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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독자와의 만남

유난히 뜨겁던 이번 여름, 우리는 만났습니다. 학부 과정을 마치시고 대학원에 재학 중이신 승희, 요세피나 님,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계신 혜선 님, 학교 밖 청소년이자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노엘 님, 그리고 저희 고대문화 성원 전부가 함께 말입니다. 이번 독자와의 만남은 8월 11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코로나 상황이 다시 심각해진 탓에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말씀 들려주신 승희, 요세피나, 혜선, 노엘 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지난 여름호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대문화》 144호는 https://brunch.co.kr/brunchbook/komun144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책 전반

승희  이번 호 읽으면서 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는 퀴어 이론이나 관련 사회 이슈에 대해 나름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제가 굉장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번 특집호로 인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집 글을 읽으면서 제가 무지로 인해 저질렀을 혐오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하나하나 힘들게 읽었습니다.

요세피나  저는 세부적으로 따지기에 앞서서, 이 호 자체가 가진 학술적 가치가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어요. 트렌스젠더에 대해 기성언론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고, 이렇게 친절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또 다양한 관점을 한꺼번에 모아서 보여주는 언론이 없으니까. 이 특집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가치가 높다고 생각을 했어요.  

노엘  《고대문화》를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트랜스젠더나 노동 이슈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었고, 영화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은 글도 있어서 이번 호가 전반적으로 신선하다고 느꼈어요.


편집실에서

승희  현정 님 글 스타일이 아무나 생각 못 할 것 같은 이미지를 끌고 와서 끝까지 그 시선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누가 봐도 ‘현정 님이 쓴 거다’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어요.

현정  뭔가 「편집실에서」를 쓸 때는 되게 불안 불안하게 쓰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얘기를 하게 되는데, 책 맨 앞에 있으니까. 고대문화 얘기도 하고 싶고, 성원들 얘기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쓰면서 독자님들과도 얘기를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하게 돼서. 되게 이 글을 쓸 때 고민이 많았어요. 

요세피나  저는 너무 부러웠어요. 전 정말 이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제가 감정이 좀 없고 굉장히 논리와 이성에만 의존하는 편이라 부러워요.  

노엘   곤충과의 만남에서조차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구나,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글을 통해 완연한 여름이 왔다고도 느꼈어요.


시선; 여름에서 봄을

요세피나  최근에 정치 기사를 보면 정말 갑작스럽게 많이 등장하고 있는 용어가 ‘이대남’ 인데 이것을 사회학 용어인 ‘백래시’를 활용해서 현상을 분석해주신 게 굉장히 재미가 있었어요. 제가 평소에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다 보니까 의도가 빤히 보이는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 글에서 정말 밑줄 천 번 긋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문장이 8페이지의 첫 문단의 ‘본디 남성혐오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이 부분이었어요. 

승희 저는 시선을 읽을 때마다 국제 이슈가 이렇게 자세히 쓰여있는 게 너무 놀랍거든요. 이렇게 톺아주시는 글들이 제가 아젠다를 넓히는 데에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노엘 시선에 소개된 이슈들을 원래 다 알고 있긴 했지만, 이슈 하나하나를 이렇게 자세히 다룬 경우는 처음인 것 같아요. 자세하게 소개해주셔서 좋았어요.

혜선 필진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각각의 글에서 오롯하게 드러난 것 같아 좋았어요. 그런데 참고문헌이 글의 순서와 다르게 배치되어 있어 글의 순서에 맞게 참고문헌을 배치해주시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상민  제 글은 특히 각주가 중요한 편이라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데요, 읽기에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기는 하네요. 다음부터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특집 여는 글: 100% 인간+안내서

승희 「편집실에서」와 마찬가지의 인상을 받았어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가 전해지는 것 같아요. 특집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돌아와서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있고. 

