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편의점 도시락은 "혜자"입니까?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잡생각

by 반동희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모른다. 아마도 이들에게 서태지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본다면 스키 장갑에 그 당시 말로 '빵모자'를 쓰고 나타나 "집으로(컴백홈)"를 외치던 목소리 가는 솔로 가수 서태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은 HOT를 알 수가 없다. 그들에게 문희준과 강타는 개별로 존재한다. 토니 안은 교복 맞추러 갔다가 사진에서나 보던 사람이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아저씨라 그러기엔 젊고 오빠라고 하기엔 모호한 그 교복 파는 사장님이 혜리랑 사귀었다는 기억부터 머리를 스칠 것이다.


생각에 꼬리를 물자면 배우 김혜자 씨에 대한 지금 10대들의 인식도 유추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태어난 이들에게 김혜자라는 이름 석 자를 던져준다면 편의점 도시락 업계에서 유명 요리사 백종원과 맞서는 인물로 생각할 것이다. '전원일기'의 김회장댁 어머니를 생각하는 10대가 있다면 그는 분명 나이를 속였거나 미래의 드라마 PD를 꿈꾸는 공부 잘하는 학생일지도 모른다.


만약 조금 편안한 장소에서 비공식적으로 같은 질문을 한다면 "혜자죠, 혜자"라는 비유적 표현이 나올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가게에서 어떠한 물건을 샀을 때 "야 그거 완전 혜자야"라고 표현을 한다면 그건 '기대 이상이다' 혹은 '값에 비해 품질이 좋다' 정도의 어른들 언어로 치환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어떠한 인물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 구성된다. 배우 김혜자 씨가 편의점 도시락 업계의 블루칩이 된 것은 시대적 변화와 이를 감지한 결과다. 어떤 과정으로 김혜자 도시락이 탄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분명 성공했다.


물질의 풍요로움과 그에 따른 자본주의의 팽창은 '편의점 문화'를 묶어냈다. 그리고 편의점 문화는 급격히 확산해 이제는 우리네 식탁까지 점령했다. 1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라는 것도 거기서 제대로 한몫했다. 점차 옆 나라 일본을 닮아가는 중이다.


사람들은 여유가 없으니 빠른 것을 찾게 된다. 그렇게 간편한 것을 찾다 보면 급격히 늘어난 편의점이 눈에 들어온다. 찾아 들어간 편의점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가격처럼 보이는 도시락이 버티고 있다. 심지어 간편하기까지 해 보인다. 거기에 외할머니 혹은 엄마 같은 사람의 사진마저 박혀있다. 그 순간 '뭐라도 먹으려면 그나마 밥을 먹는 게 낫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게 편의점 도시락은 우리네 '밥'을 차지한다. 그마저도 식탁까지 도시락을 가져갈 시간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포장지부터 뜯어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그 뒤에 한숨 좀 돌리고 나면 편의점 구석에 있는 테이블인지 뜨거운 물 나오는 보온 통을 올려놓으려다 길게 만들어서 탁자 비슷한 것이 됐는지도 모르는 곳에서 젓가락을 들 수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밥상머리에서의 대화나 요리의 즐거움이 사라진 패스트푸드다. 철저히 '먹는다'는 그 행위에만 집중한다. 중간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 경우엔 그마저도 잘려나가 '배를 채운다'는 생존적 체험만이 남는다.


편의점 도시락의 주 구매층이 취업난에 허덕이는 주머니 얇은 청춘인지, '을'이 되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하는 세일즈맨인지,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 결혼해 대출금 갚아 나가는 신혼부부인지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편의점 도시락은 있어 줘서 반갑고 고귀한 그런 상품이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그래서 길을 걷다 청소년들이 내뱉는 "야, 그거 완전 혜자야"라고 하는 말에 더욱 귀가 쫑긋해진다.


실제로 유통 업계의 각종 통계 숫자를 보면 편의점 문화의 확대가 선명해진다. 신문 보도들을 보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의 지난 20일 기준 시가 총액은 5조 3760억 원으로 1년 사이 66.5% 증가했다.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의 시가 총액은 4조 1888억 원으로 1년 사이 33.7% 상승했다. 특히 올해 1분기 BGF리테일과 GS리테일은 각각 283개와 약 300개 순증을 달성하며 빠른 속도로 점포망을 넓혔다. 세븐일레븐도 133개나 더 생겼다고 한다. 이와 맞물려 2000년도에 226만 가구였던 1인 가구 수는 지난해 506만 가구로 2배 가까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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