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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ug 21. 2019

(초단편소설) “그냥요”

“도대체 왜 그랬어?”


정적을 깬 엄마의 물음이었다. 몇 번이고 나를 찾아왔지만 엄마의 이 질문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이어갔다.


대답을 듣고자 했던 엄마도 조용하긴 마찬가지였다. 굳게 닫힌 엄마의 입은 애초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엄마의 등 뒤로 교도관이 안경을 고쳐 쓰는 게 보였다. 본인도 궁금하던 찰나에 내 입을 주시하는 눈치였다. 경찰도 검찰도 심지어 국선 변호사도 궁금해 한 사안을 내가 그렇게 흘릴 리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갇힌 이 시간의 ‘진공’이 깨져 ‘산화’할 것이 분명했다. ‘진공’의 또 다른 한자 뜻은 ‘죄를 저지른 사람이 자기의 죄상을 사실대로 말함’이었다. 그쪽의 진공은 더욱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냥요.”


나는 조서에 시종일관 적힌 대로 똑같이 답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교도관이 애써 모른 척 딴짓하는 게 보였다.


엄마와 나의 침묵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면회 시간 끝났다는 교도관의 말에 엄마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뒤돌아섰다.


“나랑 네 아빠도 너희처럼 그렇게 연애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 그런 거야. 다 그랬던 시절이 있는 거라고.”


또박또박 면회실 전체에 울려 퍼지는 엄마의 말에 나는 입 속으로 혀만 깨물었다.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다.


엄마는 내가 ‘알 수도 있는’ 은밀한 과거를 끝내 내보이지 않았으므로 나도 그 앞에서 으스러질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연결고리가 이어지니 딱히 치밀어 올라오는 말도 없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그랬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내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마가 말한 ‘너희처럼 연애하던 시절’은 나와 여자 친구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오래전 엄마는 내가 여자 친구와 같이 식당에 있는 걸 우연히 봤다. 그런데 그것도 벌써 옛일이고 지금은 헤어진 지 오래였다.


엄마와 면회는 그렇게 시간을 꽉 채워 끝났고 대화도 그렇게 꽉 잠긴 채로 막을 내렸다. 그게 벌써 일 년 전의 얘기다.


나는 한 인간의 기억이 또렷해지던 시절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걸 보고 컸다. 아마도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그러다가 그들은 어느 날인가 단숨에 헤어졌다.


여기서 내가 ‘그들’이라고 표현한 건 부모를 낮잡아 지칭한 게 아니다. 부모라는 개념을 떠나 그저 나를 제외한 또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타자화해 부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 인격체에 아무런 자의적인 감정이 없으며 ‘그들’이 부모로 치환됐을 때는 기억이 없어 지금도 논하기 어렵다.


나는 ‘그들’의 이별 후 그날로 고아원에 갔다. 매일 그들의 싸움이 반복되고 그 안에서 앵앵 울던 나와 우리 집은 전쟁터였다.


전쟁이 모두 그렇듯 그것이 끝나면 승자와 패자는 각자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은 스스로 자처한 적은 없지만 고아원에서 홀로 잘 사는 것이었다.


그런 형편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살면서 책이나 비디오 따위에 빠져 지냈다. 이런 취미는 결코 좋아서가 아니라 돈이 안 들기 때문에 한 것이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는데 대충 잡아 말 그대로 대충 읽은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다.


이 책을 남들은 어떻게 봤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파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권 의식이자 삶에서 내가 행할 수 있는 주인 의식으로 깨달았다. 그 책을 막 읽었을 때 몽롱했던 그날의 기분이 여전하다.


학교와 고아원을 오가며 웅크리고 살던 삶은 그렇게 점점 학교와도 담을 쌓는 사이로 변해갔다. 그런 류의 인생 대부분이 그렇듯 고등학교를 겨우 마치자마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나날이 시작됐다. 그래도 그것은 내가 나를 파괴한 권리로 기능해 이어진 책임으로써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내가 죽인 그 ‘인격체’는 엄마의 당시 애인이었다. 엄마가 음식점에서 나와 내 전 여자 친구를 봤던 날 나는 그 애인을 몰래 훔쳐봤다.


그날 “어머. 형수랑 형수 여자 친구구나?”라는 엄마의 물음에 내 여자 친구는 상냥하게 “안녕하세요”라고 웃었다. 나는 그저 “네”라고 대꾸했다. 엄마는 그때까진 내 앞에 혼자 있었고 막 음식점에서 계산하고 나가던 참이었다.


그 직후 어떤 이유인지 나는 여자 친구에게 핑계를 대고 가야 할 곳이 있다며 따로 길을 나섰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이 이유야말로 정말 그냥이었다.


그렇게 엄마 뒤를 밟았더니 엄마는 낯선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의 얼굴과 엄마와 나란히 걸어가는 뒤통수를 보는 순간 나는 그 남자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그것은 또 하나의 내가 가진 파괴 주권이라고 나는 믿었다.


이후 실행에 옮겼다. 수사 후 수감까지 “도대체 살해 동기가 뭐냐”라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지만 나는 그때마다 “그냥요”라고 답했다.


엄마가 자신과 그 남자의 관계를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엄마도 말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나도 물론 일말의 얘기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냥요는 진짜 그렇게 그냥요가 되었다.


아무 관계없는 중년 남성을 묻지마 살인한 것이 사회가 정의한 나의 죄였다.


조서에 남은 ‘그냥요’ 세 글자는 그렇게 나만 아는 진공이 되었다. 이후 엄마는 면회를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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