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집위원 은희
농구… 좋아하세요? 한 해가 다 끝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2023년은 나에게 공놀이로 꽉 찬 한 해였다. ‘정대만’이라는 이름 석 자만 안 상태에서 보러 간 슬X덩크 극장판은 농구 문외한이었던 내 멱살을 잡고 코트 위로 끌고 왔다. 슬X덩크를 시작으로 그 이후에도 농구, 배구, 축구 등 온갖 종목들을 보며 살았다. 미뤄둔 하X큐 4기를 챙겨보다가도 남자농구 국가대표 경기 직관을 가고, 비가 쏟아지는 날에 KBO 팝업을 보겠다고 서울숲까지 갔다. 해적왕 골드 로저의 한 마디에 세상이 대해적 시대를 맞은 것처럼, 나 역시 만화왕 이노우에의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의 대공놀시대를 맞은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지인들 역시 차원과 종목을 가리지 않고 공놀이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것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림 1] 만화 원피스 속 해적왕 골드 로저의 처형 장면. ⓒ〈원피스〉 1권
만화 원피스 속 해적왕 골드 로저의 처형 장면. 처형 직전 자신의 보물을 이 세상 어딘가에 두고 왔다는 해적왕의 말과 함께 원피스 세계는 대 해적 시대를 맞는다. 그림 설명 끝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야빠’가 된 것이다. 사실 야구에 빠지게 된 이유는 별거 없다. 야구는 흔치 않게 일주일 중 하루 빼고 전부 경기가 있는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한평생 도파민 중독자로 살아온 나에겐 야구가 주는 주기적인 콘텐츠 공급의 맛이 너무나도 달콤했다. (심지어 직관을 가면 치킨과 함께 억대 연봉 아저씨들의 개그쇼를 구경할 수 있었다) 경기를 보면서 행복할 때보다 답답한 순간이 더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정규 시즌, 아시안게임, APBC 등을 챙겨보며 제법 열심히 좋아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새로 좋아하게 되면서 생긴 변화는 예전에는 별로 관심 없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야구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그중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신인 드래프트다.
신인 드래프트는 쉽게 말해 프로 구단이 자기 팀에 들어올 아마추어 선수들을 뽑는 제도다. 학생 선수들의 대학 입시이자 취업 시장(..)이라고 표현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KBO 신인 드래프트는 10개 구단이 1라운드부터 11라운드까지 각각 한 선수씩 지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2023년 9월 14일에 이루어진 202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고교 졸업 예정자 782명, 대학교 졸업 예정자 296명, 해외 아마추어 및 프로 출신 5명 등 총 1,083명이 지원했고 그중 110명이 지명을 받았다. 신인 드래프트는 앞으로 팀을 이끌어갈 슈퍼루키를 뽑는 자리인 만큼 많은 야구팬들의 관심을 받는다. 잘 뽑은 신인 선수 한 명이 몇 년 동안 팀을 먹여 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드래프트의 실패로 인해 팀이 암흑기에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래프트가 시작하기 1~2주일 전부터 인터넷에서는 지명 순서를 예상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오며, 구단 프런트들과 관련된 온갖 찌라시들이 돌아다닌다. 드래프트 당일에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는 제일 먼저 뽑힌 전체 1번 선수를 향한다. 선수 주변을 가득 메운 마이크들은 새로운 스포츠 스타의 탄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명이 끝난 뒤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는 학생들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중계를 통해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프로 구단에 지명받지 못한 선수들은 어디로 갔을까?
