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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Jun 02. 2019

(초단편소설) '호세 리살'의 USB

내 친구 호세 리살은 구김살이 없었다. 우선은 기호가 불분명했다. "호세는 이 집 짜장면이 맛있어?"라고 물으면 "늘 맛있죠"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그 집은 맛이 심각하게 없어 파리만 날리는 곳이었다. 외국인도 한 번 가고 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주방장이 적성에 안 맞는 일을 기어코 지속하는 그런 집이었다.


그래도 호세는 막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가족과 둘러앉은 학생처럼 그 집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어제 짬뽕 곱빼기를 먹고도 호세는 "오늘 짬뽕 어때?"라고 물으면 웃으며 끄덕일 뿐이었다. 당연히 그 중국집이었다. 그 주방장은 자기가 만든 짜장면보다 최악의 음식은 없을 것이란 예상을 보기 좋게 깨며 짬뽕을 만들었다.


호세는 그것도 맛있게 먹어치웠다. 심지어 바로 어제 그 짬뽕을 먹어 대참사를 겪고서도 말이다. 그만큼 호세는 못 먹는 음식도 없었고 딱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었다. 쏘맥도 좋아했고 양맥도 잘 마셨다. 흔한 조합이 아닌 청하에 피자도 매일 즐기던 사람처럼 흡족해했다.


호세 리살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펀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는 학습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통념적인 이 표현 외에 어떤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웠다. 나는 외국인 대상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지금도 그렇다.


처음 호세 리살을 수업에서 만났을 때 그는 "안녕하세요" "저는 호세 리살입니다" "필리핀에서 왔어요" 정도를 어눌하게 말했다. 그랬던 호세 리살은 채 한 달이 안 된 시점부터 거의 완벽한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같이 수업 듣는 다른 모든 외국인 학생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언어 외에도 한국 역사라든지 페미니즘이 어떻다든지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든지 그런 대화까지 나눌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호세 리살에게 방송국에 제보할 테니 한국에서 지내는 외국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나가보는 게 어떠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러면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뜻에서였다.


그때마다 호세 리살은 조용히 하루하루 지내는 게 목표라며 극구 거절했다. 구김살 없고 기호 없는 그 태도 그대로였다.


독특한 점은 또 있었다. 호세 리살은 가족 얘기를 극도로 꺼렸다.


"가족 얘기하면 저는 슬퍼요. 그런 질문은 힘들어요"라고 늘 호세 리살은 질문을 돌려세웠다. 다른 외국인 학생 중 저마다의 사연 있는 이들이 많아서 나는 겸연쩍으면서도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이렇게 엄청난 두뇌의 소유자가 이역만리 한국까지 와서 조만간 인공지능이 대체할지도 모를 공장 일에 시달리는 게 아쉬웠는데 방도는 없었다.


호세 리살은 늘 성실했고 그저 만족한다고 했다. 아마도 호세 리살은 자기 나라에서 무척 똑똑하게 태어났는데 가정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여기서 나를 만나 최악의 짜장면과 짬뽕을 웃으며 먹는 것이라고 나는 그저 추측했다.


문제의 그날은 작년 여름이 코앞에 오기 전 어느 무더운 봄날이었다. 갑작스럽게 성큼 다가온 더위에 뉴스에선 온통 이상 기후를 조명했다. 나는 호세 리살과 이태원 한 스포츠 펍에서 맥주에 치킨 너겟을 먹었다. 서울 구경을 가자는 내 등살에 호세 리살이 따라나선 터였다. 한국에 왔으면 서울은 둘러봐야 한다는 말에 호세 리살은 이내 구김살 없는 웃음으로 답했다. 호세 리살은 자주 신는 쪼리 슬리퍼 대신 하얀 운동화로 갈아 신으며 일초 만에 준비를 마쳤다.


갓 나온 너겟을 집으며 호세 리살은 "필리핀 더위랑 한국이랑 비교하는데 달라요. 필리핀 습도를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날도 호세 리살은 "그래도 맥주는 산미구엘이 최고지?"라는 내 물음에 "에휴 뭘요. 다 맛있어요"라고 기호 없이 답했다.


