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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Oct 18. 2020

(초단편소설) 우리 같이 개미가 되어볼래?

그날은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우선은 점심 먹기 전인 오전까지 배송해야 하는 물건이 적었다. 하루치 물량도 정배열로 손쉽게 정리됐다.


정배열이란 배송기사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다. 정배열이 되면 차를 몰고 이쪽저쪽 오가지 않고 한 동에서 다른 동으로 이동하며 배송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최적화 동선을 물건 주소로 단번에 짜는 것이다.


이 모든 걸 완성하고 첫 배송에 나서기 전까지 평소보다 이십 분이나 절약됐다. 아침 이십 분이 절약됐다는 것은 점심 먹고 믹스 커피 한 잔을 더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셈이다. 그 시간 또한 아낀다면 이십 분 더 일찍 퇴근해 어쩌면 집에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말 그대로 그날은 시작부터 촉이 좋은 날이었다.


나는 믹스 커피를 포기하고 일찍 퇴근하는 걸 택했다. 열심히 달리고 뛰고 날랐더니 저녁 일곱 시 사십 분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이십 분이 아닌 자그마치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줄인 셈이었다.


아마도 아침부터 흥이 나는 바람에 가속도가 붙어 시간 절약이 더욱 됐을 터였다. 매일 이 정도만 되어도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일 끝나자마자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 아내와 딸이 좋아하는 고등어 두 마리를 사 가지고 갈 테니 오늘은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아내는 그러자고 웃으며 답했고 수화기 너머로 딸 혜인이가 “아빠 일찍 온대?”라고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나 힘이 샘솟게 하는 마법 같은 두 여자의 반응이었다. 정말이지 그날은 집에 들어가기 전까진 모든 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하루였다.


퍼즐 조각 하나가 사라진 건 집에 들어서면서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달려 나와 자신을 안아달라고 버둥거려야 할 ‘토리’가 보이지 않았다. 토리는 열 살짜리 수컷 푸들 강아지로 우리 부부가 딸 혜인이를 낳기 전부터 길렀다. 혜인이는 올해 아홉 살이었다. 토리가 한 살 많았으니 강아지 지능으로 치면 충분히 세 살 배기 지능을 넘어서고도 남았다.


매일 늦게 집에 들어설 때도 토리는 어둠 속에서 가장 빨리 달려 나와 내게 안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엌에서 쿠키 간식을 꺼내 토리 입에 넣어주며 녀석의 머리와 턱을 쓰다듬곤 했다. 그런 토리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토리는 왜 안 나와? 어디 아파?”


이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했지만 난 꺼내고 말았다.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토리? 무슨 토리? 그게 뭔데?”


아내가 대꾸했고 딸이 내복 바람으로 엉거주춤 거실에 서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나는 아내와 딸한테 모처럼 일찍 왔는데 장난치지 말고 빨리 고등어를 구워 먹자고 했다. 반대로 아내와 딸은 이구동성으로 나한테 장난치지 말고 빨리 고등어를 꺼내놓으라고 했다.


“왜 그래? 토리 어디 아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사람이 기분 좋게 일찍 와서는.”


대화는 서로의 벽에 부딪혀 부메랑처럼 가슴에 돌아왔다. 토리의 흔적은 집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 토리를 데려왔을 때 사 준 장난감 공도 사라졌고 토리가 쓰진 않지만 이따금 들어가는 쿠션 집도 없었다. 그 외에 토리에게 주던 쿠키 간식도 보이지 않았고 신발장에 넣어둔 목줄과 배변봉투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딸은 내 행동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정말로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고등어는 비닐봉지에 그대로 담겨 식탁 위에 그대로 있었다. 그날 우리는 고등어를 먹지 못했다.


나는 토리와 토리의 흔적을 계속해서 찾았고 급기야 이런 식의 장난까지 칠 필요는 없지 않냐고 아내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아내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다가 끝내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딸은 아내 옆에 딱 붙어 아빠가 무섭다고 울먹였다.


