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사이사이 하나씩 균열이 간다. 그 사이로 흙먼지가 들이닥친다. 쓸리고 갈리고 풍화한다. 그렇게 벽돌이 무너진다. 하나가 내려앉으면 그다음부턴 쉽다. 마치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떨어진다. 결국 벽이 내려앉는다. 황폐해진 공간으로 더 강한 비바람이 들어찬다.
요즘 내 모습이 이렇다. 삶이 나를 속이는 것 같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내려앉은 기분이다. 가지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바보 같은 내가 못 봤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극한 고통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아가는 기분이다.
사실 첫 실금이 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조심했어야 했다. 균열은 그렇게 소리 없이 왔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끝내 헐거움이 몰려오는 도미노를 온몸으로 맞았다. 심지어 내가 최초의 무엇을 잃었을 때 그것이 가져올 수도 있는 '연쇄효과'를 전혀 상상조차 못했다. 하나의 벽돌이 깨지면서 생긴 틈으로 온갖 흙먼지가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아예 몰랐다. 그렇게 첫 번째 벽돌이 깨지자 또 다른 벽돌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거대한 벽이 무너지면서 내 삶은 엉망이 됐다. 이후 극심한 추위가 따라왔다.
무너진 것을 무너지지 않았다고 외면한 채 시간도 흘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무너진 것을 무너졌다고 인정하는 것부터가 다시 벽돌을 쌓기 위한 시작이다. 사실 쓰러진 벽돌 더미를 쳐다보는 게 여전히 쉽진 않다. 매우 고통스럽다. 온갖 후회가 더 크게 밀려온다. 그러나 그것부터 인정하고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내가 살며 쌓아온 벽돌들이 무너졌구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쳐다보는 것이 첫째다. 그래야 다시 이것들을 쌓아 올리지 않으면 더 많은 비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런 생각의 뼈대를 갖고 난 지금 쳐다보고 있다. 무너진 것과 무너져서 깨진 것과 무너져서 깨지고 돌가루가 된 벽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사실 아주 어쩌면 아직은 그냥 그런 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은 달라졌다고 믿는다. 중요한 건 계속 그 이탈한 벽돌들을 들여다보려 한다는 점이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벽돌들을 보면 쌓아온 방식부터 쌓은 순간들이 모두 부정되는 기분이다. 그것들을 쌓아 올리던 때의 추억과 노력이 단번에 몰락이라는 단어에 갇힌다. 그런데도 도무지 이 현실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 역시 더욱 선명해진다.
어쩌면 삶은 내게 다시 이 벽돌을 쌓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다만 그저 '언제 쌓을 것인가'만 질문하고 있다. 이 잔인함과 비극 앞에 어떻게 다시 희극을 덧입힐지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다.
가을바람이 남들보다 더 차갑게 느껴진다. 다시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이어폰을 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