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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 편집장 상민

마감을 앞두고서 으레 그러듯, 노트북 하드를 뒤지며 추억팔이를 하다 저의 고대문화 지원서 파일을 발견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 파일을 열어 읽어보니 뭐가 그리도 화가 나 있는지 조잘조잘 말도 많더군요. 사실 제가 고대문화에 처음 들어왔던 것은 뭐라도 쓰지 않으면 속이 답답해 터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나에겐 상식인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상식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했고, 그로 인해 고통받고 죽는 존재들을 보는 것이 너무 슬펐습니다. 그러한 분노와 슬픔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기에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도 늘어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옳음이 보편적인 옳음이 되는”[1]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고,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점차 늘어갔습니다. 지난 봄호를 쓸 때는 미얀마였고, 이번 봄호를 쓸 때는 우크라이나였습니다. 지난 여름호에서 차별금지법 빨리 만들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이어지던 단식농성이 46일차를 끝으로 중단된 지금까지도 국회는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가을호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 종사 노동자에게,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하라고, 중대재해처벌법 똑바로 다시 만들어놓으라고 글을 길게도 썼건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죽고 있고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악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중앙대 서울캠 성평위 폐지를 규탄하며 학생 자치의 역할을 말했던 겨울호 인쇄가 들어갔을 무렵 현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이 나왔습니다. 도대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그 과정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동력 역시 열정보다는 관성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주제로 된 글의 개요를 봐도 이 글이 분량이 얼마나 나올지, 마지막 회의 전까지 완성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특집 주제 선정의 가장 큰 기준은 시의적절성도 아니고 그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아닌 완성된 세 편의 글이 나올 수 있을 만한 소재인가입니다. 새로운 성원들이 내놓는 신선한 제안에도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안 될 거라고 퇴짜 놓기에 바쁩니다. 기계적으로 개요를 짜고, 참고문헌을 찾아 읽고, 각주를 달고, 분량을 채우고,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고, 교열을 봅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이 나오기도 전에, 다음 특집 주제는 또 뭘로 해야 고생을 덜 할지를 고민합니다.


매너리즘과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자는 편집후기를 매번 적어왔건만, ‘오히려좋아’와 ‘가보자고’만으로 극복되지 않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읽는 사람도 몇 없는 글 때문에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느니 거리에 나가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거나 철야농성과 동조 단식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리 해봤자 바뀌지 않으니 앞으로 내 살길이나 잘 찾아보자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론/글쓰기와 실천/운동은 그렇게 무 자르듯 나뉘는 것이 아니며, 저에게도 이미 “조금이라도 알게 된 이상, 알기 전의 미봉책으로 회귀하지 않겠다는 마음”[2]이 생겨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결국 제자리입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주어진 지면이 있고,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희망을 버리고, 힘을 내봅니다.[3] 다만 더 이상 분노와 슬픔의 감정만으로 글을 쓰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분노는 언젠가는 소진되기 마련이고, 슬픔은 쉽게 다른 감정으로 덮이곤 하니까요. 큰 이상을 좇다가 좌절하거나 지쳐서 포기하기보다는, 옆에서 함께 걷는 사람들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의 손을 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미워하는 것들과 싸우는 대신,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는 방식으로 이 싸움에서 이길 겁니다.[4] 어쩌면, 전혀 사랑할 수 없었을 것 같은 것들까지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5]


포기하지 않고 이 책 한 권을 완성해낸 우리 편집위원들에게, 우리의 인용과 각주와 참고문헌이 되어준 이들에게, 아직도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있을 성소수들에게 (물론 이미 세상을 떠난 성소수들에게도!), 투쟁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투쟁이 된 모든 이에게, 고기가 되기 위해, 가죽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잘못 여겨지는 모든 생명에게, 가판대에 꽂혀 있는 낯선 책을 꺼내 들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사랑을 보냅니다. 사랑이 이깁니다. 기어코.


[1] 하은 (2020.06.). 편집후기. 고대문화 여름 140호.

[2] 현정 (2021.04.). 편집실에서. 고대문화  봄 143호.

[3]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속 ‘일순’이 ‘영군’에게 자주 하는 대사.

[4]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Star Wars: Episode VIII - The Last Jedi, 2017)  속 ‘로즈 티코’의 대사.

[5] 《석순》 57집 (2021). 139. 중앙대 서울캠 8대 성평위 〈뿌리〉 부위원장 홍윤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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