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여름에서 봄을] 편집위원 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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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인터넷 밈으로 널리 쓰이던 단어인 ‘허버허버’와 ‘오조오억’은 갑자기 ‘남혐 단어’가 되었다. 둘은 어원도 용례도 남성 전반을 비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2] 갑자기 아무도 그런 의미로 쓰고 있지 않았던 ‘숨겨진’ ‘남성혐오’의 의미가 20대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하 커뮤남)을 통해 생겨난 것이다.[3]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또 다른 논란은 ‘알페스 논란’이다. ‘알페스’는 RPS(Real Person Slash)를 말하는 것으로 실존 인물들을 커플로 엮는 2차 창작물이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존재를 알게 되자 커뮤남은 즉시 ‘알페스는 남성에 대한 성착취’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냈다.[4] 현존하는 유명 인물을 팬픽에서 성적으로 대상화했다고 해서 그것을 성착취라고 부르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커뮤남은 알페스를 ‘여자 N번방’이라고 부르며 이슈화시켰는데, 이러한 해프닝들의 기제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그동안 당한 것을 갚아주겠다는 커뮤남의 심리이다. 알페스를 화제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용내역’, ‘운영자’와 같이 N번방 사건 당시 사용되었던 단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이를 투명하게 보여준다.[5] ‘허버허버’나 ‘오조오억’의 경우도 페미니즘 진영에서 ‘보이루’ 등을 여성혐오 표현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복수로 여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는 말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여성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던 것을 커뮤남은 단순히 여자들이 ‘찡찡대는’ 것 혹은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려고 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아무런 실질적 근거도 논리도 없는 이들의 주장에 기업들이 고개를 숙였고,[6] 주요 언론도 이러한 백래시를 진지하게 ‘남혐 논란’으로 보도했다. 커뮤남에 대한 주목은 4.7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폭발하였다.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후보를 뽑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특정 연령대, 특정 성별에서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지지를 보내는 것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했고, 커뮤남들은 ‘이대남’으로 불리며 그들의 불만에 온 사회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가진 것도 없고 혜택을 본 것도 없는 이대남을 차별하는 페미니즘(과 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부)’에게 씌워졌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메갈리아라는 ‘남혐’ 사이트를 신봉하는 결사체가 대한민국 사회 전역에 퍼져서 곳곳에 한국 남성의 작은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손 모양 상징을 심어 놓았다는 음모론이 생산되었다. GS25의 행사 홍보 포스터에서 시작된 이 논란은 온갖 기업들의 홍보물에서 그 흔적을 찾는 검열로 이어졌다. 이것을 페미니스트들에게 복수하는 ‘놀이’ 문화로 인식하는 쪽도 있고 진지하게 믿는 쪽도 있지만, 어느 쪽이 더 많은 가와 관계없이, 기업들이 해명과 함께 홍보물을 수정·삭제하면서[7] 그것이 쓰여서는 안 될 '남혐'의 상징이라는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이다.
본디 ‘남성혐오’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남성혐오’가 미러링한 ‘여성혐오’의 혐오란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이 아니라 사회에 의한 객체화, 타자화, 멸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로 ‘남성혐오’가 가능하다는 믿음,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믿음은 남성 외에는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집단이 없다는 커뮤남들의 세계관에서만 가능하다. 이 관점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는 ‘남성혐오자’가 되며 ‘페미=여자일베’라는 간단한 도식으로 묶여버린다. 여성 할당제, 여성 전용공간 등은 기존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것임에도 이들은 그러한 맥락을 모두 지워버리고 남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인식한다. 그런 관점을 그대로 반영한 말이 ‘젠더 갈등’, ‘남녀 갈등’과 같은 언론(과 정치권)의 표현인데, 여성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구조를 지운다는 점에서 이 역시 백래시이다. 이미 그 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서 ‘페미니즘 교육 논란’, ‘페미니스트 의혹’과 같이 비상식적인 수사까지 여과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남성이 차별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렇게 기업, 언론, 정치권이 모두 커뮤남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백래시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여성혐오? 나 여자 좋아해~” 수준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한 수준의 공론장에서 손 모양을 놓고 탁상공론을 벌이는 동안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은 계속해서 혐오와 차별로 고통받고 죽어간다.[8] 커뮤남은 남성의 자살률과 산재 사망률이 높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정작 그들이 죽어가는 구조를 고치려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같은 시도는 ‘공정’하지 않다며 분개한다. 구조를 지우고 ‘공정’만을 강조하는 커뮤남의 주장, 그리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언론 보도에는 결국 현재의 불공평한 구조를 유지해달라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고로 ‘이대남’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말은 실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진지한 의견으로 반영하겠다는 의미이기에 그 자체로 백래시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쨌거나 ‘이대남’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는 들어보는 것조차 백래시라고 하는 것은 입막음이 아닌가?’라고 한다면 그들이 당장 내뱉는 주장보다 그 주장이 나온 근본적 원인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유치원 때부터 끝없는 경쟁을 거쳐서 바늘구멍 같은 취직의 문을 통과하여도, 평생 월급을 모아서 내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의 절망감과 분노를 약자 집단에 전가하고 있다. 정치권이 ‘이대남’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커뮤남의 반페미니즘에 집중하는 이유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에 손을 대는 것보다 ‘남성혐오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대 남성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이대남’이라고 불리는 커뮤남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러한 성찰 없는 ‘이대남’ 호명은 차별의 구조를 지우기 때문에 여전히 백래시이다.
편집위원 상민 / poursoi0911@gmail.com
[1] 백래시(Backlash)는 “사회 변화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로, 주로 성적,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기제로 작동한다(수전 팔루디, 2017).”
[2] ‘허버허버’는 남자친구의 밥 먹는 모습이 정떨어진다며 쓴 다음카페 게시글에서, ‘오조오억’은 남자 아이돌을 칭찬하는 어느 SNS 게시글의 표현에서 유행이 시작된 표현이다. 사용법 역시 남성 전반을 비난할 때 사용되지 않아 왔는데, 이는 여초 커뮤니티에 해당 표현들을 검색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3] 이를 테면 남자들의 작은 성기 크기에 비해 정자만 오조오억 개로 많다는 뜻이니 ‘남성혐오’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단어를 그렇게 쓴 바가 없었고,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여러 CF에서까지 사용된 그 단어의 흔히 통용되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4]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은 220,321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링크: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5551
[5] 알페스는 창작물의 한 종류이므로 운영자, 이용내역 같은 것이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6] 카카오톡은 ‘허버허버’라는 문구가 들어간 이모티콘을 논란 후 즉시 판매 중지시켰고, 다이소는 ‘오조오억’이란 문구가 들어간 현금박스를 판매중단 및 전량회수 시켰다.
[7] GS25, 무신사, BBQ, 이마트24, 카카오뱅크, 이랜드 등의 기업은 물론 경찰청, 평택시, 국방부, 전쟁기념관 등 공공기관 역시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유의하겠다” 혹은 “책임을 통감한다”와 같은 입장을 표했다.
[8] 혹시 이것이 과장이라고 생각한다면 페이스북 페이지 ‘오늘의 여성대상 범죄’에 방문해 보길 권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수전 팔루디 (2017). 황성원 (번역). 백래시.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