막 두 번째 삼천 씨씨 맥주를 비웠을 때 호세 리살은 "저 이제 돌아가요"라며 웃어 보였다. 스포츠 펍 모니터에선 필리핀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국 프로농구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호세 리살이 돌아간다는 건 내게 '필리핀'을 뜻했다.


"호세, 그럼 이제 한국엔 안 와?"


"한국말도 많이 배웠고 사실 기약은 없어요."


"한국이 더 살기 좋지 않아? 호세 말대로 이제 의사소통도 잘하고 일도 만족한다며? 게다가 그렇게나 덥다고 했잖아."


"어디가 더 살기 좋고 나쁘고는 없어요. 저는 다 편하고 좋아요."


여전히 구김 없이 말하는 그 특유의 태도에 나는 씁쓸하고 아쉬웠다. 나는 이 친구가 늘 신비로웠고 어제 알려준 것이면 말이든 문화든 역사든 절대 잊지 않는 그 학습 능력이 부럽기까지 했다. 아마 한국에서 법전을 달달 외웠으면 시시콜콜한 말을 길게 늘어트리다가 "주문"하고 외치며 판사봉을 땅땅땅 두들기고도 남았을 머리였다.


게다가 당장 남극에 데려다 놓아도 살 것 같은 저 불분명한 기호와 적응력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었다. 필리핀 사람 특유의 낙천성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었다. 주방장만 빼고 다른 그 어떤 걸 했어도 지금보다 나았을 '그 집' 짜장면과 짬뽕을 먹어치우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전에 보여줄 게 있는데요."


뜻밖에도 호세 리살이 나를 데려간 곳은 그의 집이었다. 이태원에서 무려 맥주와 치킨 너겟 정도나 뜯고 우리는 다시 외국인 공장 단지로 발길을 돌렸다. 호세 리살은 내게 마지막으로 자기 집에 한 번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늘 그가 궁금했던 나는 지체 없이 따랐다.


처음 호세 리살 집에 들어섰을 때 몇 벌의 옷 외엔 아무것도 없는 단출함이 눈에 띄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빈 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단지 호세 리살이라서 놀랍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주머니에서 작은 물체를 꺼내면서 시작됐다.


"이게 나예요. 이제 나는 돌아가요."


호세 리살은 현관문이 닫히자 곧장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USB처럼 보이는 물건을 꺼냈다.


"이거 USB 아니야? 호세는 컴퓨터도 안 쓰는 줄 알았는데?"


호세 리살은 그저 웃었다.


"여기 안에 뭐 재밌는 거라도 들어있어? 호세도 야동 보는구나?"


"에휴 뭘요. 재밌는 것도 아니고 신기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가 돌아가요."


우리 대화는 얼마 간 이어졌고 호세 리살은 손을 흔든 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호세 리살 말대로라면 USB 속으로 그가 들어갔다.


그날 들은 호세 리살의 설명은 이랬다.


그는 태양계 밖에 존재하는 이카이포라는 별에서 살았다. 그곳은 지구 사분의 일 크기였는데 일단 모두가 같은 언어를 썼다. 모든 이들이 호세 리살과 같은 피부색에 비슷한 생김새였다. 워낙 인구가 적어서 그랬다. 그들은 지구인 입장에서 보기엔 몇 세기 이상은 앞선 고도화된 문명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늘 지구를 관찰하고 응원했다. 넓은 우주를 설명하고 자신들이 걸어온 길과 그 반성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지구 문명의 발전을 틈나는 대로 봤으며 그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전부 지구의 컴퓨터와 모바일 발전 덕분이었다. 그전까지 이카이포 사람들은 지구인들이 부르는 UFO처럼 미확인 비행물체를 타고 멀리서 지구를 봤다. 일부 호기심 많은 이카이포 사람이 지구에 착륙하는 일도 있었지만 흔치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구에서 인터넷이 일상화되면서 노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비행물체를 타고 들여다볼 일이 사라졌다. 이카이포인은 지구인 물체 중 USB에 주목했고 ‘탐방 통로’로 이를 활용했다.