요세피나 ‘성전환 수술’이라는 용어가 반드시 잘못되었는지는 토론해봐야 할 문제이지만, 성확정 수술이나 성별 재지정 수술이라는 용어가 쓰일 수 있고. 그것을 쓰게 되었을 때 보다 많은 의미를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노엘  글 중반부에 나온 누군가는 ‘당신은 여자인가’라는 질문에 Yes와 No로 답하기 머뭇거린다는 서술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이건 나와 비슷한 상황이구나’ 하면서요. 또, 안내서를 통해 비당사자 독자가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용어를 알 수 있도록 해줘서 좋았어요. 


특집: 성별 정체성

해진 이 글은 트랜스젠더가 다른 성소수자들보다 더 많은 편견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해 오던 중에 구상했어요. 다른 성소수자들과 다르게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은 허구니까 그들이야말로 비정상적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그걸 깨부수자.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이해해 보자는 게 핵심이었어요.  

승희  그간 《고대문화》에서 이렇게 논리만을 딱 파고 들어가는 글이 있었던가해서 새로웠어요. 왜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불편해할까, 왜 알지도 못하면서 혐오를 행하게 되는 걸까 하는 걸 파고들잖아요. 특집의 맨 앞글로서 적당했던 것 같고,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사회에 설득되고 세뇌되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엘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기존의 인식 체계에 맞지 않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글을 읽으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언캐니 밸리’로 빗대는 것이 좀 적절하지 않다 생각했어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완전히 부합하는 성별 표현을 가졌다 해서 그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없어질 거란 생각은 안 들거든요. 

해진  노엘 님 말씀을 들으니 이분법적 성별 규범에 딱 맞는 트랜스젠더라면 ‘언캐니 밸리’만으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설명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쓰며 나름 고민했다 생각했는데, 부족함을 다시금 깨닫네요.

혜선  특집을 여는 첫 번째 글이다 보니 더욱 적극적으로 논지가 전개되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방식도 좋지만,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의 당위가 전면에 적극적으로 드러났어도 좋았겠다 생각했습니다. 


특집: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 젠더 클리닉이 신설되었다

상민  봄호 때부터 기획했던 인터뷰인데, 당시 준비할 때는 클리닉의 존재를 알리는 것 자체가 우선이었다면은, 이번에는 다른 언론에서 소개는 이미 된 상황이라 더 깊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승희 저는 이거 정말 충격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병원이 여태 한국에 없었고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했겠구나. 이런 게 한군데 모여 있을 정도로 필요가 컸는데 지금까지 없었구나. 만약에 이런 게 생겼다, 한국 최초다, 라는 말만 들었다면 이게 어째서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건지를 제가 잘 알지 못했을 거 같아요.

요세피나 무엇보다 이 인터뷰가 특집에 실린 다른 글들이랑 시너지 효과가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다른 글을 먼저 읽고 이 인터뷰를 읽었더니, 다른 특집 글들의 내용을 다 증명해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혜선 첫 문단에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라는 이 문장이 되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노엘 안암병원에 젠더 클리닉이 생겨서 드디어 한국에서도 수술받을 수 있다는 소식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안에서도 되게 화제가 됐었는데, 수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술을 한다는 정보는 《고대문화》에서 처음 알게 됐거든요. 그런데 근래에는 ‘성 주체성 장애’ 대신 ‘젠더 디스포리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글에서도 조금 더 업데이트된 말을 썼으면 어땠을까 했어요. 그리고 뒤쪽에 보면 미성년자의 경우 법적 성별 정정이 안 된다고 쓰여 있는데, 실제로는 미성년자일 때 성별 정정을 하신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어요. 이런 부분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특집: 당신의 자리

현정  다음 글은 제가 쓴 「당신의 자리」라는 글인데요. ‘트랜스규범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얘기를 해봤어요. 여전히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많은 오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와 잘 사는 세상을 쉽게 그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미 트랜스젠더의 자리를 마련해놓은 사례를 통해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보고자 했습니다.

승희  저는 이 글이 너무 좋으면서도 불편했어요. 알게 모르게 혐오를 했던 사람으로서. 또 아직 제 주변에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를 풀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사실 이 오해에 대해서 풀고 싶지만 풀지 못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가시화 자체가 잘 안 돼 있고 말씀하실 수 있는 창구가 잘 없다 보니까. 만약에 제가 이거를 몇 년 일찍 알았으면 좀 더 혐오와 싸웠을 텐데….

