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특집 '비거니즘'] 편집위원 다연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1]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맨 처음의 행동을 해볼 수 있을까요. 그 고민을 지니며 모아 본 몇 개의 방법들을 나누어 봅니다.
지난 《고대문화》 여름호 속 문장들을 더듬어봅니다. 그 속에서 햇살도 무지개도 없이 이어지는 슬픔이라는 장마를 보았습니다. 그 장마에 못내 슬퍼하는 현정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떤 아픔의 소식을 듣는 중에도 끝없이 쏟아지는 다른 아픔이 존재합니다. 지구본 위 그들을 검은 점으로 찍는다면 남는 산과 바다는 얼마나 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들을 소개하려는 이유는, 이 창구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최초의, 최선의 발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닮아버린 여러 슬픔을 마주보자는 말과 함께 그가 소개한 여러 뉴스레터 및 유튜브 채널, 기부 플랫폼들에겐 ‘연결과 실천을 위한 작은 창구들’이라는 따뜻한 이름이 생겼습니다. 그중 한 창구[2]의 작은 틈으로 ‘비질(vigil)’[3]의 현장과 처음 마주했습니다. 도살 직전 동물들의 마지막을 직접 마주하고 기록하자고 결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1. 세계적인 동물[4] 해방운동 ‘비질’은 캐나다 동물권 단체 ‘토론토 피그 세이브’(Toronto Pig Save)가 2010년 처음 시작한 활동이다. 2019년 4월, 한국에서도 매주 공장식 축산업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 도살장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서울애니멀세이브’라는 단체에서 주최하는 비질 소모임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담당자인 현우 님께 무작정 비질에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 “교지에 담아주신다니 더욱 감사하고 반갑다”는 말과 함께, “비질은 기록하고 내용을 공유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는 그의 문장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그의 격한 환영에 나는 퍽 쑥스럽고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방역 수칙으로 인해 총 12명의 인원만이 스태프로서 비질에 참가할 수 있었다. 우리는 4명씩 3개의 팀으로 나뉘었으며 각각 도살장, 도계장,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내가 가는 곳은 돼지와 소를 죽이는 경기 남부의 한 도살장이었다.
활동이 예정된 8월 9일은 말복 하루 전날이었다. 수많은 동물들이 ‘보양식’이 되어 죽어 나가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비질 체험을 신청했는가, 글을 쓸 목적으로 죽을 생명들을 수단 삼는 것인가.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다는 죄책감과 죽음 직전의 그들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긴 밤을 헤매다 그렇게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오전 6시 50분. 나는 정애 님과 청연 님을 오산역 환승센터에서 만났다. 우리는 버스로 이동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정애 님은 돼지 때문에 비질을 주기적으로 하게 되었다며, 동물권 활동을 하기 이전 삼겹살을 어마어마하게 먹어서 그들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지도 모르겠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우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이야기, 코로나19 등 동물 매개 전염병과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는 모른 척한 채 죄 없는 동물들을 탓하는 언론과 사람들을 욕하기도 했다.
사십 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도살장과 축산 도소매장을 제외한 어느 건물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 눈길이 채 닿기도 전에 잊혀질 법한 공간이었다. 강고한 직육면체 모양의 회색 건축물은 전혀 도살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주 평범한 공장의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문득 건물이 도살장처럼 보이려면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저 안에서 하루에 수백 마리의 소와 돼지들이 죽어 나간다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공장식 축산의 실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쉬이 원망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달 전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반려견을 쓰다듬으며 치킨을 뜯는 일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그러하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2. 거대한 트럭 두 대가 눈에 띄었다. 먼 거리에서도 코를 찌르는 오물의 악취는 삽시간에 옷과 머리에 배는 듯했다. 그 역한 냄새에 찌푸릴 틈도 없이 나는 손을 벌벌 떨며 소들을 가득 태운 트럭으로 다가갔는데, 그 모습이 도살장 노동자들의 눈엔 사뭇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정애 님은 항상 아주 빠른 걸음이었고 트럭에 다가갈 땐 더욱 빨라졌다. 나보다도 작은 뒷모습이었음에도 무척 의연해 보였는데(실제로는 그 역시 무서웠을 테지만) 덕분에 나 역시 두려움을 잠시 잊은 채 걸음을 재촉할 수 있었다.