드래프트에서 떨어진 선수들의 상황을 상상해 보자. 대학 야구팀이나 독립야구단에 들어가 운동을 계속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프로팀의 육성 선수로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결국 이들에게는 야구를 그만둔 뒤에 무얼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드래프트 탈락만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선수는 ‘운동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 이유는 갑자기 찾아온 부상 때문일 수도, 기대에 못 미치는 대회 성적 때문일 수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일 수도, 그것도 아니면 프로에 입단했다가 방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의 상황은 구체적인 통계로 드러난다. 전국에서 10,000명의 학생이 중학교 1학년 때 운동을 시작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중 대학교 진학에 성공하는 학생 선수는 몇이나 될까? 학생 선수 중 절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운동을 그만두며,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도 평균적으로 약 24%의 학생들이 운동을 중단한다고 한다. 이후 고등학교 3학년 때 운동 중단 비율은 44.4%까지 상승하며, 대학 진학 후에도 1학년 때 37.5%, 2학년 때 44.9%의 학생들이 운동을 중단한다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김상범, 김종성(2015)에 따르면, 이러한 중단 비율을 바탕으로, 이후 학생 선수가 추가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10,000명이 중학교 1학년 때 운동을 시작하여 대학 진학에 성공하는 학생 수는 약 750명(7.5%), 대학교 3학년까지 운동하는 학생 선수는 약 250명(2.5%)밖에 되지 않는다.[1]
운동선수로서의 삶을 포기한 뒤에도 삶은 계속되기에 운동을 중단한 선수들은 그 이후의 인생을 새롭게 그려나가야 한다. 하지만 한평생 운동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선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좋은 대학교에 입학해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생이라고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학생 선수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은 극히 제한적이며, 운동과 관련 없는 직업을 얻기에는 학력과 경력 부족이 문제다. 고등학교 비우수 학생 선수들은 앞으로 다가올 스포츠 탈퇴(drop out)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이에 대비할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상태라는 연구 결과마저 존재한다.[2]
이는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대한체육회의 ‘국내 은퇴선수 현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최근 5년 동안 47,046명이 평균나이 23.6세에 운동선수 생활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은퇴 선수들의 취업 현황이다. 은퇴 선수들의 스포츠 관련 업종 취직이 29.8%이었던 반면 41.9%의 선수들은 무직 상태였다.[3] 같은 해 청년 실업률이 6.4%였던 것을 생각하면,[4] 심각성은 두드러진다. 심지어 취업한 이들 중 64.6%는 비정규직 상태였으며 월수입이 2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경우도 절반이나 되었다.[5]
운동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초년생에 해당하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경험하고, 은퇴 이후에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에 빠진다. 은퇴 선수들이 이처럼 고용 불안을 겪는 원인은 어릴 때부터 계속된 기초 학력의 부족에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엘리트 스포츠의 국가주도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국가 주도적인 스포츠 인재 육성이 자리 잡은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 전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6.25 전쟁까지 당시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한국의 스포츠는 민간 기관인 조선 체육관과 한국 체육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32년 LA 올림픽 권투 국가대표 출신인 황을수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역도, 레슬링, 권투 등 각 종목의 스포츠 지도자들과 조선체육관을 건립하였으며, 조선체육관은 국가 지원 없이도 메달리스트를 비롯하여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냈다.[6] 6.25 전쟁으로 인해 건립자인 황을수가 납북당하고 많은 지도자가 실종되는 등의 어려움도 있었으나,[7]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전까지 매 대회 전체 국가대표 선수 중 약 8%가 조선체육관 출신이었을 만큼 성공적인 재건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당시 한국 스포츠가 국가의 지원 없이 민간 주도로 일정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었음을 나타낸다.[9] 그러나, 이후 박정희 정권의 등장으로 한국은 민간이 아닌 국가 주도의 스포츠 인재 육성의 길을 걷게 된다.
