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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장애인 단체를 찾는 당신에게

[자보] 고대문화 편집위원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지난해 12월 6일부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시작했다. 많은 언론은 이 시위를 ‘이동권 시위’로만 보도하였고, 현재까지도 대부분 장애인의 이동권을 두고서만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장연의 요구사항은 이동권 보장만이 아니다. 전장연은 그때도, 지금도 탈시설지원법안, 장애인권리보장법안,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의 제정을 통한 권리 예산 확보를 외치고 있다.


이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몇몇 이들은 왜 이동권과 관련 없는 사항까지 지하철에서 ‘일반 시민을 볼모로 잡으면서’ 주장하느냐며 혐오를 선동했다. ‘일반 시민’에서 장애인을 분리하는 주장을 펼쳤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언제 혐오를 했느냐며 잡아뗐다. 해당 발언이 혐오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은 덮어두더라도, 현재 장애인이 ‘일반 시민’의 범주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그도 모르게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이 대표는 탈시설을 반대하는 다른 장애인단체와 전장연을 갈라치는 행태를 보였고,[1] 일각에서는 전장연이 그들이 요구하는 예산을 유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전장연이 ‘순수한’ 장애인 단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철로를 점거하거나 자신의 몸을 버스에 쇠사슬로 묶으며 20년 넘게 투쟁해온 것을 빤히 알면서도 왜 ‘윤석열이 당선되자 시위를 시작하느냐’며 프레임을 씌우고, 과거 전장연이 이석기 석방 대회나 한미연합훈련 반대 시위에 연대했던 것을 들먹이는 식이다. 심지어 이 대표가 전장연 활동가들의 가족 관계를 근거로 특정 정당과의 커넥션이 있을 거라는 암시를 하자, 지지자들은 이를 근거로 전장연의 ‘검은 속내’를 파헤치려는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전장연은 ‘순수한’ 단체를 자임한 적이 없다. 전장연은 ‘좌파’ 단체가 맞다. 그들은 ‘진보적’ 장애인 운동단체임을 자임하고 있고, 대놓고 “투쟁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와 같은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장애인 단체가 수백 개 존재하며 (이준석 대표가 좋아하는) 법정단체만 해도 5개가 있지만, 전장연은 너무 ‘급진적’이라서 법정단체로 인정받지조차 못한 단체이다. 전장연은 비장애인들의 시혜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함을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장애를 만들어내는지에 주목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뒤집어야 비로소 장애해방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전장연이다. 현재의 신자유주의-능력주의-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장애인은 언제나 ‘비정상’으로밖에 남을 수 없다. 따라서 전장연은 장애인 문제만을 말하지 않는다. 전장연은 체제 전환을 위해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배제하는 모든 ‘비정상’들과 연대하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경계의 해체는 순수하거나 조용하거나 무해한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는 긴 세월동안 투쟁하며 조용하고 무해한 방식으로도 설득을 시도해봤던 전장연 활동가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박탈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이들이 가장 먼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지금의 체제 안에서 ‘무능’하다는 이름표가 붙은 채 살아가는 존재들은 삶 자체가 ‘민폐’로 점철된다. 그저 살아가는 것도 민폐, 투쟁을 하는 것도 민폐라면 투쟁해서 권리를 쟁취하는 편이 낫다. “죽을지언정 잊히지는 않는”[2] 편이 더 낫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전장연 공동상임대표 박경석이 24년간 교장으로 있었던 노들장애인야학(野學) 홈페이지 인사말에 적힌, 멕시코의 어느 원주민 여성이 남긴 말이다. 우리가 전장연의 투쟁에 연대해야 하는 것은 ‘우리도 언젠가 장애인이 될 수 있어서’만이 아니라, 이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능력주의-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훌륭한 비판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우리가 겪을 문제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해방이 이들의 해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촘촘한 연결을 직시하며, 우리의 해방을 위해 전장연의 투쟁에 함께 하자. ‘순수하지 않은’ 이들의 연대로 다른 체제를 가능케 하자.


고대문화 편집위원회

 

* 본 자보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인 4월 20일을 기념하여 고려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와 함께 주최한 대자보전에 고대문화 편집위원회의 이름으로 부착한 대자보입니다.



[1] 탈시설은 장애인도 시민이라면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24시간 활동보조지원은 물론 거주·이동·교육·노동 등에 있어 어려움이 없도록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그런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도 없이, 평생토록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도 않았던 시설 거주 장애인에게 ‘시설 밖에서 살고 싶은지 아닌지’를 묻는 것은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시설에 머물고 싶다고 응답한 장애인들이 더 많았다는 결과를 진심으로 믿는 것은 더더욱 무책임한 일이다. 더 자세한 논의는 이번 《고대문화》 봄호 42-44쪽을 참고하라.

[2] 고한솔 (2022.04.13.). “장애인이 지하철 타는 게 문제? 자연스러울 때까지 계속 타야죠”.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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