트럭 안에는 6~7명(命)의 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몇 시간 동안 서 있는 채로 물 한모금 마시지 못했으니 잔뜩 지칠 법하였지만 그들에겐 몸을 기댈 조금의 공간도 없었다. 아니, 제대로 서있기조차 좁은 공간이었다. 도살장으로 향하는 트럭 안에 이들을 최대한 많이 싣는 것만이 인간의 유일한 목적이므로. 점점 가까워지는 트럭의 철창 사이로 소와 눈이 마주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분명 겁에 질려 있는 눈동자였다. ‘겁에 질리다’라는 표현이 무척 인간중심적인 언어임에 틀림없지만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트럭을 감싸고 있는 은색의 벽으로 인해 얼굴 일부를 제외한 그들의 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트럭 지붕 아래 조금 뚫려 있는 공간조차도 그들이 얼굴 한 번 내밀기 힘들 정도로 좁았다. 소들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일 하늘마저 고개를 힘껏 쳐들어야 볼 수 있었다. 왜 이런 높은 벽을 사이에 둔 채 우리가 만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애 님은 트럭을 보며 마치 공장식 축사를 이동식 축사로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라고 했다. 우리는 열심히 죽음을 앞둔 생명들의 사진을 찍었다. 순간 인간동물원에 전시되었던 원주민들, 그리고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더 고통스러운 장면을 담기 위해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우리의 모습을 인지했을 때, 정애 님과 청연 님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옆의 트럭에 있는 소들 중 한 명은 뿔이 뽑혀 피가 줄줄 흐르는 채로 서 있었다. 적색의 피가 그의 뺨과 입 주위에 계속해서 흘렀다. 끔찍한 장면에 곧바로 눈을 감았지만 진득한 피의 감촉만은 섬찟하게 전해졌다. 바닥에는 피와 오물이 섞여 있었고, 그것들을 그대로 몸에 묻힌 채 소들은 무기력하게 서 있었다. 하양과 검정의 털은 본래의 빛깔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궁금했는지 소들은 계속 우리를 쳐다보았다. 트럭의 엔진 소리는 그들의 울음소리를 집어삼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발장구를 쳤지만 차는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미세하게 덜컹거릴 뿐.
청연 님은 은색의 견고한 이동 트럭이 마치 공장식 축산 산업의 상징 같다고 했다. 그 튼튼한 은색의 벽이, 세월호 1주기 집회 때 자신을 막았던 수많은 의경들의 모자와 방패처럼 느껴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너무나 견고하고 완전하며,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변화를 시도해봐도 절대 바뀌지 않을 무언가. 동물을 착취적으로 대하는 축산업의 폭력적 관행 및 부패는 당연시되며, 육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그 위에 군림하는 대기업들은 그 거대한 시스템이 원활히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여 오늘도 열심히 ‘고기’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트럭기사 분은 왜 사진을 찍으며 무얼 하는 사람들인지 등 시비조의 질문을 던졌고 벙쪄 있던 나와는 달리 정애 님은 익숙하다는 듯 대화를 이어갔다. 한 트럭기사 분은 도살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냐며,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잔인하게 죽였다는 말을 집요하게 여러 번 했다. ‘잔인하게 죽였다’는 말과 그 태연한 표정, 그리고 우리를 무시하는 듯한 어조는 아주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활자로나마 읽었던 끔찍한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2001년 《워싱턴 포스트》지의 조비 워릭이 「그들은 한 조각 한 조각씩 죽어간다」라는 기사에 실은 도축장 일꾼 라몬 모레노의 이야기였다.