사실 스포츠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빈번히 이용돼 왔다. 오히려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스포츠 자체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5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당장 아돌프 히틀러 역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자리로 활용했다.[10] 베를린 올림픽에서 처음 등장한 성화 봉송은 히틀러에게 ‘평화를 사랑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안겨 주었으며, 역사상 최초로 TV를 통해 올림픽 경기를 중계함으로써 독일의 우수한 기술력과 게르만족의 뛰어난 신체 능력을 과시했다. 나치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베를린 올림픽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Olympia, 1938)는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독일 국민들이 게르만 민족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11] 스포츠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진부하다 못해 당연한 일이었고, 박정희 정권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박정희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근대화’와 ‘경제 발전’, ‘반공’ 등을 노골적으로 내세웠는데, 스포츠 역시 이 정치 슬로건들의 대상이 되었다.[12] 1961년 만들어진 ‘재건체조’[13]는 이러한 박정희 정부의 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재건체조의 제작 경위에는 “체조가 국민의 통합과 일체감을 형성하는데 유효하다는 판단하에 문교부로부터 대한체육회를 통하여 재건체조의 제작을 의뢰받았습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14]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은 타이밍에, 같은 동작을 하도록 하여 국민들의 신체를 통제하고자 한 것이다. 재건체조는 이후 1968년 ‘신세기체조’, 1977년 ‘국민체조’로까지 이어지며 박정희 정권의 유용한 국민 통제 수단이 되었다.[15]
[그림 2] 박정희 대통령은 ‘체력은 국력’을 주요 정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스포츠서울, 출처: https://www.sportsseoul.com/news/read/324612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사진 밑에는 “체력은 국력이라고 합니다. 나는 오늘 이 대회의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로도 튼튼’이라는 구호는 대단히 훌륭한 구호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 내용이 적혀 있다. 그림 설명 끝.
[그림 3] 1976년 한국 역사상 첫 금메달리스트였던 양정모 선수가 몬트리올 올림픽이 끝난 뒤 귀국해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주간스포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 끝난 뒤 한국 역사상 첫 금메달리스트였던 양정모 레슬링 선수와 그의 코치인 정동구 선수가 퍼레이드 카에 탑승해 거리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둘의 목에는 꽃 목걸이가 걸려 있고, 오픈카에 탑승한 채 손을 흔들고 있다. 그림 설명 끝.
또한, 박정희 정권은 스포츠를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정권이 내세웠던 ‘반공’이라는 정치적 슬로건과도 연결된다. 박 대통령은 전국체전 연설문 등에서 ‘화랑’[16]을 빈번하게 사용하였는데, 화랑은 전국체전 연설문에서 1964년, 1966년, 1971년, 1972년, 1978년까지 총 5차례에 걸쳐서 등장하였다.[17] 박 대통령은 화랑을 체육과 연결시킴으로써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국민들에게 주입하고자 하였다. 국가를 향한 헌신은 곧 체육인들에게 하나의 ‘미덕’이었다.
“우리 겨레는 옛날부터 무예에 의한 체력 단련의 역사적 전통을 계속하여 왔으며 외세의 침략에 대해서는 국민체력의 과시로써 줄기찬 항거의 발자취를 남겼던 일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땅의 슬기로운 젊은이들의 귀감이었던 「화랑정신」이 그것이며 백림[18] 하늘 아래 울려 퍼졌던 한국건아의 드높은 기개가 바로 그것입니다(대통령기록관, n.d.).”[19]
“최근 ‘라만컵 쟁탈 축구전’과 ‘제2회 아시아 아마추어 권투대회’ 등의 국제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미덥고 자랑스런 승리의 개가를 올림으로써 중외에 국위를 떨쳤던 것은,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향상되었음을 말해주는 명백한 증좌인 동시에, 체육 한국의 앞날에 밝은 전망을 던져 주는 경사라 하겠습니다(대통령기록관, n.d.).”[20]
그러나 사실 이보다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바로 국가 주도의 스포츠 인재 육성 및 선전이었다. 국민체육에 비해 가시적으로 성과를 보여주기에도 좋았으며, 압축적인 투자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는 정권의 정당성을 지키고 국민들의 반감을 줄이기 위해 국제 무대에서도 밀리지 않을 운동선수들을 ‘만들어 냈다’. 각 학교에서 선발된 예체능 특기생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국가적 사명’ 아래 엘리트 스포츠 선수로 길러졌다. 국가의 명예를 드높일 수만 있다면 학생 선수의 학업 저하나 교실에서의 고립 정도는 싸게 먹히는 편이었다. 고작 20대 청년들이 따오는 메달에 따라 정권의 정당성이 생사를 넘나들어야 한다면, 유감스럽지만 그냥 옷 벗고 내려오는 것이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은 그 시절 정치인들에게는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길러진 학생 선수들은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 및 국민통합 실현’을 위해 지어진(놀랍게도 이게 태릉선수촌의 공식적인 설립 목적이다)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국가적 자원을 갈아 넣어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낸 선수들에게는 ‘국위선양’이라는 말이 따라붙었고, 이것은 곧 ‘국력의 신장’을 의미하는 증거로 활용되었다.[21] 국가의 명예라고 쓰고 몇몇 인간들의 정권유지와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의 승리라고 읽음를 높인다는 명분 속에서 선수들은 학업과 학교생활을 포기한 채 ‘그들끼리 경쟁’할 것을 강요받았고, 선수들이 국가적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데에서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국위선양을 위해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압박은 최근 들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주도의 엘리트 스포츠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업이나 일반 학생들과의 교류는 학생 선수들에게 ‘사치’로 여겨진다. 모든 것을 투자하여 운동선수로서 성공하는 것이 ‘가성비 좋은’ 방법이라고 불리지만,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선수 개인이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 내야만 한다.