요세피나  아까 이 글 설명해 주실 때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보고 싶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공감이 가는 게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명쾌한 뭔가 해답을 얻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고민이 심화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소수자가 주체가 되어서 행하는 혐오는 어떤 맥락 속에서 그것들이 발생하는지를 고려를 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완전히 정당화할 수는 또 없다.’ 그런 원래 갖고 있었던 고민들이 그냥 더 더 혼란스러워졌던 것 같긴 해요. 여러 가지 소수자성이 교차하기도 하고, 사회적 강자와 약자가 획일적으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논의인 것 같아요.

노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종종 성별 이분법을 근거로 약자가 더 약자에게 또 다른 낙인을 찍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는데요. 이를 ‘트랜스규범성’이라는 기제를 통해 이해해볼 수 있어 좋았어요. 

혜선  제가 트랜스젠더에 대해 궁금해하던 부분들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글이라고 느꼈고, 많이 배웠어요. 단순히 문제를 진단하는 것을 넘어서 대안이나 사례를 소개해주고 있어 좋았고요. 보통 막 ‘그런 말 다 들어주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으로 백래시를 가하는 경우가 되게 많은데, 바꾸어도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특집: 퀴어 그리고 결혼

열음  저희가 트랜스젠더를 특집으로 잡고 여러 글감을 가지고 왔는데, 그중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는 글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고 당사자를 전면에 내세우기에는 아웃팅 문제가 걱정이 돼서 계속 고민하다가 성소수자부모모임분들께 인터뷰를 제안드렸습니다. 

승희  이걸 읽는 거 자체로 네 분의 에너지가 많이 느껴지기도 했고, 실제 생활은 이렇겠다 하는 걸 정말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기회였어요. 트랜스젠더 자체도 이제 가시화가 잘 안 되다 보니까 그분들의 생활이 어떤지에 대해서 굉장히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거든요.

요세피나  인터뷰이 분들 말씀을 원어에 많이 부합하게 쓰신 것 같아요.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 솔직히 친절한 인터뷰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혜선  인터뷰 같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전해 옮기는 것이다 보니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오히려 저는 이 인터뷰는 몰입감 있게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노엘  〈대니쉬 걸〉이나 몇몇 영화들은 트랜스젠더 서사임에도 당사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실제 사례를 통해 당사자들이 불편을 느끼는 지점을 설명해줘서 좋았어요.


특집: 트랜스젠더, 군인, 죽음

상민 제가 지난 3월 내내 계속 생각하며 정리한 것이 3번 ‘죽음’ 파트에 해당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앞선 젠더 클리닉 인터뷰를 하고 나서 그 글 말미에 나오는 세 가지 악순환 부분을 보강하는 식으로 나머지 파트를 썼습니다. 

요세피나 저는 이 글이 이번 호에서 가장 좋았고, 이 글에서 얻어간 게 가장 많았어요. 정보가 연쇄적으로 등장하는 과정 속에서도 논점이 흐려지지 않는 상세한 글. ‘군인’ 파트에서 변희수 님 관련해서 언론에서 보도된 바 정도만 읽었었는데 여기서 다른 내막까지 다 알 수 있었고요. 군대에서 웃으면서 돌아온 제 다른 친구들과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어떤 한 생명, 이 간극이 강렬하게 다가와서 마음이 정말 무거웠어요. 

승희 사실 읽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이 죽음을 진짜 알아야 되는 만큼 알았었나’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겠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죄송하고 후회되는 마음으로 집에서 펑펑 울면서 읽었어요. 이 문제가 여성 인권하고 부딪힌다는 오해들도 꼭 풀고 넘어가야 될 문제들인데, 그 부분을 다뤄주셔서 참 좋았고요.