‘소들은 눈을 껌뻑이고 소리도 내요.’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머리도 움직이지요.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립니다.’ 그래도 모레노는 다리를 자른다. 운 나쁜 날은 수십 마리의 소가 확실히 살아서 의식이 있는 채로 그의 앞에 도착한다. 일부는 꼬리를 자르고 배를 가르고 가죽을 벗길 때까지 살아있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 조각 한 조각씩 죽어 가는 거지요.’’[5]
#3. 트럭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계속해서 들어왔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해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돼지 도축이 일시적으로 불가해지자 소 도살량이 갑자기 늘어난 모양이었다. 정애 님은 ‘절반의 비질’밖에 하지 못해 어떡하냐며, “글 쓸 수 있으시겠어요?” 하고 나를 걱정했다. 우리 사이에는 아쉬워하는 분위기의 침묵이 감돌았다. 죽으러 가는 돼지들을 보지 못해 아쉽다니,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온 걸까.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우리라서 참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죄책감에 서로 눈물을 훔쳤다. 그날의 눈물은 온종일 참 반사적이었고 나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젖소는 한 트럭에 한두 마리씩 들어왔고 모두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1년에 10개월 우유를 짜며 그중 7개월은 임신해 있는 젖소들은 칼슘과 영양분이 너무나 부족한 상태였다. 젖소들은 아주 말랐으며, 뼈가 등을 곧 뚫고 나올 것처럼 야위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뼈와 가죽뿐이었지만 유독 젖 부분만 축 늘어진 채 아주 부어있었다. 젖소들은 유방염에 걸려 주저앉을 때까지 우유를 짜다가,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지면 곧바로 도살되어 반려동물 사료, 햄버거 패티 등으로 갈아 넣어진다.
모든 소들의 귀에는 작은 종이가 이름표처럼 달려 있었고, 유독 슬퍼보였던 어떤 생명의 이름은 190927이었다. 그조차 잘 보이지 않아 눈을 찡그려야 했다. 그 숫자들의 배열이 내가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가 그를 개체로서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러다 결국 그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두 떨어지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눈물을 흘리는 소는 나에게 피를 흘리고 있는 소만큼이나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도살장 직원은 소들이 저가 죽으러 간다는 사실을 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트럭에서 내려진 그들은 도살장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그런 소들을 막대기로 때렸고, 그들의 꼬리와 엉덩이를 있는 힘껏 발로 찼다. 각종 엔진과 기계 소리 사이로 소가 낮게 우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도살장 안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아주 노려보고 싶은 나의 기분을 눈치챈 듯 정애님은 도살장의 노동자들이야말로 이 거대한 산업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무척 다양한 상처와 고통이 있으며 저들 역시 그중 몇 조각을 아프게 차지하고 있다는 말뜻이었을까. 저들 역시 끌어안아야 한다는 그의 말을 나는 오랫동안 곱씹었다.
실제로 도축장 안에서는 칼과 톱을 사용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그에 찔리거나 베이는 일이 다반사다. 계류장에서 120kg가 넘는 돼지들과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일하기에 그들은 몸에 멍을 달고 산다. 오래된 부산물실 중에는 배수조차 제대로 안 되는 곳이 많기에 ‘똥물’에 발을 담그고 일해야 한다. 정신적 피해 또한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가 넘는 폭력을 경험하면 정신적 외상을 입으며, 이는 도축장의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소와 돼지를 보며 때때로 ‘귀엽게 생겼네’라고 생각하다가도, 2분 뒤에 그들은 이들을 몽둥이로 패서 죽여야 한다. 일의 잔인함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동물들을 때려 죽이는 것으로 풀고, 그것을 잊기 위해 또다시 술과 마약을 일삼는 노동자들이 세상 어딘가 분명 존재한다.[6] 이렇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도축장에서의 폭력은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축산 시스템의 결과물이며, 노동자들 역시 이 산업의 또 다른 희생자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밖에서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관리자의 눈에 띄었고 그는 곧바로 컨테이너 문을 닫아버렸다. 청연 님은 천천히 닫히는 그 컨테이너의 문이, 공교롭게도 소들을 가둬놓은 트럭의 은색 벽과 매우 닮았다는 말을 했다.
더 이상 트럭이 오지 않자 우리는 도살장과 붙어 있는 도소매장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늘 보던, 신선도를 자랑하는 ‘고기’들과 각종 ‘부산물’들을 파는 곳이었다. 간판 속 귀여운 돼지와 소 캐릭터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쳤다. 바닥에는 붉은 핏물이 흥건했으며 그 생의 흔적은 흐르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밟혔다. 목으로부터 잘려 나간 소의 머리가 진열되어 있었고 상인들은 그의 얼굴을 그대로 발골하고 있었다. 칼질하는 사이로 가지런한 이빨이 보였고, 내가 보았던 소의 큰 눈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따뜻한 피부로 숨을 몰아쉬던 생명들이 이제 없다. 도소매장의 상인들은 끊임없이 호객 행위를 했지만 나는 그에 반응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트럭을 앞에 두고, 사진 몇 장만 찍어도 되겠냐며 경비 아저씨에게 하소연하듯 말하던 정애 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경비 아저씨는 “당신이 여기 오는 것 자체가 피해”라고 냉정하게 쏘아붙였고 몇 차례의 대화 끝에 우리는 결국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자연과 동물에게 무해한 나이길 끊임없이 바라지만 어떤 인간동물에게 내 존재 자체가 피해일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아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 무력함을 떠안은 채 들어왔던 개구멍으로 다시 몸을 웅크리고 빠져나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늘이 참 좋은 날이었다.