“엘리트 스포츠 정책의 국가 주도성이란, 국가가 스포츠 정책을 주도한 만큼 선수들의 인권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책무성이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선수 및 지도자들에게 국가가 유인가(incentive)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포츠 정책에 따른 운동선수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국가가 책임져야 함이 마땅하다(조남용⋅이영국, 2013: 151).”[22]
2000년 5월,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국가대표 장희진 선수가 기말고사를 위해 태릉선수촌 입촌을 거부했다가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하고 연맹에서 제명까지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장희진 선수는 올림픽 개막식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고, 태릉선수촌에서 모든 훈련에 참여할 테니 1학기 기말고사 때까지만이라도 학교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23] 상식 밖의 일이다. 이러한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어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는 있었으나 장희진 선수의 사례는 학업 포기를 강요받던 당시 학생 선수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았다.
장희진 선수의 국가대표 제명 사건을 계기로 국내 엘리트 스포츠계의 성적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2001년, '공부하는 학생 선수, 운동하는 일반 학생'을 슬로건을 내세운 체육시민연대가 출범했고, 학교체육진흥회 또한 이 모토를 공유했다.[24] 성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선수의 미래를 ‘갈아 넣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훈련 등이 이제서야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운동계의 폐쇄성을 증명하는 듯하다. 이후 기본적 인권 보호에 대한 보편적 공감대가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학생 선수의 학습권 침해에 대한 담론이 증가하였고, 이는 마침내 최저학력제의 등장을 이끌었다. 최저학력제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최저학력제는 “학생선수의 학습권 및 인권 보호를 위한 수단적 조처로서, 학생 선수의 석차 백분율에 의거 최저성적 기준을 명시하여 이에 미달하는 학생 선수에 대해 선수로서의 활동에 대해 일정 부분의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하며, 그 성적 기준은 기준 학년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상향조정되어 적용하는 행정적 조처이다”.[25] 최저학력제는 엘리트스포츠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체육진흥법」 제11조 및 시행규칙 제6조를 바탕으로 최저학력제를 규정한다. 특히, 올해 3월 24일부터는 최저학력제에 대한 개정안이 전면 시행됨에 따라, 정해진 최저학력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 선수들은 다음 학기에 ‘교육부령으로 치르는 경기대회’의 참가가 금지될 예정이다.[26]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6조(최저학력의 기준 등)
① 법 제11조제1항 및 제3항에 따른 최저학력(이하 “최저학력”이라 한다)은 매 학기 말을 기준으로 교육부장관이 정하는 5개 교과(고등학교 학생선수의 경우에는 3개 교과)의 교과별 성적이 기준성적 이상인 것을 말한다. <개정 2013. 3. 23., 2022. 7. 6.>
② 제1항에 따른 기준성적은 학생선수가 속한 학교의 해당 학년 학생 전체의 제1항에 따른 교과별 평균 성적에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비율을 곱한 성적으로 한다.