노엘 죽음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아서 편하게 읽었어요. 다만 전반적으로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아 아쉬웠어요. 예를 들어, 세 가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부분에서 바이너리 트랜스젠더가 원하는 것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가 원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거든요. 성별 표기에 있어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추가란이나 미표기란을 원할 수도 있고요.

혜선  ‘화장실을 성별로 나눠서 사용하고 있을 때에도 범죄가 있으니까 성중립화장실을 쓰더라도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차라리 “이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쪽은 트랜스여성 쪽이 아닌 불법 촬영자들과 경찰, 그리고 입법부와 사법부이다” 이 부분의 내용을 더 강하게 써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노엘  성중립화장실을 어떤 모델로 적용할 것인지, 그러니까 1인용 화장실 여러 개를 설치하는 방법, 성별중립화장실로 통합하는 방법, 혹은 기존의 여자 남자 화장실 외에 아예 새로운 화장실을 만드는 방법 중에 어떤 모델을 택하실 건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특집 닫는 글: 당신의 오롯한 삶을 위하여

보리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게 가능한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런 사회의 구체적인 면면이 저희 특집에 담긴 내용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특집 내용을 정리, 요약하는 문단도 실었습니다. 

승희  맞아요. 저도 전체적으로 잘 요약돼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갈무리로서 굉장히 딱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요세피나  마지막 문단을 되게 좋게 읽었는데요. 특혜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배려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나에 대해서 느끼고 정체화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고작’ 이 정도인데도, 오롯이 살기가 많이 어려운 게 마음 아팠습니다. 

노엘  저희끼리 하는 우스갯소리 중 자연사하자는 얘기가 생각났어요. 결국 모든 트랜스젠더들이 원하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 글에서 말하는 ‘오롯한 삶’이니까요. 

혜선  저는 어떤 법을 하나 제정하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는 식으로 논의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인데, 법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변화들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부분까지 잘 적어주신 것 같아요.


칼럼: 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 민주적 영화(관)?

상민  원래는 이 칼럼과 같은 내용의 글이 봄호에 실릴 예정이었는데, 그 글의 일부가 지난 호의 〈테넷〉 화평이 되었고, 이번 호에 나머지를 써보았습니다.

요세피나  얼마 전에 〈크루엘라〉를 친구들이 보자해서 CGV에서 봤거든요. 근데 내가 정말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은 맞나, 그냥 나는 많은 자본을 들여서 재미있으라고 만든 영화를 재미있게 소비하고 나온 것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경험을 가지고 이 글을 읽음으로써 대안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것들, 커뮤니티 영화관 이런 게 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고, 앞으로 조금 더 내 진실된 선택에 기반한 영화 소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글이었습니다

승희  ‘민주적인 영화관이란 무엇인가’ 한다면 ‘모두에게 접근 가능해야 된다’는 조건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영화관 안에 들어갈 때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도 안에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라 하잖아요. 그럼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상영관에 갈 수 없고. 이렇게 영화관들이 민주적이지가 않구나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혜선  사실 읽으면서 글의 주제가 오락가락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관을 평등하게 이용할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권력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다시 또 권력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말하다가 다시 민주적 시네마 얘기로 돌아가서 약간 헷갈렸어요. 

노엘  영화 예매할 때마다 휠체어 좌석이 항상 A열에만 있는 게 차별적이라 생각해오던 와중에 이 글을 읽고서 ‘역시 차별이 맞았고, 이래서 차별이구나’ 했어요. 배리어프리 상영관이 적다는 것도 처음 알 수 있었고…. 여러모로 장애와 영화의 관계에 대해서 되게 잘 다뤄주셨다고 생각했어요. 


칼럼: 코로나19가 끝나면 다시 만나요 -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 인터뷰

보리  원래 이 인터뷰는 봄호 특집 글로 실을 예정으로 기획해서 진행되었어요, 그런데 당시에 인터뷰를 글로 풀어내는 게 어려워서 봄호에는 못 싣고 인터뷰 원본만 가지고 있다가, 여름호에 인터뷰 글을 다른 맥락으로 풀어내게 되었습니다. 