‘말복 대비’ 비질 스탭 카톡방이 만들어진 이후 진행되었던 온라인 오리엔테이션, 12명의 스탭 전체가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나는 비거니즘 지향 생활을 시작한 지 2달도 채 안 되었으며, 아직 동물성 음식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력 중”이라고 부끄럽게 덧붙이기도 했다.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도 줄줄이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기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허나 오리엔테이션 진행자 중 한 분이었던 혜린 님의 조언은 뜻밖였는데, 그는 이 비질 소모임 내에서는 채식 내지 비건에 대한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문득 며칠 전 현우 님께도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비질 후 사람들이 느끼는 내용에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비질을 주최하는 목적 자체가 비건 지향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동물의 완전한 해방을 외치며 동물의 고통에 아파하는,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비거니즘을 바람직한 삶의 태도로 받아들이고 이를 지속하려 노력하는 이들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분명했다: 채식인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 이 활동에 대해 거리감과 거부감을 가질까봐. 혹은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우리의 활동이 아예 벗어나 버릴까봐. 그들은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비질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사랑할까 먹을까
앞서 언급한 그들의 주장은 채식하는 사람을 고깝게 보는 시선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채식하는 이들이 압도적 소수라는 이유로, ‘괴짜’나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부정적인 반응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꽤나 보았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는 오지랖,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조소, ‘그렇다면 식물은 불쌍하지 않느냐’는 비아냥을 너무나 쉽게 행하는 일부 사람들. 채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조차도 인터넷 댓글 속 가벼운 혐오에 금세 속이 상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채식에 한 발 다가간다면 그 발걸음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종교, 건강, 환경, 동물권 등 채식을 시도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내가 비거니즘을 접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동물’이었다. 탕수육과 뼈해장국을 그토록 좋아하던 내가 고기 끊기를 선언했던 이유, 몇 번의 실패 후 돌고 돌아 다시 채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 역시 동물에 대한 끔찍하고 비극적인 착취 방식 때문이었다. 뻔하게도, 그 괴로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 최초의 동기는 갈색 털에 까만 눈을 가진 반려견이었다. 나의 10살 무렵 처음 만나 12년의 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낸 너. 그리고 어느 순간, 세상의 동물들이 다 너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릴 적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에서 학대받는 작은 몸을 보며 펑펑 울어본 기억이 있는가. 추운 겨울 막 주차된 차의 온기라도 붙잡고픈 보닛 밑 고양이의 눈을 본 적 있는가. 언젠가 여행 중 만난 말과 소의 껌뻑이는 눈과 촉촉한 코에서 거대한 생명력을 느껴본 적 있는가. 구제역으로 인해 산 채로 묻어지는, 자신과 같은 돼지들의 무게의 짓눌려 죽어버리는 돼지의 고통은? 또 살고자 안간힘 써봤지만 누군가의 손에 의해 구덩이로 떠밀리는 돼지의 비참함은? 멸종위기종임에도 불구하고 웅담 채취 목적으로 평생 철장 안에서 길러지는 반달가슴곰은? 사람들의 진저리와 욕설 앞에 놓인 대부분의 도시 비둘기를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있는지? 시끄럽고 오염된 도시 속에서 각종 장애를 얻어 살아가는 비둘기지만, 되레 비둘기의 개체 수를 늘려 생태계를 교란시킨 인간이 이들을 혐오한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며 세상이 점점 싫어졌지만 나는 그저 눈과 귀를 막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며 살기 바빴다. 그들을 인식하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삼겹살을 구우며 보던 티비 속 고양이 학대 뉴스에 분개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가 굽고 있는 돼지라는 동물이 실은 고양이만큼이나 애교 있고 똑똑한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아지와 고양이는 사랑하고 소, 닭, 돼지는 먹는 이 사실을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돼지는 3주 정도가 되었을 때 자기 이름을 알아들으며, 다른 반려동물들처럼 배를 만지면 좋아한다.[7] 자기들끼리 잘 놀고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도 곧잘 한다. 