1. 초등학교: 100분의 50
2. 중학교: 100분의 40
3. 고등학교: 100분의 30
③ 법 제11조제2항 및 제3항에 따른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은 학기당 60시간 이상으로 운영하여야 한다. <개정 2022. 7. 6.>
④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의 운영에 필요한 세부 사항은 특별시ㆍ광역시ㆍ특별자치시ㆍ도 및 특별자치도의 교육감이 정한다.
[시행일: 2024. 3. 24.]
제6조의2(참가 제한 경기대회 등) ① 법 제11조제1항 본문에서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경기대회”란 학생선수가 학생선수의 자격으로 참가하는 모든 형태의 경기대회를 말한다.
② 법 제11조제1항 본문에 따라 학교의 장은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선수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기간동안 경기대회의 참가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1. 제1학기에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해당 연도 9월 1일부터 다음 연도 2월말까지
2. 제2학기에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다음 연도 3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본조신설 2022. 7. 6.]
[시행일: 2024. 3. 24.]
최저학력제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에서 찾을 수 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학습권 보장이 “학생이 말이야 공부를 해야지 어딜 백날 운동만 하면서 놀고 그러면 쓰나 떼잉 ㅉㅉ” 의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한 개인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필자는 적어도 압도적인 재능과 엄청난 양의 훈련보다는 다양한 공동체에서의 경험과 충분한 지식의 학습이 개인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학습권’ 역시 ‘본업은 운동선수지만 공부도 강남 8학군 뺨치게 잘하는 먼치킨 학생 병기’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살아갈 때 필요한 기초 상식들을 쌓기를 바라는 것이다.
운동선수로서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선수들에게는 언젠가 분명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찾아온다. 평생 운동만 하며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평생 한 우물만 파온 사람들이 아무 준비 없이 사회로 나오게 될 경우 그들은 어떻게 될까? ‘운동선수에게는 운동하는 것이 공부다’라는 말로 넘기기에는 학생 때 쌓지 못한 기초 상식이 이후에 어떤 형태로 되돌아올지 예상할 수 없다. 은퇴한 운동선수들이 사기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물론, 최저학력제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들이 따라붙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당장 올해 3월부터 최저학력제 개정안이 전면 시행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수업 대체를 e스쿨로 한다지만, 졸린 아이들 대신해 학부모들이 들어야 한다. 기숙사에 컴퓨터도 없다(김창금, 2022)”[27]며 현장의 한계를 지적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초 학력이 무엇인지’, ‘최저 학력의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와 같은 물음들도 뒤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학력제’는 시행되어야 한다. 설령 제도의 이름이나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지더라도 학생 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학생 선수가 프로 선수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손흥민이나 김하성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제2의 손흥민, 제2의 김하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학생 개개인의 모든 것을 쏟아붓도록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만약 운동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무리 없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하이큐나 슬램덩크 같은 일본 스포츠만화를 보다 보면 몇 가지 클리셰가 눈에 띈다. 경험이나 지식은 전무하지만 엄청난 신체 능력을 지닌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28]이나, ‘흑발생머리쿨뷰티’계의 라이벌이 등장한다던가[29] 하는 것들 말이다. 그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학년별 포지션의 차이였다. 갓 입학한 1학년들은 미친 재능과 어마어마한 승부욕을 보여준다면, 3학년들은 반복된 패배로 거의 포기했던 꿈을 1학년과 훌륭한 지도자의 도움으로 80% 정도 이뤄낸 뒤 졸업식에서 “모두들.. 고마웠어…!(민나.. 아리가또…!)”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아련하게 떠나는 역할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에 비해 국내 농구 웹툰 가비지타임에서 승리에 제일 간절한 것은 대부분 3학년이다. 당연하다. 당장 3학년에게는 대회 성적 하나하나가 곧 대학 입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회 8강 안에 들지 못하면 원서를 써 볼 기회조차 없다. 유급은 흔해 빠진 일이었고, 작품 속 주인공네 학교 주장의 별명은 무려 ‘입시 악귀’였다. 반복된 부상으로 인해 21살이지만 아직 고3인 캐릭터가 나왔을 때는 나까지 얘네들 제발 대학 가게 해달라고 하늘에 싹싹 빌고 싶었다. 스카이캐슬과 K-입시의 나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솔직히 하이큐에서는 배구를 그만두더라도 적당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가비지타임 속에서 학생들은 정말 농구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이큐 속 승리가 학생들의 ‘꿈’이었다면, 가비지타임 속 승리는 학생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흔히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최저학력제와 같은 제도가 학생 선수에게 도망칠 곳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엘리트 스포츠가 10대들이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운동에만 쏟아부을 것을 요구하면서도 실패했을 때는 어른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학생 선수들에게 운동을 그만둘 때를 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찾아올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전혀 도망치는 것이 아니며, 설령 그것이 도망이라고 하더라도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마저 용기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내일 경기의 승패조차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삶이지만, ‘언젠가는 운동을 그만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두가 스포츠 스타가 될 수는 없더라도 모든 선수가 운동을 그만둔 뒤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 당장 학생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코트 밖에서도 멋있게 사는 법을 알려줄 어른이지 않을까.
