겨우 몸을 누이는 돗자리로 여기저기 유영하며 그럭저럭 낮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사내가 돌아보기에 자신의 인생은 정말이지 막판의 일 인치가 부족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사회를 지탄하는 것보다 사내에겐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 오랜 시간 울고 좌절하고 곱씹고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면서 사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사내는 어렸을 적 신동이라고 불리며 동네를 주름잡던 축구 실력으로 선수까지 꿈꿨다. 하지만 대학 입시가 걸린 전국 단위 고교 대회에서 상대 감독이 자기 선수에게 시킨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태클에 걸려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끔찍한 부상을 입었다. 그 감독은 그 학교 다른 학생의 어느 대학 입학 조건으로 뒷돈을 받았다는 소문을 몰고 다녔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었다.


이후 사내는 겨우 마음을 추슬러 접었던 공부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중학교 수준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운동하던 강인한 체력으로 붙어보자며 사법 고시까지 덤볐지만 일차 통과 이차 탈락을 반복하는 사이 어느 순간 사회는 유서 깊은 고시제를 폐지했다.


사내가 고시 낭인 이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래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을 결심하고 그 댁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간 날 장인어른 될 분이 쓰러졌다. 심지어 그분이 딸에게 “남몰래 유학 자금을 모아놨으니 너는 반드시 세계무대에서 공부를 원 없이 하여 외교관의 꿈을 이루고 그때까지 결혼은 생각도 말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다음은 그럭저럭 들어간 중소기업에서 잘린 이후 방랑한 외판원 등의 직업들로서 사내는 거기서도 애초 존재하지 않던 운이 생길 리 만무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정말이지 사내에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더 비극이었다. 세상사 모든 일들이 현실의 어떤 법칙으로도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꼬여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이제 다 늙어 집도 절도 가족도 자식도 없는 사내는 홀로 침전했다. 사계절 내내 하늘을 솜이불 삼았고 겨울엔 땅을 쿨매트 삼았으며 여름엔 길바닥을 전기장판으로 깔며 짙게 깔린 땅거미와 인사하고 먹이 옮기는 일개미와 동침하며 끌려가는 지렁이에 눈길을 보냈다.


사내가 보기에 세상 많은 것들은 결국 운칠기삼이어서 노력이란 타고난 운으로 편하게 사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부류가 혹여나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힐까 봐 만들어 낸 세뇌였다. 노력하면 된다.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 노력하면 나아진다. 이런 마법의 주문을 사내는 믿지 않기로 했다.


그리하여 사내는 마침내 노숙자를 가장한 자유인으로 길을 틀었다.


이제 사내는 시내 곳곳의 은행과 관공서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고객용 컴퓨터를 하며 희희낙락 거리다가 나라에서 운영하는 따뜻한 밥집 등에서 끼니를 채우고 다시 길바닥에서 선잠을 잔다.


사내는 자신을 거리의 문학인이라고 자처하며 공책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는데 이제 세상은 아무도 글자를 주목하지 않으며 책 같은 건 자기계발서나 재테크 서적만 팔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 또한 사내의 문장력에 비하면 운이 지지리도 없는 것인데 그는 거기까지 더는 내다보지 않고 자기 일을 소일로 치부해 그저 바다를 유영하는 플랑크톤이나 어부의 그물망에 잡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멸치 정도로 정의했다.


꼼짝할 수 없는 운명의 낚싯바늘에 꿰어져 숨이 자연스럽게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의 자유를 만끽하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세상은 그런 존재들쯤은 아무렇지 않게 인식해 그저 그렇게 일상을 돌리는 것이 정해진 법칙이라고 사내는 생각했다.


마침 사내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은 점점 불어나 이제 막 사회의 질서는 오히려 지키고 싶어 하는 이들이 지킬 것을 지켜내기 위해 부려먹어야 하는 일개미들의 태업으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들 세상은 사내와 같은 이들에게 온갖 처량함을 가장한 비웃음을 엮어 '삼포 세대' '사포 세대' '오포 세대'로 점점 숫자를 더해 말을 창조했다. 그 가운데 아무도 이들에게 운칠기삼에서 기삼에 해당하는 기회를 조금도 주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운칠에 해당하는 것은 나눠주려 하지 않았으므로 창조된 신세대들은 늘어만 갔다.


어느 볕 좋은 오후에 사내는 일개미가 되어 숨이 끊긴 지렁이를 운반하는 꿈을 꾸었다. 꿈은 달콤했고 자신과 같은 일개미들의 표정은 행복했다.


일개미들은 주관적인 말을 하지 않았고 손쉽게 위로하지 않았으며 노력하라고 섣불리 조언하지도 않았다. 똑같은 애벌레일 때 다른 먹이를 먹고 자라 후천적으로 탄생한 여왕개미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들은 늘 그래 왔듯이 일개미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았다.


사내는 마침내 진짜 자유를 얻었다고 기뻐하며 지렁이를 날랐다. 운칠은 없었지만 기삼은 분명했고 기삼이 분명했으니 운칠은 못 되어도 일말의 희망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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