소 또한 의사소통을 좋아하고 여러 가지 발성법과 제스처로 감정을 표현한다. 닭과 칠면조는 너무 멍청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새들 역시 상당히 영리하다. 주인과 같이 놀기도 하고, 집에서 기르는 개와 어울려 다니는 어느 닭의 모습[8]은 ‘새대가리’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그럼에도 강아지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 이외의 나머지 동물들을 음식과 상품으로만 인식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원인은 '스키마(schema)’라는 심리학적 틀에 있다.[9] 우리는 스키마를 통해 우리의 경험 및 정보를 해석하며, 동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 대해서도 스키마를 가진다. 예를 들어, ‘간호사’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흰 유니폼을 입은 여성 간호사를 떠올린다. 남성 간호사나 가운을 입지 않은 간호사가 적지 않음에도 말이다. 각자의 스키마를 바탕으로 우리는 동물을 먹을 수 있는 동물, 먹을 수 없는 동물로 나눈다. ‘쇠고기’와 마주할 때, 살아있는 소 대신 그 맛이나 빛깔과 질감에만 집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고기와 그 고기를 제공한 동물의 몸을 연결시키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육류 먹는 일을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고 정당화한다.[10] 이 세 가지 정당화 방식은 아프리카인의 노예화에서부터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이르는 모든 착취적인 시스템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돼 왔다.[11] 고기를 먹는 사람이 주류이며 대다수이기에 육식주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며,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는 고기 섭취가 필수적이라는 뿌리깊은 ‘단백질 신화’는 육식을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든다.[12]
행여 육식주의와 도살의 방식에 대해 아주 잠깐의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우리는 재빨리 회피하거나 빨리 잊으려고 노력한다. 눈앞의 차갑고 뻘건 덩어리가 실은 우리와 같이 따뜻한 온기를 가진 생명으로부터 왔다는 것 자체는 알지만, 그 동물이 고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을 부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눈앞에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가축의 도살과 제조 공정 과정은 보안이 매우 철저할 뿐 아니라,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 또한 인적이 드문 곳에 주로 위치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로부터 잘 감춰져 있다. 정보제공 목적의 뉴스 미디어 또한 소비자와 육식주의를 연결하는 직접적인 통로 중 하나로 구실하며, 비인간적인 도살 과정에 대한 보도량은 극히 미미하다. 축산 기업들의 경영진이나 식육 생산업 종사자 등 고기로 이익을 취하는 많은 인간 집단은 공장식 축산의 끔찍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당신이 불편해하는 진실
어느 날 우리의 손자들이 물을 것이다. 동물들의 홀로코스트 때 할아버지는 어디 계셨어요? 그 끔찍한 범죄에 대항해 무엇을 하셨어요? 우리는 이미 한 번 했던 변명을 다시 내놓지 못할 것이다. 알지 못했다는 변명을.
- 헬무트 카플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저술가, 동물권 운동의 선구자)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가 그러하듯, 육식주의 시스템 또한 희생자가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일을 완벽에 가깝게 막아낸다. 끝없이 비대해지는 심리적, 물리적, 사회적 비가시성에 맞서 공장식 축산의 진실을 해체해보고자 한다.
최소 비용으로 생산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공장식 축산업에 의해, 좁은 공간에서 대규모로 밀집 사육되는 동물들은 고기나 사료나 의류가 되며 때때로 산 채로 구덩이에 묻힌다. 폭 60cm의 작고 어두운 우리 속, 누우면 오물에 장기가 잠기는 상태로 평생을 지내는 돼지가 땅에 발을 딛는 첫 순간은 도살장에 갈 때뿐이다. 새끼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마취 없이 거세되거나 강제로 이빨이 뽑히고 꼬리가 잘린다. 비좁은 축사에서 받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때때로 자해를 하거나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데, 이는 인간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아주 유사하다. 소 역시 태어나자마자 바로 마취 없이 낙인 찍히고, 거세당하며, 뿔이 제거된다. 송아지의 경우 사람들이 창백한 고기, 즉 연한 빛깔 고기를 원하기 때문에 16-18주 동안 갇혀서 제대로 눕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서 키운다. 닭은 또 어떠한가. 수평아리들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라인더에 갈리거나 가스사를 당한다. 살아남은 암평아리는 뼈마디가 골절될 만큼 살찌워진다. 닭가슴살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쪼아 죽이기도 해 어렸을 때 마취 없이 부리를 자른다. 부리가 잘린 닭은 종종 그곳에 신경 종양이 생겨 물도 못 마시곤 하지만, 업자 입장에서 그런 닭은 버리면 그만이다. 케이지 아래층에 있는 닭은 위층 닭들의 대소변을 그대로 맞으며, 피가 날 때까지 몸을 긁는다.