요세피나  현장에 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새내기들도 줄어든 것 같고, 분위기 자체도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원하는 바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대학이 졸업장을 따서 취업을 해야 하는 곳이 되었기 때문에, 운동은커녕 어디 가서 집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 된 것 같아요. 

승희  개인의 문제를 정치화한다든가, 집회에 참여한다든가 실제로 실천의 주체가 된다든가 하는 정치적 추동력이 많이 사라졌다는 걸 느껴요. 개인이 정치적으로 뭔갈 요구하는 분위기가 많이 옅어진 상황에서 학회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에 공감을 했어요. 이러한 감정을 들고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노엘  인터뷰 뒷부분에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어요. 노동자의 권리를 고민한다 할지라도 페미니즘을 고려하지 않으면 재생산권이나 여성 노동자를 향한 이유 없는 차별 등 여성 노동자의 상황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대목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교차성을 확실히 짚어주신 것 같았어요.

혜선  책의 앞부분까지는 학내 이슈가 없었다 보니 학내 이슈 글이 실리는 것도, 또 글이 인권 주간 얘기도 시작하는 것도 반가웠어요. 또 실제 학회 활동하시는 분들의 고유한 생각들을 그 사람만의 표현으로 들을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칼럼: 연결과 실천을 위한 작은 창구들

현정  이 글은 제가 쓴 짧은 글과 표인데요.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뭐부터 해야 할까… 이런 막막한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을 썼습니다. 

요세피나  이걸 크게 포스터로 인화해서 어디에 붙이든 온라인에 공유하든 이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혜선  ‘내일을 살아가자’는 말로 끝맺어지긴 하지만 항상 아픔과 슬픔을 시작으로 삼는다니 너무 슬펐어요. 어떤 강연에서 들었는데요, 죄책감을 동력 삼지는 말래요. 그 말이 문득 이 문장을 읽으면서 떠올랐어요. 

노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속에 크게 발자국을 남기는 느낌이었어요. 글에서 다양한 뉴미디어 창구를 통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줘서 좋았습니다.


소특집: 내가 모르는 것들을 향해

현정 고대문화 활동하며 늘 생각하던 바를 글의 첫 문장으로 썼어요. 저는 항상 모르는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중 하나가 특히 노동 문제였던 것 같아서 썼지만, 그래도 저보다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는 죄책감이 남습니다.

승희 마지막에 보면, 신라대학교 노동자들의 농성이 마무리되고 나서 다른 연대 농성을 하러 가셨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거기서 오는 감동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 차별과 배제를 받았던 경험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고 지나칠 수 없게 되고, 같이 사는 것의 가치를 서로 배우고 실천하고…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요세피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많이 올라왔던 글이에요. 저희가 하는 일은 사소하기도 하고, 평소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한 것도 아닌데 그것마저도 너무 고마워하시고… 저도 노동자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저희가 학생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정말 많은 감동을 표현해주시더라고요. 이 모든 걸 경험하는 현정 님의 감정들이 이 글에 녹아나 있는 게 보였어요. 

노엘  신라대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거기서 그쳐있었거든요.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고 학내 구성원들의 반응은 어땠고 등등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것들은 알지 못했는데, 이 글을 통해 노동 운동의 관점으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어서 많은 걸 배운 것 같습니다.

혜선  저희가 이런 문제들을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과연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늘 걱정하게 되는데, 그 부분을 되게 진솔하고 울림 있게 보여주면서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소특집: 고려대학교 직원 노조 농성

