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트랜스젠더' 여는 글] 편집위원 민철
“… 경제, 문화,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식과 이해를 넓히고 … 리미니 프로토콜은 재현의 함정과 형이상학적 감상성으로부터 탈출 … 제도적 극장 공간으로부터 … 피스카토르와 미셸 뒤샹의…”
명멸하는 모니터 뒤로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열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멀어져갔다. 밀린 강의가 파편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낯선 단어와 문장들이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듯이 쏟아졌지만, 딱히 그것을 전부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목소리가 혼자 가게 두었다. 강의를 아예 끄지는 못하였다. 공부하던 버릇이 나도 모르는 새 남아있었는지, 교수님의 열정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일종의 불안감, 혹은 알량한 양심이었는지. 그러니까 나는 강의를 듣지도 않으면서 끄지도 못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교수님은 직접 무대를 통해 확인하자시며 연극을 보여주셨다.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100% 광주〉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광주 시민 100명이 무대에 선다. 이들은 배우도, 연극 애호가도 아닌 일반 시민일 뿐이다. 그들은 무대에 서서 한 명씩 자기를 소개하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물건을 보이기도 한다. 이어 수많은 질문을 서로 던지면서 답하고 춤추며 노래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100% 광주”라고 말한다. 그 연극을 보고 있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났을까. 그리 슬픈 장면이 아니었는데도 ‘그 사람들이 거기 있구나, 그렇게 계속해서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몇 분을 그렇게 울었다.
그러다 한 아이가 질문할 차례가 되었다. 아이는 머뭇거리며 마이크를 잡더니 이내 기발한 생각이라도 난 듯 물었다. “당신은 여자인가요?” 천진한 질문에 관객들은 아이가 귀엽다는 듯 웃었고, 다른 배우들도 미소를 지으며 망설임 없이 무대 위에 마련된 ‘Yes’와 ‘No’ 발판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자명한 질문의 경계에서, 홀로 머뭇거리던 당신이 보였다면 그건 나만의 착각일까.
부끄럽지만 나는 당신을 잘 알지 못했다. 세상의 고통에는 총량이 정해진 것 같았고, 나에게 당신은 그 총량의 일부를 짊어진 수많은 이들 중 하나로 뭉뚱그려져 있었다. 당신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모두 알기에는 피곤하지만 귀를 아예 닫지도 않는, 항상 밀린 강의를 듣는 것처럼 사는 인간. 그게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대 위에서 잠깐 떠올랐던 당신은 다시 침묵하는 인파 사이로 흐려져갔다. 각자의 선명한 고통을 짊어진 그 인파 사이로.
내가 다시 당신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지난 연극과 달리 이번에 당신은 혼자였다. 그곳에는 음악도 춤도 없었으며, 마이크 지지대도 없어 직접 마이크를 쥐어야 했다. 당신은 그런 무대에 서서 오래 얘기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그 순간부터 울먹여야 했고, 자랑스러운 당신의 직업을 말하는 동안 숨이 가빠져야 했을까. 왜 당신은 죄를 고백하듯 과거를 읊조려야 했을까. 왜 당신의 앞에는 토요일의 나른한 관객들이 아니라 넥타이를 끝까지 맨 기자들이 있었으며, 당신은 가슴 따듯한 무대평이 아니라 무자비한 댓글들을 읽어야 했을까. 왜 영영 떠나야만 했을까. 당신과 또 당신과 그리고 당신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나는 계속해서 당신을 생각한다. 그리고 안다. 온전한 당신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100%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당신을 우리가 함께하는 무대 위로 초대하고 싶다. 어떤 질문에도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고, 어떤 대답을 해도 환영 받는 그곳에. 그곳에서 우리는 춤추며 노래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낼 그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몸짓에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있었으면 한다. 그럼 그 때 나는 그것을 100%, 100% 인간이라 부를 테다. 그리고 우리는 그 ‘100% 인간’에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특집 ‘트랜스젠더’를 쓰기로 했다. 약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매번 부족하지만 항상 완전을 바라는 마음으로.
편집위원 민철 / a4003413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