유제품이나 계란을 얻는 경우 역시 잔인하기는 마찬가진데, 이는 여자인 동물들의 재생산에서 비롯된 부산물이기에 ‘여성형 단백질’이라 불린다.[13] 자연상태에서는 10~20개의 알을 낳는 닭은 공장식 축산에서 200~300개의 알을 낳도록 강요받기에 약 45퍼센트의 암탉들이 골절상을 입는다. 그들은 몸이 망가질 만큼 밤낮없이 알을 낳도록 강제당하며 알을 낳지 않으면 인간들은 불을 끄거나 먹이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
생산할 수 있는 우유의 양을 최대로 하기 위해 성장호르몬을 맞는 암소들은, 젖 과잉 생산으로 유방염을 앓고 다리를 전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분리되며, 이때 송아지는 엄마를 향해 미친 듯이 울부짖는다. 젖소는 아기를 찾으러 도망가기도 하며 우울증을 앓는 경우도 빈번하다. 축산농장에서 암소를 임신시킬 때는 ‘강간틀’을 사용하는데, 철재로 된 이 틀에 암소의 목을 매고 그의 사지를 묶어 세운다. 노동자들은 틀에 암소를 세운 채 손으로 질에 총을 집어넣어 강제로 정액을 주입한다. 돼지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새끼를 빨리 낳아야 더 많은 고기와 부산물들을 생산하며,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이런 방식을 통해 우리 앞에 왔다. 나 또한 내가 먹는 음식을, 치킨과 삼겹살, 냉면 육수와 치즈케이크를 동물의 고통과 연결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그런 음식에 대한 그리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여유로운 아침의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 우유 한 잔. 공장식 축산의 결과물은 이토록 추상적이고 매력적이다. 처참하고 구체적인 진실은 온전히 묻어버린 채로.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
“사실 불쌍하다는 표현을 거의 안 쓰려고 해요. 왜냐면 비건이 비이성적인 이유로 선택하는 가치관인 것처럼 느껴질까봐. 불쌍하다는 것만이 비건의 동기가 되는 건 아닌데 솔직히 말하면 동물들이 너무너무 가엾고, 미안하죠. (...) 그냥 지금처럼 동물을 대하는 건 옳지 않기 때문에 이 폭력에 더 이상 나는 가담하고 싶지 않고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싶지 않으니까. 왜 이 이유로 동물을 먹지 않고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걸, 이걸 변명하기 위해 수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14]
동물의 삶을 떠올릴 때면 오히려 일찍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만큼 돌이킬 수도, 걷잡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서서히 무기력해진다면 언젠간 모든 것에 무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민’하지 않은 삶은 참 편할 텐데. 아니, 참 편했었는데.
그럼에도 누군가의 불행을 공부하는 고통스러운 일을 왜 해 나가야 하는지 묻는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짓궂은 누군가가 비아냥거리는 말에 상처받지 않을 담대를 키우기 위해서. 육식주의의 허점과 동물권 보장의 당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동물이 되기 위해서. 동물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 감성적이고 감상적이며 비이성적이라 비난하는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달큰한 허무주의의 유혹에 쉽사리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도살장이 유리로 되어 있었다면 모든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톨스토이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인터넷의 발달은 도살장의 벽들을 유리로 바꿔놓은 듯했지만, 그 유리 너머 생생하고 투명하게 보이는 동물의 고통에도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용기를 내는 어떤 목소리들 덕에 나는 좀 더 나아질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영상과 책 속의 단단한 목소리들은 내게 새로운 유리창이 되어주었으며, 비질의 경험은 희미하게나마 존재하던 그 유리창을 깨부숴 나로 하여금 익숙하고도 낯선 불행을 직접 마주보게 했다.
