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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ug 15. 2019

(초단편소설) 그 집 짜장면이 맛있어진 이유

도대체 이사 날은 왜 그렇게 짜장면이 당길까.


벌써 다섯 번째 이사였지만 그날도 그랬다. 다섯 번째 이사라는 건 벌써 서울살이가 오 년을 넘어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 년 단위 원룸 월세에 계약 연장은 무리였다. 집주인들은 온갖 이유로 더 많은 월세를 요구했다. 그때마다 나는 좀 더 작은 집을 찾아 헤맸다. 어쩌다가 비슷한 크기의 집이라도 구하면 어김없이 변두리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오 년 전 서울에 취직했다는 말에 엄마는 “니 같은 것도 서울에서 써 준다 하디?”라고 구수한 사투리부터 튕겨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한테도 서울은 저 먼 미지와 불안의 세계였다. 이를 테면 뉴욕이나 케냐의 어디 커피농장 같은 곳과 평행선이었다.


흔히 말하는 ‘깡촌’에서 태어난 나는 전교생이 스무 명도 채 안 되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동창 대다수가 고스란히 올라갔다. 그마저도 해를 거듭할수록 몇 명이 인근 광역시로 이사를 가서 전교생이 줄어들곤 했다.


나는 어떻게든 서울에 올라가 살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했고 그걸 이뤘다. 작은 잡지사였지만 그곳이 내 상경의 꿈을 실현해줬다. 나는 잡지 구석구석에 실리는 광고 기사 쓰는 일부터 했다. 그게 지금 오 년이 넘어가고 이따금 취재 기사도 쓸 정도가 됐으니 버틸 만큼은 버틴 터였다.


이사 얘기를 계속하자면 나보다 일찍 상경한 직장 동료 희민의 추천이었다. 집 계약 만료를 앞둔 내게 희민이는 변두리 어느 동네를 소개했다. 가까스로 서울 경계 안에 걸친 동네였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않는 이삿짐을 화물차 하나 불러 옮긴 뒤 나는 그날도 동네 중국집을 혼자 찾았다.


“어서 오세요” 대신 “몇 분이세요”라고 먼저 묻는 무신경한 말만큼이나 그 집 짜장면은 최악이었다. 면과 양념은 따로 놀아 마치 고기 대신에 면을 담가 먹는 짜장면 샤부샤부를 먹는 듯했다.


그에 반해 ‘이 폭주의 맛을 먹을 테면 먹어 봐라’라는 식으로 전투적으로 나오는 어마 무시한 양은 질릴 정도였다. 나는 채 몇 젓가락 뜨지 못하고 일어섰다.


‘어째서 매번 이삿짐을 옮기면 짜장면이 당길까?’라는 질문은 ‘도대체 짜장면만 빼면 뭐라도 이것보다 못하진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왜 이걸 만들고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서울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곳이란 타지인의 시선이 막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그 후로 다시 그 중국집을 찾은 일은 없었다. 일이 바쁘기도 했고 어쩌다가 그 앞을 지나가는 날이면 당연히 가게 안은 파리만 날렸다. 아주 가끔 한 테이블 정도가 있는 걸 밖에서 보기도 했는데 그들 앞에 놓인 게 짜장면인 걸 보면 또 하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혼자 웃었다.


그런데 몇 달이 흐른 어느 날부턴가 그 중국집 앞에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내 눈이 의심돼 사람들 어깨너머로 안을 들여다봤다. 사람들 대다수는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의외로 주인은 그대로였고 그가 주방까지 맡아 요리를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가게 벽면에는 심지어 ‘방송 취재 사절’이라는 말까지 붙어있었다. 순식간에 ‘돈벼락’ 맡은 중국집으로 변한 셈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집 앞이었으므로 내 전략은 마감 직전 찾는 것이었다. 사람이 없는 문 닫기 직전에 가서 줄 서지 않고 혼자 짜장면을 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몇 분이시죠?”


그날도 주인은 별로 상냥하지 않은 말로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가게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짜장면을 주문했다. 심지어 양도 그때 먹었던 것처럼 어마 무시했다. 그렇다면 맛있는 데다가 양까지 엄청나서 사람들이 몰린 거란 말인가.


나는 크게 한 젓가락 잡아서 떠먹었다. 면과 양념이 따로 놀던 ‘샤부샤부 짜장면’은 옛말이었다. 면이 양념과 태어날 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잘 배어 있었다.


특히 고기가 내뿜는 향과 맛이 일품이었다. 입가에 퍼지는 고기 향은 풍미 자체로 짜장면 전체를 압도했다. 그야말로 먹으면서도 입에 침이 고였다.


젓가락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춤을 췄다. 찌르고 잡고 돌리고 올렸다. 그 많던 짜장면 양은 단숨에 사라졌다. 나는 잘 먹지도 않던 양념까지 깨끗이 비웠다. 그릇을 물로만 헹궈도 새 그릇처럼 보일 정도로 싹싹 핥았다.


며칠을 더 그렇게 마감 직전에 찾아갔다. 짜장면만 아니면 다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주인이 다르게 보였다. 짜장면을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변모해 있었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저씨.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나요? 제가 몇 달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거든요.”


이런 식의 말을 쭉쭉 늘어놓으며 나는 이 짜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표현을 온갖 미사여구로 풀었다. 사람이 많아서 도저히 마감 직전이 아니면 오기 힘들다는 최고의 찬사도 함께 덧붙였다.


“바싹 벌어서 서울 뜨려고요.”


자세히 들으니 아저씨 억양은 특이함이 쑥쑥 묻어났다.


"그래서 인육을 쓰죠. 인육 알죠? 사람 고기. 혼자 오는 손님이 딱인데. 내가 며칠 지켜봤거든."


그 순간 아저씨 눈빛에 한줄기 빛이 들어서는 걸 나는 간파했다. 앉은 테이블에서 뒤를 보니 가게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짜장면에 취한 사이 알지 못한 사실이었다.


“반복해서 혼자 오는 손님을 놓칠 순 없죠.”


입가에 살기 띤 미소를 흘리는 아저씨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다시 몇 그릇의 짜장면 고기로 태어났다. 이 글이 당신에게 닿았다면 그것은 언젠가 먹은 전국의 짜장면을 대신해 내가 속에서 길어 올린 메시지라고 보면 되겠다.


스스로 생각한 것으로 착각하는 내면의 목소리는 이렇게도 밀려온다. 짜장면 그릇 속 삶은 생각보단 안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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