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특집 '학내인권단체' 여는 글] 편집장 은지
이례적인 기사를 봤다. 연세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페스포트’가 8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전시를 기획한다는 내용이었다.[1] 학보사도 아닌 기성 언론이 동아리의 마지막을 인터뷰하며 그 자취를 담는 것은 새로웠다. 뉴스 페이지에서 ‘동아리 활동 마무리’를 검색해 아무리 내려도 이 같은 기사는 찾을 수 없었으니,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왜 기사화된 걸까?’
의문을 해소해 줄 특별함을 찾기 위해 전시에 다녀왔고,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마지막 기록은 그리 새롭지 않았다. 활동을 이어나갈 신입 부원이 부족했고, 백래시를 경험했으며, 대학 내 인권 담론이 축소되었음을 느낀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이유가 없었다. 우리도 ‘운 좋게’ 이어가며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찾아 헤맨 특별함은 모순되게도 대학 내 인권 단체들이 같은 시류를 타고 있다는 특이점일 테다.
짤이 하나 떠올랐다. ‘안전제일’이라 쓰인 노란색 펜스가 다 허물어진 건물을 에워싼 와중에, 건물에 걸려 나부끼는 파란색 현수막에 궁서체로 쓰여 있다. “우리 식당 정상 영업합니다”. 문득, 다 스러져가는 인권 담론의 더미 위에서 학내 인권 단체들이 어떻게 영업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2024년 1월, 우리는 영업 확인을 위해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과 ‘학내인권단체협의회’에 속한 단체에 인터뷰 제안서를 보냈다. 그중 인터뷰에 응해준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과 ‘문과대학 성평등위원회’, ‘뿌리:침’, ‘사람과 사람’, ‘소수자인권위원회’, ‘여학생위원회’, ‘장애인권위원회’와 대면·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의 근황과 활동, 활동 중 겪은 어려움, 기대하는 연대의 방식을 들어보며 각 인권 단체가 공통으로 부닥치는 지점을 발견했다.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만이 대학 내 유일한 공론장으로 남은 상황에서, ‘생각하기’보다 그냥 ‘뱉어내기’는 더 안락하고 편해졌다. “인권은 취향 문제가 아니고, 차별은 의견이 아닌”[2]데도 인권이 취향에 맞지 않는 누군가의 의견은 당당히 공론장에 내걸린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머릿속에서 굴려온 말들의 기록인 듯싶다. 치밀한 아카이빙은 역사로 쌓여, 훗날 이야기를 이어나갈 누군가에겐 공동체가 역사 없는 공간이 아니라는[3] 위안이 될 수 있을 테니.
소특집 ‘우리 단체 정상 영업합니다’에서는 학내 인권 단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무엇보다, 단체들의 존재와 자취를 기록하고자 했다. 생활도서관 또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바, 3월 말에 학생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중심으로 연대하고 토론하는 행사를 공동주최했다.
가벼운 안부로 시작한 기록이 인권 담론 확장의 물꼬를 틀 수 있길 바라며, 스치듯 묻는다.
편집장 은지 | choeej.eun@gmail.com
[1] 8년 활동 마무리하는 연세대 마지막 페미니즘 동아리 ‘페스포트’ (2023.11.15.). 경향신문.
[2] 이라영 (2022). 말을 부수는 말. 171.
[3] ‘페스포트’의 마무리 행사 중 “크게 먼 훗날에라도 학교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보고자 도모하는 이가 있다면 이곳은 역사 없는 공간이 아니니 너무 외로워하지도, 너무 많이 부담을 갖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발언의 일부를 인용했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라영 (2022). 말을 부수는 말. 한겨레출판.
기사 및 온라인 자료
배시은, 김송이 (2023.11.15.). 8년 활동 마무리하는 연세대 마지막 페미니즘 동아리 ‘페스포트’.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11510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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