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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Dec 03. 2019

(초단편소설) 디스플레이 연구원 김중원의 뿌리

종이신문 구독률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이쯤 되면 의미 없는 수치라는 걸 누구나 알았다. “신문 봤다”라는 말 앞에는 그것이 ‘종이신문’인지 그저 ‘신문’인지 붙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종이신문은 말 그대로 종이신문이었고 신문은 말 그대로 그것을 제외한 모든 매체로 통칭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를 감싸는 건 디스플레이였다. 데이터를 화면에 출력하는 이 장치는 현대 개인의 한 시각이자 인식이고 사고였다.


기존 티브이 뉴스 시청률도 연신 추락했다. 그런데도 말의 향연은 높아져서 이 경제 불평등의 시대에도 정보 비대칭성은 그나마 완화됐다는 호평이 나왔다.


유튜브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종이신문과 티브이 뉴스를 떠난 이들을 사로잡아 화면 앞으로 호출했다고 평론가들은 칭송했다. 말마따나 또 다른 말 잔치를 까는 좌판이었고 매문이었다. 들끓는 디스플레이 속 언어들은 결국 여론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각개의 뇌들에 언어인 척 전송됐다.


현대 기술의 총아인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도 이제는 맨눈으로 전방과 백미러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운전자는 내비게이션이라는 또 다른 디스플레이 안쪽 세상을 곁다리처럼 보고 달렸다. 눈앞 도로를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스테이지를 통과하듯 현실을 내비게이션 안쪽 길과 맞춰나갔다. 이것이 지금의 자동차 운전이었다.


후방 카메라는 이미 선택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았는데 그 역시 디스플레이가 내보여준 영상으로 작동했다. 인간 운전자는 앞도 뒤도 전부 디스플레이를 통해 보는 ‘디스플레이 맨’으로 빠르게 변했다. 그들 모두 전후좌우 감각을 더듬이가 부러지는 것처럼 잃어갔다.


한국 굴지의 디스플레이 대기업에 다니는 김중원은 이런 상황을 정확히 목도하고 인지했다. 그의 나의 이제 막 마흔 중반을 넘기고 스마트폰이라는 기계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디스플레이는 단순히 ‘전자 화면’ 정도로 지칭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그것은 이 산업이 나날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징표라고 김중원은 정의했다.


바야흐로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온 어느 날 김중원은 불현듯 이 생각이 들어 환호했다. 경제 상승 하락 곡선에서 산업이 급변하는 수십년 만의 찬스가 자기에게도 찾아온 것이라며 대학 시절 디스플레이 전공을 선택한 스스로에게 김중원은 경의를 표했다.


디스플레이 백과사전을 자랑하는 굴지의 대기업 연구원이자 자신을 이 시대 엘리트로 정의한 김중원은 신문과 여론과 맨눈과 사고까지 감싸버린 디스플레이 세상으로의 관문 앞에서 끝내 개인을 맨 앞에 두었다. 김중원이 보기에 그것은 만국 공통 또 다른 신체 더듬이를 창조하는 조물주의 신화창조 역할이었다.


그런 김중원에게 중국행은 필연이었다. 그는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제외한 수많은 선택지 중 중국을 택했다. 이미 받는 억대 연봉에 곱절 곱하기 곱절을 주겠다는 헤드헌터의 제안이 은밀하게 들어온 후였다. 김중원이 그 헤드헌터한테서 택한 중국 회사 연봉 계약서에는 ‘제이슨 리처드’라는 이름이 올라 있었다.


인재 이탈을 막기 위해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마다 퇴사 이후 이직 금지를 계약 조항으로 걸고 있었지만 영어 이름으로 바꾸고 신분을 위장하는 것까지 잡아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제이슨 리처드는 ‘제이슨’이라는 흔한 영어 이름에 한국의 또 다른 흔한 성씨 ‘이’를 더해 헤드헌터가 작명해준 이름이었다. 김중원은 갓 만든 영어 사인으로 이 계약서에 서명하고 당장 짐을 꾸렸다.


“사람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남의 돈 뺏는 것도 아니고, 사기 치는 것도 아니고, 불법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나라 파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김중원은 헤드헌터가 첫 대면에서 멈칫하던 자신에게 했던 말을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며 생각했다.


김중원은 ‘제이슨 리처드’로 태어났으므로 회사가 정한 전직 금지 조항도 비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법과 편법은 지구와 명왕성만큼이나 아득했고 그것은 평면 디스플레이로 얼마든 포장해 차려낼 수 있는 화면 속 객체에 불과했다.


김중원과 마주한 50대 중반이라는 헤드헌터의 명함 이름은 ‘데니스 파크’였다. 여기서 파크는 ‘김 이 박’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다수 성씨 순서 중 끝이었는데 데니스 파크 또한 몇 년 전 중국행을 택한 또 다른 김중원의 선배쯤이었다.


“국가냐 개인이냐를 따지는 것은 정치고 경제에는 국경이 없죠. 먹고사는 건 숭고해요. 세계 대전이 왜 났어요? 다 경제 때문 아닙니까. 나라가 국민을 지켜주는 시대는 끝났어요. 시민 시대죠. 시민을 봐야죠. 시민을.”


제이슨 리처드의 서명이 담긴 서류 뭉치를 들며 데니스 파크가 말했다. 끝을 늘이며 강조하는 게 꼭 연사 같았다. 서류는 제이슨 리처드가 택한 중국 회사의 인사 담당자인 ‘한나 초이’한테 갈 것이었다.


한나 초이에서 ‘초이’는 한국에서 통상 부르는 ‘김 이 박’에 한 음절을 더한 ‘최’를 뜻했다. 최한나는 일찌감치 중국으로 건너간 또 다른 김중원의 원시 조상이었다.


한나 초이는 데니스 파크를 낳았고 데니스 파크는 제이슨 리처드를 입양했다. 이들은 영미식 이름으로 중국에 사는 것만큼이나 글로벌 경계인으로 뿌리내렸다. 이제 막 제이슨 리처드의 자녀들은 제시카 리처드가 되거나 알렉스 리처드가 될 참이었다.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가.’


이런 질문은 너무나 고리타분한 것이어서 ‘시민 시대’에 ‘조국’이란 질문의 전제 조건 단어조차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바야흐로 지구가 하나로 뭉쳤다는 지구촌 시대란 말도 아득한 시대였다. 일부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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