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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Sep 29. 2019

(초단편소설)핫플 엔터테인먼트

걸어오는 아주머니의 통화소리가 제법 컸다.


“다 그렇잖아. 같이 사는 며느리는 맨날 밉고 어쩌다가 와서 용돈 주는 며느리는 볼 때마다 예쁘고.”


자기가 ‘같이 사는 며느리’라는 걸 누구나 알 정도였다. 그렇지만 아주머니의 복장은 전혀 밉지 않았다. ‘며느리’라는 말만 안 들었으면 아주머니라고 칭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와인 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딱 달라붙는 레깅스 패션으로 마무리했다. 날씬한 몸매는 지금도 뭇 남자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다.


경호가 일 하는 주변 동네는 그런 곳이었다. 배부른 신문들에선 ‘핫 플레이스’라고 구태여 영어를 써가며 대한민국 안에 또 다른 세상인 것처럼 이곳을 묘사했다.


“뭐해요? 빨리 가요.”


경호가 아주머니에 집중했던 찰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현실을 직시했다. 선우였다. 경호는 이 바닥에서 ‘B급 이상’이라고 평가받는 3년 차 여배우 선우의 매니저로 이제 막 동행한 지 2년째를 넘겼다. 경호가 ‘핫플 엔터테인먼트’ 입사 6년을 넘긴 해이기도 했다.


“회사 들어오는 대로 대표님이 오래요.”


선우가 자동차 뒷자리에 막 올라타자마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선우의 손에선 스마트폰 화면이 휙휙 넘어가고 있었다. 경호는 시동을 걸며 짧게 “응”이라고 대꾸했다.


“근데 대표님이 저 다음엔 바로 오빠 들어오래요.”


선우의 그 말에도 경호는 알았다고 짧게만 답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경호는 의아했다. 그렇지만 선우가 무슨 말을 하든 적당히 대꾸하고 사적인 얘기는 피해야 했다. 그것이 경호가 선우를 맡은 날 핫플 엔터테인먼트 박우현이 내린 지시였다.


박우현의 말은 회사에선 곧 법이었고 이 바닥에선 곧 밥줄이었다. 더 나은 처우를 위해 핫플 엔터테인먼트를 떠나더라도 경호에게 따라다닐 박우현의 입김은 족쇄였다.


이 바닥을 떠나지 않는 이상 박우현의 영향력은 늘 경호의 밥그릇에 미칠 것이었다. 이제 곧 나이 마흔이 된 경호에게 그것은 넘을 수 없는 천장이었다. 아예 타협조차 대거리할 것이 못 되었다. 경호는 이 바닥 생리가 그런 것이라고 눈치껏 정의하고 따랐다.


“양손 들어주시고 소지품은 이쪽에 다 주세요.”


대표실 앞에서 ‘삐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치 공항에서나 있을 법한 몸수색이 들어왔다. 그것은 박우현 사무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거쳐야 할 절차였다.


아무도 그 불편함과 유난스러움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유는 뻔했다. 혹시 모를 녹음이나 어떤 음성적인 도구가 대표실에 작용할 여지를 박우현이 원천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미 대표실 안에 있는 선우도 마찬가지 상황을 겪고 들어갔을 것이었다.


경호가 막 ‘무사통과’ 사인을 받은 순간 복도 끝에서 선우가 걸어 나왔다. 대표실에서 박우현이 내선으로 안에 있던 사람이 나갈 것이란 사인을 보냈을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박우현과 누군가의 만남이 끝나면 곧장 대기하던 다음 사람이 들어가는 식이었다.


“돈을 버는 건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고 시간은 유한하다. 그래서 사람은 믿을 수 없고 시간과 돈은 믿을 수 있다”라고 박우현은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오빠. 신발 좀 하나 사요. 꼬질꼬질해. 아휴.”