호세 리살을 예로 들자면 자신의 신체 입자를 잘게 분쇄해 그것을 지구인이 사용하는 인터넷 안 특정 파일에 끼워 넣는 식이었다. 이 인터넷 상 파일을 지구인 누군가가 USB로 다운로드해 저장할 경우 순간 이동이 가능했다. 필리핀에 사는 사람이 인터넷에 떠도는 영화라든가 문서를 다운받아 USB에 저장하면 호세 리살의 입자가 그 안에 있다가 아무도 없을 때 밖으로 나오는 식이었다. 그럼 또 다른 호세 리살이 이카이포에서 지구로 순식간에 이동해 재탄생했다.


"USB 잠금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지구에서 요즘 UFO라고 불리는 것들이 예전만큼 보이지 않죠. 목격됐단 얘기도 줄었고요. 간혹 요즘도 UFO를 봤다는 얘기가 떠도는데 결단코 그건 저희 이카이포에서 보낸 게 아니에요."


"그럼 호세는 어째서 하필 필리핀으로 왔고 한국은 또 왜 온 거야?"

"저희 생김새가 지구에서 특히 필리핀 사람들과 비슷해요. 그래서 왔었죠. 왔었다라는 게 조금 의아하지 않아요?"


그랬다. 호세 리사는 한국말을 꿰차 시점까지 정확하게 구사했다. 그런 호세 리살의 '왔었다' 표현은 필리핀에서 바로 한국으로 온 게 아닌 또 다른 무언가를 암시했다.


"필리핀에 왔다가 한 번 돌아갔어요. 한국은 요즘 저희가 관심을 갖고 보는 나라 중 하나예요. 도대체가 신기한 것 투성이거든요. 그래서 꼭 오고 싶었는데 문제는 한국이란 곳이 요즘 들어 USB를 도통 쓰질 않아요. 이 최고 수준의 인터넷 나라는 모든 걸 USB 없이도 주고받을 정도로 발전했죠. 저희 입자가 인터넷망 안에서 떠돌 뿐 도통 나올 수 있는 상황이 거의 없어요. 게다가 아주 낮은 확률로 어쩌다가 USB에 들어가도 그 주인이 저 구석 비밀스러운 곳에 감춰 놓는 경우가 많죠. 저희는 꼼짝없이 그 안에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거예요. 이를 테면 노트북이나 태블릿에 갇혀 있는 경우예요. 운 좋게 USB까지 들어가더라도 눈길을 피해 빠져나오기 어렵고 심지어 잠금장치마저 쓰는 철저한 사람이 유독 많아요. 비밀이 많겠죠 뭐."


호세 리살의 설명은 단순했다. 당장 나부터도 USB를 쓴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호세 리살의 유창한 한국말 중 한 가지 특징은 '사람'이란 단어를 결단코 쓰지 않는다는 거였다. 시점까지 정확히 구사하는 이 학습 능력 대통령이 '사람'이란 단어를 모를 리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호세 리살은 분명히 말하고 떠났다.


"저희도 같은 사람이에요. 단지 멀리 있을 뿐이고 과거 잘못에서 달라졌단 것뿐이죠. 지구에 사는 모두와 저희는 같아요. 그런데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까지가 사람이 아닌지에 대해선 제가 사는 곳에서도 아직 불분명해요. 언어라는 건 사고를 규정하는데 저희 문명은 과거 다른 별에서 살 때 그것을 간과해서 그곳을 떠나야 했죠. 끝은 전부 파괴되고 공멸하는 것이었어요. 일부가 살아남아 이주해야 했죠.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찾은 별이 이카이포였고요. 그래서 저희 인구가 여전히 적어요. 저희는 그때부터 언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람이라고 부르는 소중한 것을 사람처럼 대하지 않아 고생했죠. 심지어 일부 사람 울타리에 들어온 대상도 사람처럼 대하지 않았어요. 그 결과는 파멸이었죠. 그런 뼈저린 잘못과 반성 끝에 사람이란 단어를 언제까지고 아무 곳에도 붙일 수 없다는 단순한 결론을 내린 상태예요. 여전해요. 저희한테도 사람은 여전히 어려운 단어고 쓰지 않는 단어죠. 사람인 것과 사람이 아닌 것에서 시작된 공멸의 역사가 두려운 상황이죠."


호세 리살과 만나면서 그가 그렇게 장황하게 말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책상 위 USB를 챙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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