편집위원 은희 | a0520choi@naver.com
[1] 김상범⋅김종성 (2015). 중도탈락 학생선수의 인권 및 학습권 보장에 관한 연구. 1166.
[2] 김무영⋅조미혜 (2004). 고등학교 비우수 학생선수의 고민 탐색. 184.
[3] “매년 운동선수 1만명 은퇴, 대부분 어려운 생활…절반 이상은 20대” (2022.10.14.). 뉴스1.
[4] [코리아데일리] 2022년 고용동향… 실업자 83만3천명⋅청년 실업률 6.4% (2023.01.11.). 코리아데일리.
[5] “매년 운동선수 1만명 은퇴, 대부분 어려운 생활…절반 이상은 20대” (2022.10.14.). 뉴스1.
[6] 송영한 (2019). 박정희 정권의 태릉선수촌 운영과 엘리트 스포츠 정책. 5-6.
[7] 같은 논문. 6.
[8]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는 박정희 정권의 태릉선수촌 설립으로 인해 한국 스포츠의 성격이 크게 변화하였다.
[9] 같은 논문. 8.
[10] 김동규 (2010). 스포츠내셔널리즘의 형성과 맥락 : 새로운 시선. 46.
[11] 나치, 정치 선전 목적으로 ‘베를린올림픽’ 기록 (2004.09.03.). 주간동아.
[12] 김종희⋅이학래 (1999). 박정희 정권의 정치이념과 스포츠 내셔널리즘. 24.
[13] 송영한 (2019). 9.
[14] 조문기⋅임석원 (2009). 5⋅16 군정기 재건체조의 제정과 보급. 37.
[15] 송영한 (2019). 11.
[16] 신라에 존재했던 소년들로 이루어진 교육 및 군인 양성 기관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외세에 항거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을 강조하고자 화랑을 이용하였다.
[17] 한승백 (2018). 전국체육대회 연설문을 통해 본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 스포츠. 146.
[18] 베를린.
[19] 1964년 9월 3일 박정희대통령 제45회 전국체육대회 치사. 대통령기록관.
[20] 1965년 10월 5일 박정희대통령 제46회 전국체육대회 치사. 대통령기록관.
[21] 한승백 (2018). 148.
[22] 조남용⋅이영국(2013). 국가주도 학생선수 육성제도의 개념과 현실을 토대로 한 개선방향 탐색. 151
[23] 그날, 박태환과 장미란이 사회를 본 사연 (2008.12.09.). 프레시안.
[24] 안민석 문체위원장 “체육혁신, 저항 있어야 제대로 된 개혁” [인터뷰] (2019.06.05.). 스포츠조선.
[25] 한태룡 (2008). 학생선수의 학업활동 실태조사 및 최저학력제 도입 타당성 연구. 27.
[26] 학생선수 ‘최저학력제 시기 혼선’ 일단락…올해 1학기 성적부터 (2024.01.10.). 연합뉴스.
[27] 7만여명 학생선수…프로의 길, 그밖의 길 학교는 여전히 혼돈 (2022.10.27.). 한겨레.