선우가 경호 앞을 스치면서 말했다. 매번 공적으로 답하는 경호에게 오늘따라 선우는 평소와 달리 웃으면서 얘기했다. 몸수색과 대표실 사이에 있는 약 칠 미터 정도의 거리에서였다.


경호도 머쓱한 웃음으로 “응”이라고 짧게 답했다. 선우 말처럼 경호가 보기에도 매니저랍시고 맨날 신고 다니는 신발이 유난히 낡고 해진 것처럼 보이긴 했다.


대표실에서의 얘기는 생각보다 일상적이었다. 늘 중언부언 서두를 늘어놓는 게 박우현의 습관이었다.


경호는 대표실 한가운데에 있는 탁자를 두고 박우현과 마주 앉았다. 십오 분 여가 흘렀을 때 경호는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남이 듣는지 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생일대의 모험담과 불굴의 의지 같은 걸 반복해서 늘어놓는 게 박우현의 습관이었다.


경호는 맨 마지막에 나올 한 문장 수준의 본론을 듣기 위한 또 하나의 ‘정신 수색’을 그렇게 견뎠다.


경호는 박우현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그의 인중을 쳐다보기도 하면서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침묵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건 박우현을 만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몸수색 다음의 절차였다.


어느 순간 경호는 선우가 지적한 자신의 신발로 시선을 내리 깔았는데 무엇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이는 걸 봤다.

경호가 들킬까 싶어 곧바로 박우현을 쳐다보니 여전히 그는 심판에게 항의하는 축구선수처럼 침을 튀겨 말하고 있었다.


호는 다시 아래로 시선을 흘겼다. 자세히 보니 반짝이는 물체는 USB였다. 심지어 USB 크기는 다른 USB보다 눈에 띄게 작았다.


‘신발 좀 하나 사요. 꼬질꼬질해.’


경호는 선우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경호는 신발에서 오른발을 빼 발가락 사이로 그것을 괴었다. 그리곤 재빨리 신발을 다시 신었다. 왜 그래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것을 박우현 몰래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선우가 신발 얘기를 한 것이 왜 그 시점에서 생각이 난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선우가 두고 간 것인가. 경호는 그런 추측들에 막 빠져들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첫 질문이었다. 박우현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글거리는 두 눈은 경호를 향했다. 하마터면 경호는 놀란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낼 뻔했다.


‘이런 신발. 진짜로 신발 보다가 무슨 질문인지 놓쳤네.’


하지만 박우현 앞에서 경호에게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여유는 없었다.


“네 대표님.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되게 해야죠. 되게 해 보고 안 되면 또 훌륭하신 대표님이 지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때 되면 또 그렇게 부딪혀 보겠습니다.”


경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순발력이었다. 박우현은 흡족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 정석대로 가자고. 그게 우리한텐 정석이지. 알았어. 나가봐.”


복도를 걸어 나오는 내내 경호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불안했다. 얼음이 차가워서 빨리 다른 쪽 발을 내디뎌야 할 것 같았다. 행여 얼음 위에서 미끄덩거리며 넘어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밖으로 나온 경호는 신발에서 발을 때 USB를 안쪽 주머니에 챙겼다.


그날 경호는 퇴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불친절하게 숫자 1부터 3까지 단순하게 적혀있는 전체 4기가 남짓 동영상 파일이 세 개 들어있었다.


경호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딸깍이는 마우스 소리가 괜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처럼 크게 느껴졌다.


영상을 틀자 희미했던 예측이 사실로 밝아졌다. 어둠에 있어야 할 것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 영상 모두 누가 보더라도 식별 가능한 박우현 대표가 나체로 나왔다. 박우현과 가학적인 학대에 가까운 성적 관계를 맺는 상대는 애석하게도 핫플 엔터테인먼트 최고 배우이자 대한민국이 알아주는 여배우였다. 선우가 이 바닥 ‘B급 이상’으로 평가받는다면 영상 속 배우는 ‘A급 이상’이었다.