정말로 토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다음날도 출근을 해야 했다. 한숨도 못 자고 소파에서 뒤척였으니 거울 속 내 얼굴은 퀭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알랄라’를 만났다. 알랄라는 혜인이가 붙인 우리 가족끼리의 별명으로 이 열네댓 살쯤 보이는 남자아이는 늘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며 이상한 행동을 했다.


다행히 알랄라가 사람들에게 신체적으로 큰 피해를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얼이 빠지거나 정신이 나간 아이였다. 모두들 알랄라와 그 부모 앞에선 숙연한 눈길과 위로해주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뒤에선 그렇게 수군거렸다.


그런데 알랄라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너 한숨도 못 잤구나? 왜? 사람들이 널 이상하게 대해?”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알랄라의 말이 제대로 귀에 꽂혔다. 또박또박 들리는 알랄라의 발음과 한참 어른인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반말이 서늘하기까지 했다.


“44억 년 전엔 하늘에서 두 개의 달이 보였대. 너도 오늘 한 번 잘 봐. 달이 두 개로 보일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이 하나로 보이나 봐.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저렇게 크게 두 개가 보이는데.”


알랄라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렸고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있는 부모를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 부모는 내 눈길을 피했고 알랄라의 손을 더 꽉 부여잡았다. 아파트 십팔 층에서 일 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하루 종일 일하는 근무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오늘 밤에 달이 하나가 더 보이면 너는 나랑 같이 꿈을 꿀 수 있는 사이가 된 거야. 꼭 한 번 하늘을 봐. 그리고 달이 두 개로 보이거든 나랑 같이 개미가 되어달라고 소원을 빌자. 개미는 예전에 히로시마 폭탄에서도 살아남았대. 개미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으니까 우리는 꼭 개미가 되어야 행복할 거야. 그래야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어. 우린 잘못된 좌표를 받아 든 탈옥수 신분이야.”


제발 저 주둥이가 멈추길 바랐다. 제발 저 소리가 들리지 않길 바랐다. 제발 내 앞에 있는 아이가 알랄라가 아니길 바랐다. 제발 저 말들이 이전처럼 미친 소리로 흘려지길 바랐다.


그날 밤 퇴근 직전 배송 차량을 공터에 세워두고 하늘을 봤다. 정말이지 두 개의 달이 떴다. 오른쪽엔 보름달이 이전에 보던 것보다 족히 오십 배는 더 될 정도로 크게 보였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왼쪽으론 상현달이 보름달에 절반 정도 되는 크기로 떠 있었다. 망할 달을 깨부수고 싶었다.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서자 오늘은 아내와 딸이 자지 않고 있었다. 어제 그 소동을 벌였으니 내가 걱정된 모양이었다. 나는 토리가 어디 갔느냐고 묻지 않았다. 토리의 행방을 물으면 두 개의 달과 알랄라의 말이 들리는 것도 설명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것은 우리 가정의 평화가 깨지는 걸 의미했다. 적어도 내 편에선 그랬다.


“오늘 좀 늦었지? 어제 괜히 심한 장난을 쳐서 미안. 오는 길에 붕어빵 좀 사 왔어. 혜인아 먹어. 아빠가 소리쳐서 미안해. 어제 모처럼 일찍 퇴근해서 재밌게 좀 놀려고 했는데 장난이 심했네.”


그제야 아내와 딸의 표정이 풀렸다. 그들의 등 뒤 베란다에선 두 개의 달빛이 거실로 들이쳤다. 이번엔 보름달과 상현달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그들 두 개의 달은 심지어 태양처럼 이글거리기까지 했다.


“커튼 치고 자야 숙면에 좋대.”


나는 베란다로 가서 커튼을 쳤다. 아내는 캔맥주를 하나 꺼내왔고 딸은 붕어빵을 들고 맛있다며 소파에서 방방 뛰었다. 나는 두 번 다시 알랄라와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내일 밤엔 제발 하나의 달이 떠 있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정말 토리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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