[28] ex: 강백호
[29] ex: 서태웅
참고문헌
단행본
한태룡 (2008). 학생선수의 학업활동 실태조사 및 최저학력제 도입 타당성 연구. 체육과학연구원.
논문 및 저널
김경원 (2014). 운동선수의 경력개발과 진로전환을 위한 정책 방안: 독일의 이중 경력 지원제도를 중심으로. 운동학 학술지, 16(4), 101-113.
김동규 (2010). 스포츠내셔널리즘의 형성과 맥락 : 새로운 시선. 움직임의 철학: 한국체육철학회지, 18(4), 39-59.
김무영⋅조미혜 (2004). 고등학교 비우수 학생선수의 고민 탐색. 한국스포츠학회지, 11(2), 177-191.
김상범⋅김종성 (2015). 중도탈락 학생선수의 인권 및 학습권 보장에 관한 연구. 한국체육과학회지, 24(3), 1165-1176.
김종호⋅정이든 (2022). 학생선수 최저학력제 정당화 담론에 기반한 개선방안 모색. 한국사회체육학회지, 89(1), 141-152.
김종희⋅이학래 (1999). 박정희 정권의 정치이념과 스포츠 내셔널리즘. 한국체육학회지, 38(1), 22-35.
김현수⋅박성주 (2020). 스포츠인권 정책분석과 개선방향: 학습권 보호를 중심으로. 한국체육학회지, 59(5), 13-30.
송영한 (2019). 박정희 정권의 태릉선수촌 운영과 엘리트 스포츠 정책(석사,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이영국⋅조남용 (2013). 국가주도 학생선수 육성제도의 개념과 현실을 토대로 한 개선방향 탐색. 한국초등체육학회지, 19(3), 151-164.
조문기⋅임석원 (2009). 5⋅16 군정기 재건체조의 제정과 보급. 한국체육학회지, 48(3), 35-43.
한승백 (2018). 전국체육대회 연설문을 통해 본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 스포츠. 한국융합과학회지, 7(4), 142-155.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창금 (2022.10.27.). 7만여명 학생선수…프로의 길, 그밖의 길 학교는 여전히 혼돈.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4426.html
박영래 (2022.10.14.). “매년 운동선수 1만명 은퇴, 대부분 어려운 생활…절반 이상은 20대”. 뉴스1. Retrieved from https://www.news1.kr/articles/?4832797
위근우 (2023.04.14.). [위근우의 리플레이] ‘리바운드’ 이전에 ‘가비지타임’이 있었다.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04141612005
이명재 (2004.09.03.). 나치, 정치 선전 목적으로 ‘베를린올림픽’ 기록. 조선동아. Retrieved from https://www.donga.com/WEEKLY/culture/article/all/11/74534/1
이의진 (2024.01.10.). 학생선수 ‘최저학력제 시기 혼선’ 일단락…올해 1학기 성적부터. 연합뉴스. Retrieved from https://m.yna.co.kr/view/AKR20240110128500007?site=popup_share_copy
전영지 (2019.06.05.). 안민석 문체위원장 “체육혁신, 저항 있어야 제대로 된 개혁” [인터뷰]. 스포츠조선. Retrieved from https://sports.chosun.com/sports-news/2019-06-04/201906050100029800001824?t=n1
정다미 (2023.01.11.). [코리아데일리] 2022년 고용동향… 실업자 83만3천명⋅청년 실업률 6.4%. 코리아데일리. Retrieved from 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5885
정희준 (2008.12.09.). 그날, 박태환과 장미란이 사회를 본 사연. 프레시안. Retrieved from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92267
조은혜 (2023.09.14.). ‘최대어’ 황준서 한화 품에…김택연은 두산, 이병규 아들 이승민은 SSG로 ‘2024 드래프트’ 완료 (종합). 엑스포츠뉴스. Retrieved from https://www.xportsnews.com/article/1770508
대통령기록관, https://www.pa.go.kr/index.jsp. 접속일 2024.02.07.
법령 및 보고서
학교체육 진흥법 시행규칙 [시행 2022.7.6.] [교육부령 제272호, 2022. 7. 6., 일부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