경호 생각에 이런 영상이 알려지면 온 신문과 방송에 도배가 되고 인터넷 바다를 급속도로 오염시키는 ‘난파 원유선’의 원유가 되고도 남았다.


‘3번 영상’이 끝났을 때 경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경호는 화들짝 놀랐다.


“보셨죠?”


목소리만 듣고도 대번에 알았다. 일부러 모르는 번호로 걸어왔지만 선우였다.


경호는 가까스로 침착함을 유지했다.


“이거 나한테 준 거지? 신발 얘기도 그래서 한 거고. 이걸 나한테 왜? 아니 그전에 가지고 있던 거면 그냥 줘도 됐을 텐데 왜 구태여 대표실에서.”


경호는 서른 초반 차렸던 가게가 쫄딱 망해 사채업자 전화를 받던 시절처럼 기계적인 냉정함을 유지했다.


“아 진짜. 가지고 있던 거면 그렇게 줬겠어요? 따로 밖에서 줬겠지. 대표실에 있던 거니까 아까 거기서 잽싸게 탁자 밑으로 옮겨 놓은 거예요. 마침 오빠가 저 다음에 들어간다니까 그랬지.”


선우의 목소리가 발신인 불분명 번호와 다르게 높아졌다. 왜 자신한테 줬느냐는 물음에 답하지 않은 것만 빼고는 틀린 것 하나 없는 대꾸였다.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선우의 물음에 경호는 머뭇거렸다.


“복사를 하든 말든 그건 알아서 하시고요. 일단 제 숙소로 오셔서 주세요. 야식거리 사서 봉투 안에 같이 넣어 주면 되잖아요. 자주 있는 일이니 혹시 문제 될 것도 없고.”


또랑또랑한 논리였다. 나중에 있을 일까지 대비한 처사였다. 경호는 선우 말대로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국물떡볶이랑 어묵꼬치 따위를 샀다. 그리곤 비닐봉지 안에 USB까지 넣어 곧장 선우의 숙소 문에 걸어줬다.


그날 이후에도 경호의 일상은 이어졌다. 난파 원유선이 식수 공급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당장 내겐 문제없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한 달이 흐르고 분기를 넘겼다. 계절도 바뀌었다. 그런데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신문과 방송에 경호가 예상했던 그림이 도배되는 일은 없었다. 인터넷 바다를 물들일 난파가 예고된 원유선은 출발도 하지 않은 듯했다.


선우도 박우현도 영상 속 ‘A급 이상’ 배우도 핫플 엔터테인먼트도 일상을 부유했다. 달라진 건 딱 하나였는데 이제는 대표실에서 박우현을 만나고 나올 때도 들어갈 때처럼 몸수색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경호가 직접 겪은 것은 아니었다. 핫플 엔터테인먼트 직원들 사이에서 쉬쉬하며 떠도는 말을 주워들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경호가 박우현 대표실 근처에 갈 일은 없었고 애초부터 층수도 달랐다.


경호의 궁금증은 갈수록 커져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날의 USB는 먼저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내일부터는 선우 두고 세이 일 맡아.”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깨달은 어느 날 경호에게 박우현의 문자가 날아왔다. 경호에겐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간략한 명령이었다.


“저 내일부터 박 감독님이랑 작품 들어가요.”


동시다발처럼 차 안에서 선우의 말도 이어졌다.


박 감독은 적당한 배우를 주연급 이상으로 키우는 데 탁월한 이 바닥 거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박우현과 한동네에서 산 막역한 사이로도 유명했다. 그만큼 박 감독은 핫플 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에게 성공 급행열차로 불렸다.


집에 돌아온 경호는 서랍에 넣어둔 자신의 USB를 꺼냈다. 선우에게 반짝이는 작은 USB를 받은 날 함께 꺼냈던 것이었다. 경호는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안에는 핫플 엔터테인먼트 입사 당시 제출했던 이력서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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