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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감염인과 장애 인정

[시선; 여름에서 봄을] 편집장 현정

올 4월, 장애등록 가능 질환 기준이 확대되었다. 이로써 투레트 증후군 등 10가지 질환을 가진 이들이 등록장애인 대상 복지 혜택으로 고용 및 생계를 적극적으로 보조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은 장애 인정 기준에 포함되지 못했다.


HIV 감염인이 장애 인정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들이 감염으로 인한 신체적 손상, 그리고 감염 사실 자체에서부터 비롯한 사회적인 차별을 명백히 겪고 있음에도 장애인복지법의 복지 차원 이전, 인권 차원에서조차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년 9월, 공장에서 일하던 HIV 감염인 A씨는 엄지손가락 절단으로 20여 개의 병원을 찾았지만 감염 사실을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1] 13시간 후에야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응급 처치 시간을 놓쳐 평생 엄지를 굽힐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HIV 감염인에 대한 의료적 차별은 감염 위험에 대한 우려로 용인될 수 없다. HIV 감염은 일상적 신체접촉이 아닌 체액과 혈액에 의해 이뤄지기에 의료기관이 일반적 감염예방 조치만 준수한다면 치료 중 전파를 충분히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2] 물론 HIV 감염인의 보호·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정해 두었다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 있으나 이는 감염인을 예방과 치료의 대상으로만 접근해 되레 차별과 격리를 정당화한다. 가령, 제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 규정으로 감염인의 행동을 제약하며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3]


따라서 올 4월 중순, 여러 인권단체와 공익인권법재단은 A씨의 차별 사례를 들어 HIV 감염인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기했다. 이는 법[4]에 따라 HIV 감염인 차별이 구제될 수 있는 첫 발판이 될 것이다. 재작년 인권위에서 HIV 감염인을 장애인으로 인정한 사례가 있으나 HIV 감염인 전체를 장애인으로 인정하지는 않아 차별이 발생하는 매번 개인이 장애를 입증해야만 하는 문제를 남겨 두었다.


앞으로 사회는 장애 인정 범위를 확장해 차별을 경험하는 이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건 장애 인정 따위가 필요 없는 세상일 것이다. 어떠한 자격을 충족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경우 그 범주 안에 포함되는지가 자원을 분배하는 날카로운 기준이 되지만, 누구나 필요할 때 보편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기준은 무용해져 드디어 모두를 포용할 수 있을 테기 때문이다.[5]


편집장 현정 / byulgot@gmail.com



[1] 당시 A씨가 에이즈 치료를 위해 약을 처방받던 감염내과가 있는 국립의료원에서도 수술을 거부당했다. A씨가 문의한 총 20개의 병원 중, 3개는 공공의료기관이었다. 특히 ‘국립병원과 국립대 산하 병원’은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7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국가가 설립·지원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장애인 등 취약계층들에 대한 진료를 우선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방기했다.

[2] 이 밖에 HIV/AIDS에 관한 오해와 편견에 대답할 수 있는 자료는 ‘대한에이즈예방협회(www.aids.or.kr) > 자료실 > 에이즈기본정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같은 법 제25조에 따르면 이를 위반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조항으로서 감염인 개인에게 감염과 전파의 책임이 전가되고, 따라서 감염인의 성적 행위 전반이 금지되며 규율된다. 더불어 치료 끝에 체액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HIV 감염인의 경우도 성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본 조항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곤 한다고 한다. 이러한 엄벌적 태도는 HIV 감염인들로 하여금 감염에 대한 적시의 조치를 피하게 하기도 한다. 즉, HIV 바이러스 전파 유무와 관계없이 처벌을 적용하는 모습에서 실질적인 HIV 예방 및 치료보다는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해당 조항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기능에 가까움을 짐작해볼 수 있겠다.

[4] 장애인차별금지법 제31조 1항 ‘의료기관 등 및 의료인 등은 장애인에 대한 의료행위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5] 〈YTN〉의 ‘[영상리포트] 환자와 장애인의 경계에 서다’에 담긴 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연구활동가의 발언을 떠올리며 덧붙인 것이다.



참고문헌

기사 및 온라인 자료

신지수 (2021.04.20.). 손가락 절단도 ‘수술 거부’…HIV감염인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KBS. Retrieved from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66423

양세희, 신정인 (2021.05.09.). [영상리포트] 환자와 장애인의 경계에 서다. YTN. Retrieved from https://www.ytn.co.kr/_ln/0103_202105090644149510

어쓰 (2021.05.24.). 엄벌주의는 감염병의 전파·확산을 막지 못한다. 비마이너. Retrieved from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363

염형국 (2021.04.20.). HIV 감염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한 병원들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 진정제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Retrieved from https://www.kpil.org/board_activity/20210420/

이가연 (2021.03.18.). ‘HIV 감염인’의 장애인정, 새로운 장애인운동 될까. 비마이너. Retrieved from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99

이가연 (2021.04.19.). 장애인·HIV 인권단체 “HIV 감염인에 대한 장애인 차별 인정하라”. 비마이너. Retrieved from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73

임동현 (2021.04.20.). 차별받는 HIV 감염인, '장애인 인정'도 못 받는다. 시사주간. Retrieved from http://www.sisaweekly.com/news/articleView.html?idxno=3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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