지면을 빌려 경기 남부 한 도살장의 이야기를, 핸드폰과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건조한 활자로 적어 내린 동물의 이야기와 고통의 조각들을 부친다. 이것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유리창이 되길, 나아가 카프카의 도끼가 되어 그의 세상을 깰 수 있길 바란다. 나의 첫 경험이 그토록 충격적이었던 것처럼.
이렇게도 높아만 보이던 연결과 실천의 문턱들을 하나씩 낮춰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더 오래, 멀리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래의 첫 방법들에서 당신이 이어나갈 발자국들이 궁금합니다.
높게만 느껴지던 문턱 하날 넘습니다. 그리고 그 최초의 발자국을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나마 이정표를 세워둡니다.
동물과 지구에 무해한 사람에 매일매일 가까워지겠다는 다짐. 한 달 전쯤 편집회의에서 이런 다짐을 공유했었죠. 민망하도록 짧은 시간이지만, 꾸짖는 사람 없는 일임에도 고집을 부리는 제가 썩 대견합니다. 동시에 어느 미래에 맛보게 될 좌절이 두렵기도 하지만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눈과 코와 입을 가진, 얼굴이 있는 존재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주었으면. 누구의 고통도 들어있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함께 채식 맛집 탐방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본 곳보다 가볼 곳이 더 많기에 아주 설레는 요즘입니다.
여러분은 계절이 언제 새 이름을 가지는지 아시나요. 여름에서 가을. 한 뼘 남짓한 계절을 통과하던 어느 날, 여름의 현정이 남긴 이 글목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다 문득 소극적인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 작은 발걸음이, 다른 누군가에게 최초의 발걸음을 선사하길 소망합니다. 그 최초와 최선의 발걸음들이 모여 평화와 정의와 사랑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그리운 바람을 담아서요.
이 순간에도 죽음의 문턱 앞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을 동물들과 한 번도 지친 기색 없던 성원들의 따뜻한 응원. 수많은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글을 마칩니다. 우리의 지금이 미래에는 믿기 어려운 과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글은 오늘을 살아내고 더 나은 내일로 가기 위한 다짐입니다. 연민과 분노가, 사랑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렇게 걸어보고 싶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편집위원 다연 / mandy1423@naver.com
[1] 수전 손택 (2004). 154.
[2] 비건 뉴스레터 ‘비트’
[3] 도살장 앞을 찾아가, 육식주의 사회 속 고통받는 동물의 현실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일을 말한다. 활동가들은 죽음 직전 한나절 넘게 물조차 마시지 못한 동물들에게 마지막 물과 먹이를 주며 그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기록한다.
[4] 이 글에서 언급할 ‘동물’이란 인간동물을 제외한 모든 비인간동물임을 앞서 밝힌다.
[5] They Die Piece by Piece. (2001.04.10.). The Washington Post.
[6] Eisnitz, Gail A.(2006). Slaughterhouse. 87.
[7] 멜라니 조이 (2011). 54.
[8] 같은 책. 71.
[9] 같은 책. 15.
[10] 같은 책. 140. 저자는 이를 ‘정당화의 3N’이라 부른다.
[11] 같은 책. 132.
[12] 고기 없이도 충분한 단백질 섭취가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충분히 많다. 대두의 단백질 함량은 41.8%로 단백질 함량이 22.8%인 쇠고기의 2배나 된다. 단백질 흡수를 위한 필수아미노산에 있어서도 채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3] 캐럴 J. 아담스
[14] 불쌍해서 비건하면 안되나요? [초식마녀] (2021.07.30.)
참고문헌
단행본
무무 (2018). 나는 오늘부터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하모니북.
수전 손택 (2004). 타인의 고통. 이재원 (번역). 이후.
멜라니 조이 (2011).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노순옥 (번역). 모멘토.
Eisnitz, Gail A.(2006). Slaughterhouse. Prometheus Books.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지숙 (2020.06.13.). 6개월 생의 마지막 날까지, 돼지는 힘겨워했다.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animalpeople/farm_animal/949189.html
이하늬, 이두리 (2021.07.03.). 도살 직전의 동물들을 만나는 일, ‘비질’.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7031442001
Jo Warrick (2001.04.10). They Die Piece by Piece. The Washington Post. Retrieved from
영상자료
불쌍해서 비건하면 안되나요? [초식마녀] (2021.07.30.) 접속일 2021.08.09. 초식마녀 Tasty Vegan Life. Retrieved from https://www.youtube.com/watch?v=Os-XpPfTYg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