민철  저도 고려대학교의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저도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승희  꼭 있어야 하는 글이라 생각해요. 노동 얘기를 할 때에는 우리 주변에 있는 노동 문제도 살피는 게 당연하잖아요. 또 직고용이나 정규직 전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작은 차이고 정당화될 수 있는 차별 아니냐’하는 식인데, 지부장님이 거기에 답변을 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는 일 똑같은데 왜 차별하느냐는 거예요. 조그만 차인데 왜 이걸 두느냐, 사람을 모욕하는 짓인데, 하시면서. 이렇게 현안들 관련해서 직간접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요세피나  개인적으로는 중앙광장 쪽 지나다니면서 그 배경이 진짜 궁금했었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누구를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고. 교수님들도 아무도 모르시더라구요. 항상 마음 한 켠에 풀리지 않는 궁금증과 부채감이 섞여 있었는데 이 인터뷰를 통해서 어떤 문제가 있어 왔는지, 일단락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상세하게 이어지는 답변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최근에도 친구들이랑 토론을 하다가 필요에 따라서 해고할 수 있거나 아니면 조건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비정규직이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비정규직이 정확히 어떤 차별을 겪는지 모르니 충분히 반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글에서 내부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노엘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여러 방식으로 차별한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어요. 해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렇게 대우하지는 않는 거로 아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노동 문제에 있어 가야 할 길이 멀구나 싶었습니다. 또 지부장님께서 학생들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말씀하신 것도 마음에 깊게 남았던 것 같아요. 


리뷰: 나의 시절 연인에게

열음  제가 「XOXO」라는 소설을 너무 좋게 읽어서 쓴 글인데, 《고대문화》에서 정말로 처음 보는 유형의 글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어떻게 읽으셨는지 되게 궁금했어요. 

승희  이 소설 자체를 진짜 사랑해 가지고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다 옮겨놓으려고 노력하신 게 너무 선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검은색 부분은 분명히 인용이 아니라 본인이 쓰신 말일 텐데, 마치 이 소설의 일부인 것처럼 문장이 좋았어요.

요세피나  “늦은 나이의 초조한 여성이 되어서 지워진다”는 말과 이 문단 전체가 왠지 모르게 너무 와닿았어요. 또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소설이라면 분명 의미가 있는 글일 것 같아서, 리뷰를 읽은 후에 이 글을 읽어서 열음 님이 느끼셨던 것들을 느껴보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리뷰: 연결의 존재론: 우리는 매일매일 (       )

상민  저도 〈우리는 매일매일〉이라는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왜 좋았는지를 열심히 설명해서 영업하려고 쓴 글입니다.

승희  글을 보고 영화가 너무 기대가 됐어요, 우리가 흔히 ‘영페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되어서 살아가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게 흔치 않은 기회잖아요. 게다가 이게 실존 인물의 이야기다 보니까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요세피나  소싸움의 문제를 느끼게 된 감수성이 여성운동을 하던 감수성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는 문장이 너무 위로가 됐어요. 저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인데, 여성운동과 이제 비거니즘 지향의 유사성을 이해받지 못한 경험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 문장을 읽고 잘 하고 있다는 응원을 스스로에게 해주었습니다.

노엘  영페미 세대와 페미니즘 리부트 직후의 세대는 접점이 많지 않아서 그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봤는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어 좋았고 여성 운동사를 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목 터져라 매일매일 싸워야 페미니스트인 것은 아니구나"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매일매일 싸워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삶은 투쟁의 연속이니까. 살아 남겠다고, 열심히 살아서 싸우고, 싸워서 살아남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소감

요세피나  표지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은 고대문화였는데 내용이 어느 때보다 무거웠던 것 같아요. 이렇게 고민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특히 그래서 좀 한분 한분 뵙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글을 읽으며 든 생각이 외롭지 않다는 거였어요. 살다 보면 주변에 너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가지고 이걸 어디다 말해야 할지 잘 모르다겠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승희  용기 내서 독자 모임 참여하길 너무 잘한 것 같아요. 사실 지난 호에 글 써주신 분들도 웬만하면 다 기억을 하고 있거든요. 지난 성원들의 글도 다 재밌게 다 읽었으니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다들 정말 고생 많으시고,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각자의 삶을 잘 붙드시면서 잘 사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혜선  이번 특집 주제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다고 느껴 스스로가 많이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 많이 고민하고 주위를 살펴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 

노엘  이 책이 바다에 띄우는 편지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망망대해에서 제가 병을 하나 주웠는데 그 안에 이렇게 좋은, 그것도 저랑 잘 맞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다룬 편지를 발견했다는 느낌이었어요. 너무너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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